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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 가얏고 Sep 15. 2021

옆집 아저씨의 통 큰 한 턱

넓은가르다호를바라보며 먹은 점심

베로나 도착 2일째는 점심 약속 외에는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여러 번 왔던 곳이라 관광보다는 여유롭게 즐기고 싶었다.

호텔 숙박에 조식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조식이 제공되면 당연히 좋겠지만,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아침 식사 시간을 맞추느라 서두르지 않아서 좋다.  


느긋하게 준비하고 밖으로 나갔다. 호텔 근처에 있는 여러 카페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곳으로 고르기만 하면 된다. 거리두기를 위해 붐비지 않는 카페로 선택했다. 가로수 그늘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 잡고 크루아상과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요즘은 어느 카페를 가건 테이블 위에는 손 소독제가 올려져 있다. 25도 정도의 화창한 날씨, 나무 그늘로 드문드문 불어오는 아침 바람이 상쾌했다. 아니,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겐 좀 쌀쌀한 편이라 얇은 카디건을 꺼내 입었다. 유럽의 흔한 카페 문화가 바다 건너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면 유럽풍이라며 비싼 문화로 탈바꿈하는데, 적은 비용으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으니 참 좋다.




오늘은 점심 식사 초대를 받았다. 

점심 먹을 장소는 가르다호수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인데, 차 타고 40분 정도 가야 한다.


Lake Garda(가르다호)

https://ko.wikipedia.org/wiki/가르다호


가르다 호수는 독일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휴양지다. 독일 특히 바이에른주의 긴 연휴나 휴가 기간에 이곳에 오면 독일번호판을 단 차들로 도로가 꽉 차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 별장을 두고 틈만 나면 와서 서핑도 즐기고 수영도 하고 맛난 음식을 즐긴다. 우리 옆집에 살았던 K 아저씨도 휴가를 위한 아파트를 임대했다고 했다. 7월 말이면 계약 기간이 끝난다며 우리에게 머물러도 된다고 했었다. 지난번에도 그러시더니 이번에 또 그러셨다. 정말 고마웠지만 한참을 고민하다 정중하게 사양했었다.


그래도 뭔가를 해주고 싶으셨는지, 점심을 대접하겠다며 자기의 단골 식당에 예약해두겠다고 했다. 아저씨는 뮌헨에 있어서 못 오지만 우리끼리 가서 먹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이것마저 거절하면 서운해하실 거 같아서 고맙다고 했다. 뮌헨 사시는 분께서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우리를 배려해 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아저씨는 만나면 그렇게 살가운 편은 아니다. 우연히 마주쳐도 그냥 인사만 하고 헤어질 뿐이다. 그런데 이사를 한 후에도 우리를 참 많이 챙겨주신다. 남편이랑은 종종 만나서 점심도 먹고 제법 친한 거 같다. 지난번엔 남편 생일날 깜짝 선물로 초밥 세트를 보내주셨다. 뮌헨에서는 초밥 세트 가격이 상당히 비싼 편이다. 코로나로 파티도 못 하는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선물로 초밥을 보내 주셨다. 무뚝뚝하지만 잔정이 깊은 분인 거 같다. 예전에 아는 언니가 독일 사람이 무뚝뚝한 건 쑥스러워서 그런 거라고 했다. 한 번 친해지면 아주 오래가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독일 사람은 친절하다가도 아니라고 말할 땐 아주 매몰차게 말해서 서운할 때가 많다. 그리고 규율을 어겼을 땐 그 자리에서 야단치는 사람도 꽤 있다. 공회전 상태로 차를 정차하고 있다거나 규율을 어기면 와서 뭐라 한다. 가끔 인종차별인가 오해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진 않은 거 같다.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하면 일반적으로는 다들 친절하다. 우리나라도 예전엔 어른들이 잘못하는 어린이나 젊은 사람을 보면 타이르거나 야단쳤던 기억이 난다.

 



베로나에서 20분 정도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빠져나왔다. 작은 마을도 몇 개를 통과하는 듯하더니, 내비게이션이 자꾸 산으로 안내를 했다.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안내하는 건가? 호수로 가야 하는데 왜 자꾸 산으로 올라가라고 하지? 불안 불안해하며 한참을 올라가다 산 중턱에 다다라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했다. 고급스러운 주자장은 마치 리조트에 들어선 기분이었고, 거기에 있는 사인을 보니 제대로 찾아오긴 했다. 호숫가 근처의 식당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산 중턱에 있을 줄이야!

점심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지나간 이쁜 마을


입구에서 예약자 이름을 말하자마자 바로 VIP 대접이다. 큰 기대 없이 왔는데 상당히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또 한 번 놀랐다. 고급스러운 실내를 통과해서 베란다 쪽으로 안내를 해 주는데, 나가자마자 '우와~~'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넓은 가르다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가르다 호수를 보는 순간, 나는 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충주호가 떠올랐을까? 꼭 한국에 온 기분이었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향수를 느끼다니! 음식도 먹기 전에 이곳이 마음에 쏙 들었다.


어떤 상황이나 장소에서 남들이 다 공감할 만한 객관적인 느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남들은 공감 못 해도 나 혼자만 떠오르는 주관적인 느낌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 여름에 제노아에 갔을 때 나 혼자 호주 멜버른이 떠올랐던 것처럼 이곳에 오니 언젠가 사진으로 봤을 법한 충주호가 떠올랐다.





식도락 K 아저씨의 단골 식당인 이곳은 1996년에 개업했고 해산물 요리가 전문이라고 했다. 해산물 킬러인 나에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코로나 봉쇄로 8개월 동안 문을 닫았다고 했다. 그 여파 때문인지 아니면 평일 점심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넓은 공간에 손님은 우리 밖에 없는 거 같았다. 그래도 다시 오픈한 거라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남편은 원래 술을 즐기지도 않지만, 운전을 해야 해서 식전주로 프로세코(Prosecco )는 한 잔만 주문했더니 해산물로 이뤄진 카나페가 함께 나왔다.


애피타이저는 2개만 시켜서 나눠 먹었다. 하나는 시금치 수란(poached egg) 트러플(Truffle, 송로버섯)이 들어간 건데 트러플이 안보였다. 대신에 메뉴에는 안 적혀 있었지만, 캐비어 같은 게 올려져 있었다. 비싼 캐비어가 들어갔을 리는 없을 테고 혹시 트러플을 캐비아 모양처럼 만들어서 올린 건가? 그러고 보니 캐비어 특유의 비린 맛도 안 났던 거 같다. 맛있기도 했지만 참 신기한 음식이었다.


또 하나는 참치를 살짝 구워서 잘게 부순 피스타치오를 바르고, 절인 빨강 양파를 그 위에 올린 요리였다. 플레이팅도 이뻤다. 하얀 소스는 뭐였는지 기억 안 나지만 참치랑 잘 어울렸다. 타르타르소스를 변형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메인 요리로 나는 회를 시켰다. 한국이나 일본식 회를 생각한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회 종류를 좋아하는 내가 해산물 귀한 뮌헨에 살면서 얼마나 굶주렸는지 이런 회를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행복했다. 생선회로는 참치, 연어, 앰버잭(amberjack)이 나왔고, 귀한 줄만 알았던 새우와 스캄피(scumpi, 작은 랍스터) 회도 있었던 게 정말 인상적이었다. 가뜩이나 생새우 회를 먹고 싶었는데, 여기서 먹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코로나 때문에 2년간 한국을 못 가서 해산물에 한이 맺힌 나에겐 최고의 점심이었다.


몇 년 전 슬로베니아와 접경 지역에 있는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Trieste)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었다. 회(사시미)라고 적혀 있어서 시켰는데 회가 아니라 살짝 절인 듯한 생선회여서 실망했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 여긴 제대로 된 회였다. 


아들이 시킨 튀긴 송아지 갈비(Veal cutlet). 갈비를 돈가스처럼 튀겨서 나온 게 독특했다. 고기는 부드럽고 맛있다고 했다. 이런 걸  요즘 한국에서 겉바속촉의 맛이라고 하던가?


아들과 나는 고기와 생선회를 좋아하는 데 반해 남편이랑 딸은 파스타 종류를 더 좋아하는 거 같다.  딸은 요즘 식성이 점점 베지테리언으로 바뀌는 거 같기도 했다. 남편은 부라타(Burrata) 치즈와 스페셜 토마토소스가 들어갔다고 적혀있는 리가토니(rigatoni)를 시켰고, 딸은 생선과 생선알이 들어간 까르보나라를 시켰다. 결국 비린 맛이 난다고 아빠 파스타랑 바꿔먹었다.


다들 배부르다고  디저트를 안 먹겠다고 했지만, 메뉴에서 내가 좋아하는 티라미수 케이크를 보니 안 먹을 수가 없었다. 티라미수 케이크를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안 먹을 순 없다며 하나 시켜서 다 같이 나눠 먹자고 꾀었다. 그런데 웬걸! 차와 커피를 시켰더니 쿠키 세트가 나왔다. 진작 알았다면 티라미수 케이크를 안 시켰을 텐데. 보통 단 걸 크게 좋아하지 않는 내가 당분 섭취를 많이 해서 기분이 더더욱 업되었다.


친구 덕에 강남 간다더니 K 아저씨 덕분에 호강했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요리사의 창작예술품과도 같은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니 말이다. 식사를 다 하고 나니 사장님께서 다시 와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K 아저씨한테 보내주고 싶다고 하셨다. 마지막까지 VIP 처럼 대접해 줘서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K 아저씨께 정말 맛나게 잘 먹었다고 고맙다고 인사하니, 별거 아니라는 손짓과 함께 특유의 무뚝뚝하면서도 쑥스러운 표정으로 '노 프로블럼'이라고 했다. 우리가 맛나게 먹어서 기쁘다고 했다.


아저씨네 이사 갈 때 환송식으로 우리가 유명한 프렌치 식당에서 저녁을 대접했던 적이 있었다. 고마워서 꼭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했다. 친구에게 이 정도 쯤이야! 하는데, 우리 남편 독일 생활 잘했구나! 


마음 맞는 친구 2명만 있어도 타향살이를 견딜만하다고 했다. 게다가 그 마음 맞는 사람이 현지인이라면 더더욱 큰 의지가 된다. 오늘 우린 친구 덕에 최고의 만찬을 즐겼다.

 

사진을 많이 찍긴 했지만 핸드폰 카메라로 멋진 풍경을 다 담긴 힘들었다. 특수 렌즈를 사용한 카메라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멋진 풍경을 다 담을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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