코로나 백신 2차 접종 후10년 만에고열에 시달리다
신기하게도 나는 성인이 된 이후에 감기에 잘 걸리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워낙 밖에서 나가 뛰어놀고 흙탕물에서 뒹굴고 먼지를 마시면서 큰, 개구진 아이였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런 천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학생 때는 1년에 5개월씩 주어지는 여름 겨울 방학을 어떻게 요리해서 먹으면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지 항상 고민했다. 이번 방학에는 해외봉사를 해야겠다. 이번 겨울에는 자전거 전국 일주를 해야겠다 등등 그래서인지 감기는 1년에 한 번 정도 걸리는 수준까지 이르렀는데 이마저도 콧물이 나고 몸이 무거운 정도에서 그치는 정도였다. 뉴질랜드에 와서도 2년 동안 감기라는 것은 모르고 살았기에 나 스스로 면역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생각했고 1차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맞은 후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나의 면역력이 코로나까지 막아주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1차 접종을 맞은 후 6주가 지나고 며칠 전, 2차 접종을 맞으러 집에서 가까운 약국으로 향했다. 주변인들 말에 따르면 화이자 백신 2차가 1차보다 더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나는 이상하리만큼 2차를 맞고 나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엄마에게 말을 하니 주사를 맞고 최소한 11시간은 지나 봐야 증상이 있는지 알 수 있다며 말하면서 동시에, 증상이 좀 나와야 반응이 있는 거라며 내게 말했다. 그런데 11시간이 지나도, 반나절이 지나고 밤이 깊어 잠까지 자고 일어났는데도 너무나 멀쩡해서 나는 아마도 반응이 안 나타나는가 보다 싶었다.
그러나 다음날, 주사를 맞은 후 정확히 24시간 후, 조금씩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곧 머리가 불 떵이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저녁 식사를 해야 하는데 입맛이 싹 사려져 뭘 먹거나 마실 기운조차 없었다. 침대 속에 들어가 으스으스한 몸을 구부려 누워 나 홀로 바이러스 균과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진통제라는 것을 모르고 평생을 살아온 내가 이 정도 증상에 약을 먹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버텨보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버티다 보면 열이 내려가고 괜찮아지겠지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일단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가서 수건에 물을 적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가는 그 과정에서 오한이 느껴져 너무 힘들었지만 내가 안 하면 아무도 내 이마에 수건을 얹어줄 사람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오한과 싸우며 수건이 뜨거워지면 다시 오한과 싸우며 화장실로 가 수건에 다시 찬물을 적셔오곤 했다. 순간적으로 '이래서 결혼을 하라고 그러는 거구나, 아프면 아무도 나를 돌봐주는 사람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아니야, 간병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말도 안 되지' 라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렇게 나 홀로 고군분투한 끝에 다행히 머리에 열을 식히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두통과 오한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밤 12시경, 내 스스로와의 타협을 통해 타이레놀 하나를 꺼내 물과 함께 삼킨 후 30분이 지나서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한 번도 잠에서 깨지 않고 잘 잤다. 다음날 되니 전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몸이 회복되었고 그렇게 나의 2차 백신 접종기가 끝이 났다.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고열에 시달렸는지 정말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머리에 열이 나는 일은 오래전 일이다. 적어도 10년은 더 된 일인 듯한데 근 10년 만에 고열에 시달리는 경험을 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로서 나는 백신 후 증상까지 톡톡히 치른 완전 접종자가 되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전 세계인들이 이런 과정을 거쳤고 또 거치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괜히 전우애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나뿐인가. 우리 모두 이 코로나 바이러스 전쟁 속에서 다 같이 살아남아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면서 더 이상 고통받고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