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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타리즘 Sep 09. 2020

여행썰  ㅡ인도편 13

18. 맥주가 그리운 시간


숙소에서 나는 민이 되었다. 맥주를 사러  것인가 참을 것인가?

빗줄기가 제법 세져서 나가는 것도 귀찮고 바로 인해 날씨도 제법 추워졌다. 성지 주변은 금주로 인해서 가까이 파는 가게도 없었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은 게 이 때문이었다.

오토릭샤 정류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릭샤꾼은 30분이 걸린다고 했다. 편도 30분 빗길을 뚫고 갔는데 술 파는 가게 치고는 너무나 휑하고 뭔가 없었다. 인도 맥주 하면 누구나 알만한 킹피셔로 물총새가 그려진 녹색병을 보고 있자면 맛도 꽤 괜찮아서 한병 가져와서 꽃병으로 쓰고 싶은 맥주인데 전국 맥주인 줄 알았던 킹피셔는 안 보이고 지역맥주인 헤이워드 500이라는 펀잡지방 맥주가 있었다. 강렬한 붉은색의 이 맥주도 맛이 썩 나쁘지 않았는데 그것보다는 맥주 자체를 구한 것에 더 기쁨이 컸다.

릭샤꾼은 슬그머니 도착해서는 릭샤비도 달라고 하고 서비스로 맥주도 달란다. 아니면 내 숙소에서 같이 마시자고 한다. 예이 얇실한 녀석아 ㅡ 배보다 배꼽이 더 클뻔했다. 이건 내가 오늘 다 마실 거거든.

슈퍼 스트롱 같은 소리하네  ㅡ  ㅡ그냥 라거 정도다.

인도 맥주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추억 속의 킹피셔 이야기를 하자면

10년 전의 첫 인도 여행에서 너무 킹피셔의 맛과 바라나시의 분위기에 취해서 바라나시에서 알게 된 팀원들끼리 술 사러 남자들 몇 명이서 맥주를 박스에 담아 탄두리 치킨이랑 뭉달(튀긴 인도 콩 과자)과 함께 매일 그 먼 거리를 술 심부름 다닐 정도로 킹피셔의 청량감은 잊을 수없고 그때 추억에 진한 깊이를 주었다.

물론 술 종류가 뭐가 중요했을까보다. 그래도 킹피셔를 보면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 말레이시아에서도 킹피셔를 보면 너무나 반가워서 사 마시고 싱가포르에서도 인도네시아에서도 주야장천 사 마셨던 기억이 난다.



내가 살던 동네에선 똥과자라 불린 설탕과 소다를 조금 놓아 국자에 녹여먹던 과자도 어른이 되면  추억의 맛이 더해져 가끔 길거리에서 사 먹고는 하듯이

킹피셔에 대한 나의 생생한 추억들을 떠올리고 싶어서 인도의 킹피셔를 다 마시고 올 작정이었던 나는

정작 델리에서도 이틀째 여기로 왔기에 제대로 맥주를 마시지 못해 금주 현상에 허덕이고 있었다.

평상시에도 맥주를 워낙 좋아해 맥주를 입에 달고 사는 나에게 킹피셔에 대한 환상이 극에 치닫고 있었으나

펀잡의 헤이워즈는 나의 갈망을 해소시켜주고 있었다.


델리에서 왜 킹피셔를 못 마셨는지는 참 재미난 게 숙소 앞에 노상 포장마차가 있었는데 거기서 숙소로

맥주를 사서 갈 생각이었다. 맥주를 달라고 하니 좀 낡은 녹색 맥주병을 꺼내더라. 오호 인도니 당연하지

하면서 가격을 물어보니 너무나 비싼 게 아니겠냐 그래서 다시 한번 밤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한번 봐볼까 했더니 아니 글쎄 이건 킹피셔가 아니다. 킹파워라 적힌 짝퉁 맥주였다. 물총새 로고도 따라 만들었으나 조잡한 그림에 사진을 찍으려니 기분이 나빴는지 얼른 병을 달라고 했다.


인도에선 물도 잘 사마 셔야 하는 게 흔한 슈퍼 가판에서도 다 마신 물병에 뚜껑을 붙여서 판매하거나 가격을 제대로 확인 안 하면 비싸게 부른다. 물갈이가 심한 나는 물은 되도록 사 먹는 편인데 물갈이를 바라나시에 도착해서 까지 했던지라 물은 무조건 사 마시고 맥주도 시원한것만 마시려고 한다.


인도 물가 대비해서 맥주는 싼편이 아닌데 10년 전 여행에서 싼 방값에 대비해 술값으로 엄청 쓸 만큼 더운 인도의 날씨를 버티게 해준건 시원한 킹피셔와 그때 만난 친구들이다.


광장 앞에서 시크교 어린 친구들이 무사의 용맹함을 들이는 공연을 하는데 나는 그들이 신기하고

그들은  내가 신기해서 서로 계속 쳐다본 기억이 난다.


맥주랑 핸드폰에 인도영화를 담아와서 같이 먹으면서 보는데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안 믿겨질 만큼


행복한 하루였다.


추운 날도 추운 날씨였지만 메인 광장을 제외하고는 아직 흙길이 많다. 맨발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던

오늘 하루였는데 슬리퍼를 신고 걷는 게 미끄럽고 진흙처럼 변한 길에서 흙이 바닥에 달라붙었다.

소똥과 먼지와 흙이 하나 된 빗길에선 더러움보다는 안 넘어져서 맥주를 깨뜨리지 않는 것과 내 안전이 우선이었다. 자연스럽게 맨발로 걷다 보니 무릎까지 진흙이 튀어 얼른 차가운 물임에도 샤워는 필수였다.


시원한 샤워를 끝내고 마시는 맥주는 그어찌 맛없겠는가 외로운 기분도 가시는 고마운 맥주와 함께

신이 맺어준 커플을 틀고 울적함을 날려 보낸다.

센치함은 비 오는 안개 사이로 날아간다. 저 멀리 밤의 심연으로


아껴서 두병을 깨끗하게 비워 일찍 잠을 청했으나 춥고 습하고 샤워 후에 떨어진 체온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겨우 잠들었다가 너무 추워서 양말을 두 겹 신고 그다음엔 바지를 덧대 입고 잠바를 모자를 쓰고 잠자리에 들었다.

감기였다. 덕분에 다음날 아침 일찍 토스트와 맛없는 커피는 내 감기약이 되어주었다.


오늘은 흐리긴 했으나 비는 멈추어 주었다.

토스트를 먹고 마법사님의 라씨 가게로 향한다. 몇 번 봤다고 이름도 물어보신다.

이제 오전부터 황금사원으로 향한다. 기운을 차리러 세계 5대 종교의 성지인 시크교 사원으로

샤룩 칸 형님이 첫 장면에서 절하던 그곳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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