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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나나 Jul 11. 2021

내 생에 최고의 생일

 한국에 사는 친구들은 이미 작년에 서른이 되었는데 나는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아직 20대라며 얄밉게 춤을 추곤 했다. 하지만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서른이 되면서 더 이상 20대 놀이를 할 수 없게 됐다. 오늘은 키위 친구들과 미리 계획했던 로드트립을 떠났는데 아침 9시에 나를 데리러 온 친구들 차를 타고 맥도널드로 가서 아침을 대충 때웠다. 우리의 목적지는 오클랜드에서 차로 2시간 가량 떨어진 Dargaville 이라는 작은 도시다. 코로나 없이 사는 몇 안되는 청정 나라에서 살다보니 이렇게 마스크나 아무런 제약없이 눈치 볼 팔요 없이 여행이 가능하다. 맥도널드에 들리다보니 2시간 30분에 거쳐 정오쯤 숙소에 도착했고 우리는 짐을 내린 후 한낮에 해변에 가서 와인과 다과 소풍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와서는 훌라라는 한국의 카드게임과 유카라고 불리는 사모아 카드 게임을 했으며 저녁 8시가 넘어서는 삼겹살 파티를 시작했고  30살 풍선을 벽에 세워둔 후 케이크와 함께 사진도 찍었다. Never have I ever 일명 ㅇㅇㅇ을 해 본 적이 있다 없다 게임을 하면서 수다를 떨다가 노래방 유튜브를 켜고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10시 30분을 넘었는데 나를 아침 일찍 데리러 오느라  피곤했던 친구들은 설거지나 뒷정리도 내일 하자며 샤워도 미룬 채 양치와 세수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들이 화장실을 쓰는 동안 설거지와 뒷정리를 마무리했고 샤워를 마친 후 방에 들어와 2시간째 핸드폰을 보고 있는 중이다. 카톡과 왓츠앱에는 생일 축하 메시지가 넘쳐났고 나는 오늘 찍은 사진 중 잘 나온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사람들의 댓글을 읽고 있다. 여기저기서 축하한다는 메시지에 답장하면서 사람들에게 짧은 안부를 묻고 있다가 문득 핸드폰을 끄고 주변을 둘러보니 하루 종일 내가 있는 이 공간에서 오늘 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다신 돌아오지 않을 2021년 7월 10일 내 생일이 지나가고 있음을 실시간으로 느끼면서 내가 오늘 하루 종일 얼마나 행복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생일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년 생일은 키위 친구들과 식당에 가서 같이 저녁 식사를 했고 2년 전 생일에는 뉴질랜드에 워홀로 와서 카우치서핑 호스트 아밋이 해준 서프라이즈와 수제 케이크를 먹었다. 3년 전에는 오스트리아 하영 언니 집에서 미역국을 먹고 슈테판 성당 앞에서 프리허그를 하며 7명의 나와 생일이 같은 사람을 만났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일하던 병원에서 팀원들이 준비해주는 케이크를 먹고 아침부터 하루 종일 일만 했었는데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매우 멋진 나날을 보내고 있다. 4년 전에 나와 비교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상이다. 인생에 있어 생일은 1년에 한 번 있는 가장 특별한 날인데 뭘 하는지 보다는 누구와 함께 있는가가 더 의미 있고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행복에 겨워 이렇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또 감사함을 느끼며 길었던 30살 생일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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