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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 가얏고 Nov 26. 2021

교통사고 in 피렌체

불행 중 다행

Unlucky but how lucky we were!!

7월 1일 밤 오페라 '아이다'를 보고 호텔로 돌아오니 자정이 넘었다. 행복한 마음에 잠들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찍 일어나서 짐을 싸고 피렌체로 출발했다.


원래 계획은 피렌체 근교에 있는 아웃렛(outlet)부터 들러 먼저 쇼핑하고 호텔로 가는 거였다. 코로나 범유행기간에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당장 입을 옷과 신을 신발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은 8개월 동안 봉쇄기간 봉쇄되었다. 오픈해도 코로나 음성 판정 확인서를 지참한 사람만 예약한 후에 쇼핑할 수가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 때문에 주말에만 쇼핑을 할 수 있었는데 주말엔 매장 입구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해서 쇼핑하는 게 쉽지 않았다.




베로나에서 피렌체까진 차로 대략 236km.

 

피렌체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다되었다. 아웃렛에서 먹으려다 차에 짐도 많으니 호텔에 짐 풀고 점심 먹은 후 쇼핑가기로 했다. 방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해서 체크인만 하고 짐은 컨시어지에 맡기고 점심 먹으러 갔다.


점심은 호텔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인데 피렌체에 올 때마다 들르는 '피오렌티나 스테이크' 맛집이다. 파스타와 맛난 스테이크를 먹고 아웃렛으로 출발했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았다.


피렌체 다음엔 스페인으로 넘어갈 거라 앞으로 있을 한 달간의 여행에 대한 기대로 잔뜩 설레어 있기도 했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아웃렛 근처의 꼬부랑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쿵'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멈췄다. 그 순간은 어떤 상황인지 어리둥절했다.


운전석 쪽 사이드미러가 망가진 걸 보고선 가벼운 접촉사고라고 생각했다.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몸이 앞으로 쏠리는 정도밖에 안 되는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가벼운 접촉사고인데도 소리가 엄청 크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좌르르 하며 유리 파편이 쏟아졌다. 곧이어 뒤에 앉은 딸의 비명이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딸의 얼굴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이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을 텐데, 난 천천히 순서대로 다 기억난다. 영화에서 보는 느린 동작처럼.




쏟아진 유리 파편들이 우리 딸을 덮친 거였다. 얼굴에서 피가 나니 딸은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얼굴에 피를 흘리며 울고 있는 딸을 보니 나도 정말 무서웠다.


아들과 남편은 무사한 거 같았다. 딸을 살펴보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도로 위가 아수라장이었다. 어쩌다 사고가 난 건지 누구랑 부딪힌 건지 상대편 차는 어딨는지.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커브 길을 돌던 반대편 화물차에서 뭔가가 떨어졌다고 했다. 도로 위에 떨어진 물체를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커서 우리랑 부딪힌 차가 쓰러진 건 줄 알았다. 저 물체가 우리 차를 치고 우리 뒤를 따라오던 차를 들이받았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플라스틱 자르는 기계인데, 무게가 대략 4톤 정도는 될 거라고 했다.


어떻게 저 큰 기계가 떨어질 수 있을까? 어떻게 저 큰 기계를 제대로 묶지도 않고 달릴 수가 있는 걸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번 사고는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안전사고였다.


그나마 위로 떨어지거나 앞에 떨어지지 않고 옆을 긁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비록 긁힌 옆면은 다 찢어졌지만...


다이아몬드 같은 유리 파편이 몸에 부딪혔을 땐 아프지 않았다. 몸에 박히지도 않았고 긁히지도 않았다. 아들과 나는 다친 곳도 없고 피도 안 났기에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온몸에서 반짝거리는 유릿가루 때문에 몸이 따갑기 시작했다. 잘 보이지도 않고 그냥 닦아 낼 수도 없었다. 흐르는 물에 씻는다면 좋겠는데 그럴 수도 없었다.


구급차를 불렀다고 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한참 만에 구급차가 왔는데, 우리 뒤차의 여성 운전자가 크게 다쳐서 먼저 타야 했다. 구급차를 한 대 더 불러야 했다.


사고 현장에서도 시간이 꽤 지체됐다. 경찰이 와서 뭔가를 묻고 우리 신분증을 달라고 하며 분주했다. 남편은 남편대로 우리를 챙기랴 사고를 낸 화물차량에도 갔다가 경찰한테 사고 경위도 설명하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했다.

옵션으로 설치한 에어커튼이 작동했더라면 유리파편이 우리 몸에 떨어질 일이 없었을 텐데, 하필 센서 부분이 망가졌는지 커튼이 작동하지 않았다.


드디어 구급차 한대가 더 왔다. 구급대원이 다시 사고 경위를 물었고 우리 중에 제일 많이 다친 딸을 먼저 태우고 아들과 내가 탔다. 남편도 병원을 가야 할 거 같은데 남아서 사고 수습을 하겠다고 했다.


평소에 누나를 무척 따르던 아들은 처음엔 괜찮아 보였는데, 구급차를 타고 있는 누나의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호흡곤란을 겪기 시작했다. 나도 어리둥절해 있다가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모든 일들이 현실로 다가왔고 겁나기 시작했다.


가는 동안 사고 경위를 작성하는 듯했다. ID카드를 보여달라고 했는데 아이들 건 호텔 체크인을 하면서 호텔에 둬서 없었다. 다행히 남편의 핸드폰에 사진으로 저장된 게 있어서 남편이 오길 기다렸다가 보여줬다.


어디서 태어났느냐 지금 사는 곳은 어디냐 등 많은 질문이 있었다. 그나마 우리가 EU 국가에 살고 있어서 일 처리가 좀 쉽게 된 거 같기도 했다.


꼬부랑 언덕길을 사정없이 달리며 내려가던 구급차

난생처음 구급차를 탔다. 에어컨도 안 틀고 창문만 열어둔 상태에서 차가 달렸다. 꼬부랑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게다가 난 뒤돌아보고 앉은 상태였다.


구급차는 원래 이렇게 승차감이 없는 건가? 이 정도로 심하게 흔들리면 환자가 상당히 고통스럽겠단 생각이 들었다. 난 멀쩡한 상태에서 탔는데도 괴로웠다.


더운 여름날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으론 차 안의 기온은 낮춰주질 못했다. 승차감 전혀 없는 차 안에서 한참을 흔들리며 내려가니 속이 메스껍기 시작했다. 가슴도 점점 더 답답해지는 게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얼른 내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 왼쪽으로 구급 대원과 나란히 앉아있던 아들의 얼굴에선 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마치 사우나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차멀미가 날 법도 한데 아무 불평 없이 앉아있었다.


아들은 아기 때도 저랬다. 긴장하면 더 무덤덤해 보였다. 아기 때부터 오해를 받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꾹 참고 있는 모습이 듬직하기도 했지만,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안쓰럽기도 했다.


온몸에 유리 파편을 뒤집어쓴 딸은 누워있어야 했지만, 유리 파편 때문에 누울 수가 없다고 했다. 구급대원이 침대 등받이를 세워서 앉을 수 있게 해 줬지만, 나처럼 뒤로 앉은 상태에서 흔들리며 가니 멀미가 나는 듯했다.


구급대원이 10분만 가면 된다며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그 '10분만 가면 된다'는 말을 3번 정도 반복했을 때 병원에 도착했다. 도대체 우린 어느 도시에 와있는 걸까?




유럽이 이렇다. 독일에 살다 보니 이런 시스템에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탈리아는 더 심했다. 나중에 호텔로 가는 것도 걱정됐다. 구급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남편이 수시로 문자를 보냈다. 진행 상황도 알려줬고 우리 안부도 물었다. 나중에 택시 타고 호텔에서 만나자고 했다.


병원은 피렌체에 있는 건가? 호텔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구급대원이 병원 이름과 병원 위치를 알려줬지만, 이곳 지리를 모르니 어딘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택시비는 얼마나 나올까? 택시가 없으면 어쩌지? 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남편은 사고 현장에 남아서 경찰이랑 간략한 조서를 꾸몄다고 했다. 보험사를 비롯해 변호사 등 도움받을 수 있는 모든 지인에게 연락도 한 거 같았다. 내가 아이들을 챙기고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그 많은 일을 다 해낸 거다.


평소에 '곰손'이라며 놀리고 행동이 굼뜨다고 놀렸는데, 우리 남편도 이렇게 멀티로 일을 할 수 있구나 싶어서 든든하기도 했다. 운전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번 사고의 충격으로 운전하는 걸 힘들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됐다.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무척 길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 셋도 마음이 점점 안정됐다. 다행히 딸의 얼굴에서 나는 피도 멈췄다. 우리 상태가 심각하지 않아서인지 한참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결국 지나가는 의료진 아무나 붙들고 왜 아무도 우릴 돌보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우리 딸은 유리 파편 때문에 누워있을 수도 없으니 몸에 묻은 유릿가루라도 빨리 제거해 달라고 했다. 우린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니 의사한테 괜찮다는 진단만 받으면 바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제야 간호사가 물티슈를 들고 왔다.

 


뭐야? 이게 전부야?
 무슨 흡입기 또는 뭔가 특별한 방법이
있을 줄 알았더니.....!



난 정말 병원 오면 유릿가루를  제거할 전문적인 방법이 있는 줄 알았는데 물티슈라니!! 간호사가 물티슈로 딸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저렇게 쓱쓱 닦아내면 유리가 우리 딸 피부를 전부 긁어대겠다 싶어서 내가 같이 거들었다. 유리 파편보다 더 위험한 게 유릿가루란 걸 처음 알게 됐다.


영화에서 보면 유리창을 뚫고 기거나 몸 위로 유리 파편이 쏟아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 파편은 바닥으로 바로 떨어지지만, 유릿가루는 몸에 붙어서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게 정말 아프다.


우선 딸의 옷을 벗겼더니 온몸에 유리 파편과 가루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옷을 전부 뒤집어서 유릿가루를 털어냈다.


물티슈로 온몸에 붙은 유릿가루를 조심스럽게 제거해 나갔다. 간호사는 나에게 맡겨 두고는 사라져 버렸다. 딸이 '간호사가 닦는 건 아픈데, 엄마가 닦는 건 안 아파. 엄마가 훨씬 더 잘해'라고 했다.


'당연하지, 엄만 우리 딸 몸에 어떤 상처가 나는 것도 바라지 않아. 쓱쓱 닦아내면 유릿가루가 온몸을 긁어서 아프고 상처 나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해서 닦아서 안 아픈 거야'라고 했더니 딸이 감동한 거 같았다.




요즘 치킨 사건을 비롯해 딸이랑 부딪히는 경우가 있었는데(https://brunch.co.kr/@jinseon/60), 엄마가 자기를 많이 사랑한다는 걸 느낀 거 같았다. 아들도 발바닥에 유릿가루가 박혀서 아프다고 했다. 여름이라 우리 전부 슬리퍼를 신고 있었던 게 문제였다.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간혹 가시처럼 뾰족한 유리가 발바닥에 박혀 있는 것도 보였다. 눈에 띄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어떤 건 아프다고 하는데 보이지가 않아서 제거하는데 애먹었다.


계속 재촉을 해서 그나마 마지막 의사 진료까지 일찍 끝났다. 의사로부터 집에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다행히 모두 별 탈 없었다. 딸의 얼굴에 난 상처에 바를 연고 처방을 해줬다. 


응급실에서 대기 시간이 길긴 했지만, 그러면서 안정도 취할 수 있었다. 의사로부터 괜찮다는 진단을 받고 나니 여유도 생겼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거지도 잘생겼다는 우스갯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정작 잘생긴 남자를 못 봤다. 그런데 오늘 병원 응급실에서 잘생긴 의사를 많이 봤다. 아니 여기에 다 숨겨둔 건가? 안심되니 세상이 전부 아름답게 보이는 건가?




의사 진료를 받을 때쯤 응급실로 들어서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걱정됐나 보다. 경찰서 가서 조서 작성을 하고, 우리 차를 견인하는 곳까지 따라갔다가 택시 타고 왔고 택시는 밖에서 대기 중이라고 했다. (구급대원이랑 경찰 그리고 의사는 영어를 할 줄 알았다)


남편을 보니 얼마나 안심이 됐는지 모른다. 코로나 때문에 응급실 출입은 거절당했지만 얼굴 보니까 정말 좋았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남편도 이런 상황은 처음 겪는 일일 텐데, 남편을 보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 같은 안정감이 든다. 어렸을 때 엄마를 보면 들었던 그런 마음이다. 이런 게 가족인가 보다. 남편도 나에게서 안정감을 느낄까? 내가 강한 엄마, 강한 아내가 되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청구서를 보니 우리 셋 각각 25유로씩이었다. 생각보다 작게 나와서 참 다행이었다. (그땐 병원비 등 보험회사에서 지급할 거란 생각을 못 했다)


구급차 비용까지 꽤 비싼 줄 알았는데 구급차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의사는 나중에 송금하면 된다고 해서 밖으로 나오는데 원무과 직원인듯한 사람이 붙잡았다. 여기서 내라고 했다. 


공보험이었으면 일이 더 쉽게 해결이 되었을 텐데, 우린 사보험이라 돈을 내고 나중에 직접 보험사에 청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 사람은 처음 병원에 들어올 때부터 우리에게 계속 돈에 관련된 얘기만 했었다. 사고 후 독일 거주증을 얼마나 많이 보여줬는지 모른다. 하필 이번에 갱신하면서 사진도 이상하게 찍힌 거주증을!


병원비도 지불하고 드디어 호텔로 갈 수 있었다. 택시를 전세 냈다고 하더니 벤츠 미니버스여서 깜짝 놀랐다. 관광지라 이런 택시가 가능한가 보다. 기사분이 물도 주고 서비스가 아주 좋았다. 온종일 놀라고 긴장한 후라 이런 안락함이 더 좋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아무도 크게 다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딸 다음으로 남편이 다쳤을 텐데(나중에 보니 머리카락 속에서 유리 파편이 나오고 여기저기 긁혀서 상처가 많았다) 병원 진료를 받지 않은 것도 걱정됐다. 


그러면서 사고상황을 생각하게 됐다. 어떤 사고를 당하고 나면 다들 하는 생각이 '그 순간만 피했다면'이다. 사고는 아차 하는 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내가 호텔부터 가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원래 계획대로 바로 아웃렛으로 가자고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렌체로 가는 도중에 도로가 밀려 30분 정도 연착된다는 내비게이션의 알림을 들으면서 계획을 변경하게 된 것이다. 그냥 원래 계획대로 할 것이냐 아니면 호텔 체크인을 하고 근처에서 제대로 된 점심을 먹고 아웃렛으로 갈 것이냐 중에서 후자를 선택한 거다. 날씨가 더워서 차 안에 가야금을 오래 두기에도 불안했고, 베로나 호텔에서 받은 와인과 프로세코도 걱정됐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론 차에 짐이 없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점심 먹고 방에 들렀다 가기로 한 계획을 변경하지 않았더라면'하는 얘길 꺼냈다. 점심 먹고 방을 둘러보고 나올까? 하다가 그냥 짐을 컨시어지에 맡겨두고 출발했던 거였다. 그 순간만 피했다면... 사고는 그렇게 아차 하는 순간이고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는 거다. 


그나마 그 기계가 스치듯 우리 옆을 치고 간 것도 다행이었고, 크게 다치지 않은 것도 천만다행이었다.





이제 앞으로가 문제다. 우리의 여행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오늘 밤에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이번 여행으로 다시 한번 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필요한 거 있음 뭐든 다 말하라는 옆집 아저씨 C, 뮌헨에서 우리를 태우러 오겠다고 해준 친구 M, 우리를 위해 이탈리아-영어 번역을 전부 다 해준 이탈리안 친구 M,  우리를 위해 경찰서까지 들어와서 모든 상황을 설명해 준 택시 기사 아저씨까지. 


정말 고마웠다. 


보험사에서 첫날 호텔비를 지급해 주겠다고 해서 하룻밤 더 묵기로 했다.

뮌헨까지 돌아갈 수 있게 비행기표나 렌터카를 보내준다고 했다. 짐이 많아서 렌터카를 빌리기로 했다. 


월요일에는 우리 신형 차를 예약하기로 했다. 차가 나올 동안은 상대편 보험회사에서 렌터카를 제공해 주기로 했다. 렌터카를 빌리면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다. 겁도 났지만, 이대로 멈추면 영원히 트라우마가 될 거 같기도 했다. 


제발 이제는 아무 문제없기를. 모든 액땜을 다 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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