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중규 May 12. 2024

교회에서 장애인들은 차별없는 대우 받고 있나 / 정중규

장애인들이 본당 전례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 정중규 한국가톨릭장애인사도직협의회 연구위원장

- 명동성당에 가면 마당 한 편에 서울대교구가 실시하고 있는 시노드(syn-hodos) 관련 상징물이 아래 사진과 같이 설치되어 있다.

그것은 교구장 주교와 장애인과 같은 취약계층을 비롯한 남녀노소 모든 신자들이 교회공동체의 여정에 함께 하는 일원임을 말하고 있다.

시노드라는 말 자체가 "함께 걷는 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과연 한국 가톨릭교회 특히 본당에서 장애인들은 전례공동체의 일원으로 차별없는 인격적 대우를 받고 있는가.

아직도 장애인하면 복지 대상으로 여기며 복지시설을 떠올리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지난 4월 25일 수원교구 영성교육원에서 "장애인의 성사 생활을 위한 사목적 배려"라는 주제로 열린 2024년 한국가톨릭장애인사도직협의회 워크샵 및 정기세미나에서 연구위원장으로 강연한 내용도 그것이었다.

곧 이 상징물처럼 장애인들이 본당공동체와 전례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면서 온전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역 본당의 구조 자체를 멀티시스템으로 장애인들에게 맞추는 등 한국 가톨릭교회가 쇄신되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런데 "본당을 가톨릭 장애인 복지의 교두보로 삼자"는 내 오랜 주장에 생각 이상으로 공감과 호응이 있어 희망을 갖게 만들었다.

어쩌면 한국 가톨릭교회의 장애인복지사에 변곡점이 될 지도 모를 모임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장애인들이 본당 전례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 정중규(베네딕토) 한국가톨릭장애인사도직협의회 연구위원장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마태 4,23~24)


이처럼 예수님의 하늘나라 사업에서는 한 패턴이 찾아지는데, 곧 당신께서 찾아가시는 곳마다 먼저 그 지역의 회당에 들리시고 거기에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애인들(갖가지 질병에 시달리는 병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등등)이 회당을 찾아와 그분을 둘러쌉니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하늘나라 복음 선포 후에 당신을 찾아온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치유행위를 하십니다.


오늘로 치자면 성령기도회와 대단히 유사한데, 선교사가 본당을 찾아가 강연을 하면 그 소식을 듣고 장애인들이 찾아와 선교사 둘레에 둘러앉아 영육간 치유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회당에서 설교를 하실 때마다 장애인과 병자들이 예수님의 곁으로 모여 들었던 것은 바로 그분께서 당신의 하늘나라사업의 양대 축을 복음선포와 함께 치유행위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복음서에는 장애인들을 만나는 예수님의 이야기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장애인을 향한 예수님의 치유행위 그 삶을 본받아 교회 역시 지난 2천년동안 병원사목과 복지사목을 통해 치유사목을 실천해왔습니다.


초대교회 이후 교부시대로 접어들면 이미 교구마다 복지시설들이 들어서고 자선사업이 교회의 핵심적 사목행위로 자리 잡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치유사목은 실제로도 흑사병으로 괴멸 직전으로 몰렸던 중세 유럽을 회복시켜 영육일원론의 전인적인 인간상을 지향했던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데 크나큰 역할을 했으며, 그를 통해 근대세계로 서구사회가 나아가는데도 영성적 바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의 치유사목은 예수님의 치유행위에 비추어볼 때는 그것을 우회적으로 실천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치유행위는 아흔아홉 마리 양 떼를 놓아두고서라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내는 이야기에서 나타나듯이 공동체 복원을 꾀한 것인 까닭입니다. 그분의 치유행위가 그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은 한센씨 환자들을 치유시킨 행위에서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치유시킨 뒤 치유 받았음을 제사장에게 가서 확인하라고 하시는데, 당시 한센씨 환자들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들어오지도 못했기에 ‘치유 받았음을 확인하라’는 것은 그가 이스라엘공동체 일원이 되었음을, 요즘으로 치면 노숙자들에게 주민증이 발급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치유사목이, 특히 장애인복지사업이 예수님의 이러한 치유행위, 곧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지향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교회, 특히 우리 가톨릭교회의 특성이자 장점으로 행정구역에 맞게 거의 동마다 설립되어 있는, 2천 년 전 예수 시대로 보자면 회당이 해당하는 본당을 주목합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회당을 찾아다니시며 하늘나라사업 하실 때처럼 본당에서 장애인들이 전례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런데 UN에 의하면 인구의 10%, 대한민국에서는 인구의 5%가 등록장애인인데, 과연 본당에서 전체 신자의 5~10% 달하는 장애인 신자를 만날 수 있습니까? 30년 전 제가 부산교구에서 가톨릭지체장애인선교회를 창립하던 시절만 해도 여러 가지 사정 상 장애유형별로 따로 미사를 드리곤 했습니다만, 장애인복지 선진국이 된 지금 가톨릭교회 본당공동체 일원으로 장애인들이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러면 저와 같은 지체장애인에겐 편의시설이, 청각장애인에겐 수화통역자가, 시각장애인에겐 점자통역기 등이 갖춰져야 하는 등 장애유형별 필요한 것들이 마련되는 멀티시스템 본당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특히 요즘 장애인복지계의 화두인 발달장애인의 경우 각 본당마다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면 발달장애인 사회통합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그렇게 가톨릭교회가 장애인들을 사회복지 대상으로만 여기지 말고 교회의 기초단위인 본당의 신자공동체, 더 나아가 전례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면, 이제껏 우리 가톨릭교회가 복지시설 운영으로 대한민국 장애인복지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것처럼, 장애인 사회통합 그 흐름을 더욱 촉진시키며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치유행위를 진정으로 실천하는 것이 될 것으로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문재인 대통령 시절이 남북 화해의 시기? / 정중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