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
오랜만에 여행길에 오른 연수네 가족.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는 연수와 두 살 아래인 연우에게 보다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떠나온 여행이었다. 하지만 엄마 아빠에게는 이번 여행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연수의 성격이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그것. 공부는 곧잘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책읽기를 좋아하는 연수의 내성적인 성격은 부모님에겐 늘 걱정거리였다.
유당공원
─ 엄마, 아직 멀었어?
─ 어, 그래 이제 다 왔어. 여보. 애들 힘들겠어요. 어디 잠깐 쉬어갈 만한 데 없을까요? 아, 유당공원 어때요?
‘유당공원’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신문에서 유당공원이 전통적인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보다도 유당공원은 엄마 아빠에게 이 세상 어느 곳보다 남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 그래, 그럼 우리 유당공원에서 잠깐 쉬었다갈까?
서너 시간 답답한 차 안에만 있던 연우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 유당공원? 거기 놀이공원이야?
─ 아니, 놀이공원은 아니고 아빠하고 엄마가 너희만 할 때 즐겨 찾던 곳이란다.
─ 여보, 당신 혹시 잊은 건 아니겠죠? 당신이 내게 프러포즈를 한 곳이 어디라는 걸.
─ 아, 그럼. 여기 유당공원이었잖아.
─ 와, 아빠가 엄마한테 결혼해 달라고 프러포즈한 데가 유당공원이라고? 어떤 곳일까?
한껏 들뜬 연우와 달리 연수는 여전히 뾰로통한 표정이다. 아빠는 룸미러로 연수의 표정을 살폈다. 연수도 아빠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 사이 차는 도로를 벗어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 와, 멋지다. 아빠 저기 연못이 있어. 주위로 나무도 많고.
차가 멈춰 서자 연우는 얼른 카메라를 챙겨들고 거대한 수양버들이 늘어선 연못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연수는 차에서 내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 전 그냥 차에서 책이나 보고 있을래요. 엄마 아빠나 다녀오세요.
─ 연수야, 그래도 잠시 내리지 그러니. 바람도 쐴 겸.
엄마가 달래봤지만 연수는 집에서 가져온 시집에 얼굴을 묻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엄마에게 모르는 척 하라는 손짓을 했다.
─ 그래. 그럼 차에서 책보고 있으렴. 우리 금방 다녀올게.
─ 네.
연우, 그리고 아빠 엄마가 차에서 내리고 난 후에야 연수는 고개를 들어 차창 밖을 잠깐 내다봤다. 수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수양버들이 연못을 따라 길게 자리해 있는 모습이 멋스러웠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연수의 시선은 다시 책을 향했다.
엄마 아빠가 유당공원을 마지막으로 찾은 건 15년 전이다. 급작스레 서울로 발령이 난 아빠는 급한 마음에 이곳으로 엄마를 불러내 프러포즈를 했고, 그해 바로 결혼해 이듬해 연수를 낳았다. 신첩살림을 서울에 차리는 바람에 이후 유당공원은 엄마와 아빠의 기억 속에서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래서일까. 익숙하게만 느껴지던 그곳이 조금은 낯설게 다가왔다. 연못과 주변의 수양버들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콘크리트다리는 목책교로 바뀌었고, 연못을 둘러싼 석축도 전과는 달라보였다.
─ 참 오랜만에 와 보네요.
─ 그러게.
그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분주히 사진을 찍어대던 연우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 엄마 아빠, 이리 와. 저기 진짜 큰 나무가 있어. 여기 나무하고는 비교도 안 돼. 옆에는 비석들도 있고.
─ 어, 그래? 어디? 어디?
언제 다녀왔는지 연우는 공원 끝자락에 자리한 이팝나무와 비군(碑群)을 보고 온 모양이었다. 뭔가 대단한 걸 발견한 듯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올라있는 연우의 모습에 부부는 웃음이 났지만 한껏 들뜬 연우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짐짓 놀라는 척을 했다. 연우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에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유당공원의 명물 이팝나무였다.
─ 아빠, 그런데 나무 이름이 왜 이팝나무야? 외국에서 들어온 나문가?
─ 하하, 아니란다. 이 나무는 여름이 시작되는 절기, 그러니까 입하에 하얀 꽃을 피우거든. 그래서 입하목이라고 부르다가 그 발음이 변해 이팝이라 불리게 되었단다. 그리고 나무에서 피는 작고 하얀 꽃이 마치 쌀을 닮았다고 해서 쌀밥나무라 부르기도 하지.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의 꽃 피는 모양을 보고 그해 벼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니, 재밌지 않니?
─ 우와. 그렇구나. 그런데 정말 크고 멋지게 생겼다.
─ 그렇지? 높이가 17m에 둘레가 3m가 넘는단다. 우리나라에 있는 이팝나무 중 그 모양에 있어서는 최고로 치는 게 바로 이 이팝나무란다.
─ 아빠, 아빠도 그럼 이팝나무에 열린 하얀 꽃 봤어?
─ 그럼. 봤지. 아빠가 엄마한테 프러포즈할 때, 이 큰 나무가 하얀 꽃으로 가득했거든.
─ 와, 멋졌겠다. 근데 왜 하필 여기서 프러포즈를 했어?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안 하고? 엄마가 조금 서운했겠다. 그치 엄마?
─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았어. 엄마는 그 때 정말 행복했어. 왠지 아니? 바로 이 이팝나무의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거든.
행복한 표정으로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엄마가 미소 가득한 얼굴로 입을 뗐다.
─ 정말? 오, 아빠 쫌 멋진데. 그런데 아빠...
연우가 아빠를 돌아봤을 때, 아빠는 수줍은 듯 저만치 앞서 걷고 있었다. 웃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던 연우와 엄마도 아빠의 뒤를 따랐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연우는 이팝나무 옆에 도열하듯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는 비석들을 둘러보고 차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연수는 차에 앉아 책만 읽고 있었다.
─ 언니, 언니, 여기가 아빠가 엄마한테 프러포즈한 곳이래. 언니 몰랐지?
─ 그래?
연수는 관심 없다는 듯 그렇게 한 마디 툭 내뱉고 말았다. 연우는 연수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아랑곳없이 자기가 보고 온 것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 그리고 여기는 인공공원이야. 그러니까. 원래 있던 게 아니라 사람이 연못도 만들고 나무도 심었다는 얘기지. 1528년 광양현감 박세후가 풍수지리설에 근거해서 조성했대. 그래서 그 뭐더라. 그래, 비보림(裨補林)이라고 부른대. 근데, 아빠. 비보림이 무슨 뜻이에요?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연우의 말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연수가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연우를 쏘아보며 한 마디 했다.
─ 바보야. 그것도 모르냐? 비보는 부족한 부분을 도와서 채워주는 걸 말하는 거야. 여기에는 나무를 심어 놓았으니 비보림이라고 하고 돌을 쌓아두면 비보석, 탑을 세우면 비보탑이라고 부르는 거야.
─ 우리 연수가 제대로 알고 있구나. 그래. 연우야. 언니 말이 옳단다. 이곳 읍내리는 광양의 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북쪽에 위치한 당산은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이고, 이곳은 학이 나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는구나. 호랑이와 학, 분명 학이 약하지. 그래서 이런 큰 숲을 만들어 그 부족한 기운을 채워주는 거지.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야. 이들 숲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기도 하고, 숲이 마을을 가려 전시에는 적의 눈에 잘 띄지 않게 보호해주는 역할도 했단다.
─ 치. 언니 니 잘났다. 아빠. 우리 이제 어디로 가?
연우는 언니인 연수만 칭찬하는 아빠가 얄미워 입을 삐죽이 내밀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 음, 다음은 연수가 좋아할만한 곳인데. 거기가 어딜까?
─ 언니가 좋아할만한 곳? 흥, 그럼 난 관심 없어.
책에 얼굴을 묻고 있는 연수의 눈이 순간 반짝 빛났다. ‘내가 좋아할만한 곳?’
매천 황현선생 생가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자그마한 시골마을이었다. 아빠의 손에 이끌려 차에서 내린 연수는 주위를 살폈다. 그리곤 이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좋아할 만 곳이라고 하더니, 이게 뭐야. 그냥 시골이잖아. 치.’
연수는 다시 차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미 한참을 걸어온 후라 차가 보이지 않았다. 연수는 아빠에게 속았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그래도 시집을 들고 내린 게 다행이다 싶었다. 좁은 마을길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저만치 초가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매천 황현선생 생가.
‘황현?’ 연수는 그 이름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연수의 머릿속에 세종시절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정승이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수는 대문으로 들어서는 가족들과 떨어져 생가 입구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을 찬찬히 살폈다.
...황현선생의 본관은 장수(長水)이며 호는 매천(梅泉)으로 황희정승(黃喜政丞)의 15대 손이며, 시골 선비였던...
‘아, 그랬구나. 이 분이 황희정승의 후손이었구나.’
연수의 얼굴에 잠시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호기심은 거기까지였다. 등 떠밀리다시피 떠나온, 원치 않던 여행이고 보니 더 이상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생가로 돌아온 연수는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피는 연우와 달리 툇마루에 앉아 눈으로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시집을 펼쳤다. 연수가 가장 좋아하는 조지훈 시인의 시집이었다. 책장을 들추던 연수는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시 한 편을 골라 읽어 내려갔다.
차운 계절을 제 스스로의 피로써
애닯게 피어있는 코스모스는
方向(방향) 없는 그리움으로 발돋움하고
다시 鶴(학)처럼 슬픈 모가지를 빼고 있다.
붉은 心臟(심장)을 뽑아 머리에 이고
가녀린 손길을 젓고 있다.
연수의 손에 들린 시집 위로 햇살이 스몄다. 연수는 시 읽기를 멈추고 처마를 올려다보았다. 순간 연수는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마치 자신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듯한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연수는 가만히 눈을 감아 보았다. 지금의 감정을, 가을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연수가 눈을 뜬 건, 인기척 때문이었다.
가늘게 뜬 연수의 눈으로 태양을 등지고 선 사람의 실루엣이 들어왔다. 깜짝 놀란 연수는 자세를 바로 잡으며 눈을 크게 떴다. 검은 형체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노신사로 바뀌어 있었다. 인자한 모습의 노신사는 미소를 머금은 채 연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 음... 나는...
─ 아, 문화해설사님이시구나?
─ 문화해설사? 그래, 그래. 나는 이곳에서 근무하는 문화해설사란다. 그런데 넌 누구니?
─ 전 연수라고 해요. 오늘 부모님, 동생과 함께 광양으로 여행을 왔어요. 사실 저는 여행보다 집에서 책 보는 게 더 좋은데.
─ 허허, 그래? 그런데 지금 보고 있는 책은?
─ 아, 이 책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조지훈 선생님의 시집이에요. 제 꿈이 시인이거든요.
─ 시인이라...
─ 네, 그런데...
연수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노신사는 마당을 가로질러 뒤채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연수도 자리에서 일어나 노신사의 뒤를 따랐다. 본채를 돌아서니 아담하지만 멋스러운 정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짧은 계단을 올라 정자에 자리 잡은 노신사는 연수에게 옆에 와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 연수라고 했지? 시인이 꿈이라고?
─ 네. 그런데 시는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 그래? 뭐가 그리 어렵더냐?
─ 음... 잘은 모르겠는데, 좋은 시를 읽다보면 단어 하나하나에서 생명력이 느껴지거든요. 한데 저한테는 그게 많이 힘들어요. 자연과 교감하는 마음, 뭐 그런 거요.
─ 허허. 연수가 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그래 시를 쓰기 위해서는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교감이 필요하지. 그 대상이 자연이 되었든, 사람이이 되었든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이 우선 되어야 한단다. 상대를 배려하고 아끼는 그런 마음 말이다.
─ 열린 마음이요? 참, 저 방금 전에 정말 이상한 경험을 했어요. 할아버지 만나기 바로 전에요. 저기 툇마루에 앉아있는데 바람하고 구름이 제게 말을 건네는 것 같더라구요.
─ 하하, 오늘 연수가 좋은 경험을 했구나. 그게 바로 열린 마음이란다. 자연이 건네는 말에 귀기울일 수 있는 따뜻한 마음.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좋고, 글을 많이 써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여행을 다니며 견문을 넓히는 것도 시인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란다. 어쩌면 여행자의 마음이 시인의 마음과 가장 비슷할 지도 모르겠구나.
연수는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지는 걸 느꼈다. 서울에서 광양까지 오는 내내 가슴을 짓누르던 답답함도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출발부터 온갖 짜증을 부리며 따라나선 여행길에서 자신이 그토록 알고 싶었던 시인의 마음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구나. 아까 보니 부모님과 동생이 저쪽으로 가는 것 같던데. 연수도 얼른 가봐야지.
─ 아, 그러네요. 이러다 저 길 잃어버리겠어요. 히히
노신사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연수에게 곱게 접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연수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노신사를 올려다보았다.
─ 나중에, 이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그때 읽어 보거라.
때마침 대문 밖에서 연수를 부르는 연우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언니. 뭐해. 우리 간다.
─ 그래, 알았어. 지금 갈게. 할아버지 전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래, 그래. 나도 반가웠다. 어여 가거라.
연수는 노신사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서둘러 생가를 빠져나갔다. 대문 앞에서 연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 언니 뭐했어? 우리는 저기 사당하고 황현선생 묘소도 구경하고 왔는데.
─ 그래? 좋았어?
─ 응. 근데 언니 얼굴이 많이 좋아졌네? 이제 화 다 풀렸어?
─ 화는 무슨. 빨리 가자. 엄마 아빠 기다리신다.
환해진 연수의 얼굴에 연우도 덩달아 신이 났다. 둘은 마을 입구에 세워진 아빠의 차로 달려갔다. 연수는 차에 오르면서 노신사가 건넨 쪽지를 슬쩍 쳐다봤다.
─ 아니, 우리 연수 표정이 언제 이렇게 밝아졌지?
─ 그러게요. 연수야 무슨 좋은 일 있었니?
연수의 밝아진 표정이 반가운 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번 여행을 준비한 아빠에게는 더 없이 고마운 일이었다.
─ 네. 저기 생가에서 문화해설사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기분이 많이 좋아졌어요.
─ 문화해설사 할아버지?
아빠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 네. 할아버지하고 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많이 편해졌어요. 여행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구요.
─ 언니, 그건 그렇구. 이것 좀 봐봐. 언니 보여주려고 내가 카메라로 찍어왔어. 여기가 사당이고, 여기가 황현선생의 묘소야 주위에 황현선생의 조부와 부친 그리고 아들의 무덤도 함께 있더라구. 참, 여기 이분이 황현선생이래. 선생의 연역을 새겨놓은 책 모양의 비석에 이렇게 얼굴이 새겨져 있더라구.
연우가 디지털카메라를 들이밀며 아빠와 연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함께 가지 못한 연수를 위해 찍어온 것들이었다. 연수는 연우가 찍어온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천천히 살펴보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묘역과 세월이 느껴지는 사당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런데 황현선생의 모습을 찍은 사진에서 연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동그란 안경에 가냘픈 얼굴. 그 모습이 방금 전 만난 문화해설사 할아버지와 무척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황현선생은 한말 역사가이자 뛰어난 문장가였단다. 특히 시에 능통하셨는데, 그 분이 남긴 시가 무려 8,000여 수에 이른다고 하는구나.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시를 남기신 분이 황현선생일 거야. 그런데 슬프게도 선생은 을사늑약 이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자 그 울분을 절명시 4수에 담아내고는 자결을 하셨단다. 황현선생을 진정한 선비, 우국지사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단다.
─ 그래. 맞다. 절명시. 언니 이거봐봐. 이건 아까 생가에서 찍은 건데. 이게 바로 그 절명시래. 내가 읽어줄게. 한번 들어와. 난리 속에 살다보니 백발이 성성하구나. 몇 번이나 죽으려 했지만 그 뜻을 못 이뤘도다.
연수는 문뜩 노신사가 건넨 쪽지가 생각났다. 연수는 손에 꼭 쥐고 있던 쪽지를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당부가 있었기에 펴보지 않고 다시 주머니 속에 잘 넣어 두었다. 연수는 시선을 돌려 차창 밖 생가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자신과 지금껏 이야기를 나눈 문화해설사 할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때 다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 연수야, 이제 우리 어디로 갈까?
─ 광양제철소. 우리 거기 견학하기로 했잖아요.
연우가 끼어들며 대답했다. 그제야 연수로 고개를 돌려 아빠를 쳐다봤다.
─ 그래, 그랬지. 그런데 어쩌지? 제철소 견학은 내일해야겠는데. 개인 견학은 일요일에만 가능하거든. 그래서 예약도 내일로 했단다. 그러면 우리 컨테이너 부두에 먼저 가 보는 건 어떨까?
─ 컨테이너 부두? 무슨 이름이 그래?
연수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연수도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봤다.
─ 컨테이너 부두는 일반 부두와 달리 자동차나 가전제품 같은 다양한 수출품을 컨테이너에 실어 외국으로 보내기도 하고, 또 수입품을 받기도 하는 곳이란다.
─ 아,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부두. 그래서 컨테이너 부두구나.
연수의 목소리가 한층 밝아져 있었다.
─ 여보, 컨테이너 부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잖아요?
─ 응.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광양항 홍보관이라도 한번 들러보는 게 좋지 않겠어? 광양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월드마린센터 전망대에도 올라보고. 그곳에서는 컨테이너 부두는 물론 광양제철소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구.
컨테이너부두 광양항 홍보관 & 월드마린센터 전망대
연수네 가족은 먼저 광양항에 대한 내용을 살필 수 있는 광양항 홍보관으로 향했다. 새하얀 외관에 단층으로 지어진 홍보관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단아한 모습이었다. 입구에서 안내책자를 받아든 연수네 가족은 홍보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서부터 차근차근 전시패널과 디오라마를 살펴보는 연수와 달리 연우는 벌써 체험관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언니, 이리 와봐. 여기 게임기가 있어. 히히.
─ 잠깐만, 나 이것 좀 보고.
연수는 준비해온 메모지에 광양항의 역사와 컨테이너의 정의 그리고 정유재란 당시 마지막 해전이자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잃었던 노량해전이 이곳 광양만 앞에서 벌어졌다는 사실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 아빠, 컨테이너를 옮기는 크레인도 종류가 두 가지예요. 배에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건 컨테이너 크레인이라 하고, 컨테이너를 야드에 쌓는 건 트랜스퍼 크레인이라고 해요.
─ 언니, 언니, 빨리 오라니까. 여기 그 크레인이 있다고. 트랜스퍼 크레인 말이야.
체험관의 컨테이너 하역 시뮬레이션 앞에서 신중한 표정으로 조작키를 작동시키며 컨테이너 하역 체험을 하고 있는 연우는 연신 언니를 불러댔다. 연수는 연우의 애타는 목소리에 아랑곳 않고 천천히 홍보관 곳곳을 구경한 뒤에야 체험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야, 이거 신기하네. 비켜봐, 나도 한번 해보자.
─ 옆에도 있잖아. 똑같은 거야.
아이들이 한참이나 게임 같은 컨테이너 하역 체험을 하는 사이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컨테이너 부두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월드마린센터는 오후 6시까지만 전망대를 개방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도 두 말 않고 따라 나섰다. 광양항 홍보관에서 월드마린센터까지는 차로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에서 운영하는 월드마린센터는 지하1층 지상19층의 거대한 돛대모양의 건물로 입구에 멋스러운 판옥선도 한 대 서 있다. 연우의 제안으로 판옥선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연수네 가족은 로비에서 간단히 신상명세를 작성하고 바로 19층 전망대로 올랐다.
─ 와, 저기가 컨테이너 부두예요?
─ 언니, 저기 봐. 자동차들이 마치 장난감 같애. 저기,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옮기네. 언니 우리 저거 해봤지.
삼면이 통유리로 이뤄진 전망대에서는 컨테이너부두는 물론 저 멀리 광양제철소의 모습도 한눈에 들어왔다. 연우는 유리창 앞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고, 연수는 전망대 안에 있는 부두 모형과 창밖을 번갈아 보며 부두의 모습, 주변 지형을 메모지에 꼼꼼히 기록을 했다.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만큼 빛나던 태양도 이제 서산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다.
광양제철소 견학
이튿날. 연수네 가족은 일찌감치 광양제철소로 향했다. 금호대교를 지나 얼마가지 않아 견학용 버스가 출발하는 복지센터에 닿을 수 있었다. 복지센터 1층 로비에는 연수네 가족 외에도 서너 가족이 더 모여 있었다. 버스는 정확히 10시에 복지센터 앞에 도착했다. 연우는 버스가 도착하기가 무섭게 버스 위로 뛰어 올라 가장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언니, 언니. 빨리 와. 내가 자리맡아 놨어.
연수는 피식 웃으며 연우의 옆으로 가 앉았다. 물론 창가는 연우의 몫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연수와 연우의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복지센터에 모여 있던 가족들이 모두 탑승한 뒤 버스가 출발했다. 출발과 동시에 홍보직원의 안내도 시작됐다.
─ 안녕하십니까. 저희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방문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을 제철소 현장으로 안내해드릴 포스코 홍보담담자입니다.
인상 좋아 보이는 홍보사원은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광양시에 대한 내용, 그리고 철의 유용성에 대한 내용 등을 알기 쉬운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 여러분 왜 철을 ‘소재의 왕자’ ‘산업의 쌀’이라 부르는지 아시나요? 많은 분들이 철이라고 하면 크고 무거운 것만을 생각하시지만 사실 철은 우리생활과 가장 밀접하고도 친근한 소재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이 즐겨보시는 텔레비전의 브라운관에도 철이 들어가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아노에도 철이 사용됩니다. 그리고 고무로만 되어 있을 것 같은 자동차 타이어 안에도 철이 들어갑니다. 펑크를 예방하기 위한 ‘스틸 타이어 코드’라는 것이 바로 철강재입니다. 또 하나, 옷을 만들 때 철이 사용된다는 걸 아시나요? 물론 일반 옷은 아니구요. 우주복 같은 기능성 옷을 만들 때 머리카락의 50분의 1밖에 안 되는 강철실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복지센터를 떠난 버스는 어느새 백운아트홀, 주택단지 그리고 광양축구전용구장을 거쳐 제철소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제철소의 모습에 넋이 빠진 연우와 달리 연수는 홍보사원의 설명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메모를 했다. 사실 연수는 이번 여행에서 광양제철소가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출발할 때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싫다싫다 하면서도 따라나섰던 것은 책에서만 보았던 광양제철소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날 인터넷을 뒤져 광양제철소에 대한 정보를 꼼꼼히 찾아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 언니, 저기 붉은 모래가 있어?
─ 연우야. 저건 모래가 아니라 철강제품의 원료가 되는 철광석이라는 거야.
어제 같았으면 한마디 쏘아 붙였을 테지만 기분이 좋아진 연수는 연우에게 철강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철광석과 유연탄 그리고 석회석이 필요하며 이들 대부분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호주 등 외국에서 수입해 온다는 내용을 조근조근 설명을 해 주었다.
─ 저기 붉은색을 띠는 게 철광석이고, 음 저 뒤에 검은색을 띠는 게 유연탄이야.
─ 언니 그럼 저기 하얀색 원료는 뭐야?
─ 그러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연수와 연우의 얘기를 유심히 듣고 있던 홍보사원이 웃음 띤 얼굴로 아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 저것도 철광석이란다.
─ 철광석이요? 그런데 왜 붉은색이 아니고 흰색이에요?
연수의 질문에 연우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홍보사원을 바라보았다.
─ 그건 원료들이 바람에 날아가지 못하도록 코팅제를 뿌려놓아서 그런 거란다. 우리가 머리를 감은 후에 흐트러지지 말라고 스프레이를 뿌리듯이 말이다.
버스가 광양제철소의 중앙도로로 접어들자 우측으로 제철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용광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홍보사원의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 광양제철소에는 모두 5개의 용광로가 있습니다. 용광로는 높을 고(高)자를 써서 ‘고로’라고도 하는데 저희 광양제철소에서는 이들 5개의 고로를 통해 하루에 5만여 톤의 쇳물을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 질문 있는데요. 광양제철소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용광로가 있지 않나요?
연수가 짐짓 아는 체를 하며 질문을 했다.
─ 하하. 우리 친구 공부 많이 했네요. 맞아요. 광양제철소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용광로가 있어요. 바로 저희 광양제철소의 1고로가 주인공이에요. 내용적이 무려 6,000㎡에 이릅니다. 세계 최대 규모죠. 우리나라에는 광양제철소 말고도 포항, 당진 등 세 곳에서 모두 12기의 용광로를 운영하고 있답니다.
간단한 안전수칙을 들은 가족들은 공장 외부로 난 철제계단을 통해 열연공장으로 들어섰다. 1200℃로 달궈진 철판을 쏟아내는 열연공장 내부는 찜질방에 들어온 것처럼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홍보사원은 이곳 열연공장은 제선과 제강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23cm 두께의 철판, 즉 슬라브를 책받침보다 얇은 1.2mm의 열연코일로 만들어내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설명 중간중간 거대한 열연기계에서는 빨갛게 달아오른 철판이 연신 쏟아져 나왔다. 연수는 그 모습이 마치 화산에서 흘러내리는 용암같다고 생각했다.
─ 자, 저기 보이는 두루마리 모양의 제품이 열연과정을 통해 제작된 열연코일입니다. 저희 광양제철소에는 1km에 이르는 저 열연코일을 110초에 하나씩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무게가 20톤에 이르는 저 코일 하나의 가격이 무려 1,400만원에 이릅니다. 굉장히 비싸지요? 자 이렇게 해서 오늘의 견학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시 차에 올라 저희가 처음 출발했던 복지센터 앞으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연수는 차에 올라 오늘 보고 들은 내용을 천천히 되뇌어 보았다. 산처럼 쌓여있던 철광석과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모습의 고로들 그리고 용암처럼 쏟아져 나오던 시뻘건 슬라브까지.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광양제철소의 모습을 직접 보고나 뒤라 그런지 마음이 쉬 진정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버스는 제철소 정문을 지나 복지센터로 방향을 틀었다.
광양기독교선교100주년 기념관
─ 아빠, 저기가 아까 우리가 갔던 컨테이너 부두지?
금호대교를 반쯤 지나왔을 때, 불현 듯 연우가 그렇게 물어왔다. 연우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차창 밖으로 광양만과 길게 늘어선 크레인들이 보였다.
─ 그래, 그렇구나. 왜? 연우 다른 데 또 가고 싶니?
─ 응!
─ 아니, 여보 어디 또 들러볼 때가 있어요?
─ 음. 2008년인가? 광양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관이 세워졌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나도 처음 가보는 곳이라.
─ 아빠, 우리 거기 가 봐요.
연수가 연우를 거들며 한마디 했다. 사실 연수도 이제는 여행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 있었다. 떠나올 때만해도 얼른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와 정반대였다.
─ 좋았어. 그럼 우리 가족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광양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관이다. 출발.
광양제철소에서 광양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관까지는 거리가 제법 멀었다. 하지만 그 길이 지루하지 않은 건 예쁜 길이 연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진상면으로 접어들면서 길동무를 자처하고 나선 수어호의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아이들도 창문을 활짝 열고 햇빛에 반짝이는 수어호의 은빛 물비늘을 바라봤다. 수어호의 모습이 조금씩 멀어질 즈음, 광양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관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 아빠 아빠, 저기 산 아래 저긴가 봐요. 와 멋지다.
─ 그렇구나. 이제 다 왔나보다.
주차장에 차가 세우자 언제나처럼 연우가 가장 먼저 차에서 내렸고, 연수도 연우에 질세라 껑충 뛰어 차에서 내렸다. 그런 모습이 아빠와 엄마를 무척이나 행복하게 만들었다. 대화가 그리 많지 않았던,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연수와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해 떠나온 여행이었기에 그 기쁨은 더 컸다. 물론 연우의 해맑은 표정도 아빠와 엄마의 행복에서 빼놓을 수 없었다.
광양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관이 위치한 진상면 황죽리는 예로부터 웅동이라 불리던 곳이다. 이곳에 기념관이 들어선 건 광양 최초의 예배당이 이곳 웅동에 자리해 있기 때문이다.
─ 아빠, 여기 보세요. 광양은 다른 지역과 다르게 선교사가 아닌 일반인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된 곳이래요.
─ 그렇구나. 대부분 지역이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된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구나. 그래 어떻게 선교가 시작된 거라니?
아빠는 연수의 적극적인 모습이 보기 좋아 그렇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 음. 여기 있네요. 그러니까.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일본으로 도망치려던 일본인을 인천까지 뒤쫓아 가 죽이고 웅동마을로 숨어든 한태원 이라는 사람을 잡기 위해 광주에서 찾아온 한 관리가 도박을 일삼는 주민들을 보고 ‘광주에 가면 야소교가 새로 들어왔는데 이를 믿으면 도박을 끊을 수 있다’며 조상학 목사(1877∼1950·공산당에 순교당함)를 소개해 줬대요. 그래서 당시 40세 동갑내기였던 박희원, 서병준, 장기용 등 3명이 1904년 광주까지 3일을 걸어가 조 목사로부터 복음을 받아 와 웅동마을의 농촌 주택 방 한 칸을 빌려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대요. 기념관 뒤에 광양지역 첫 예배당인 웅동교회도 있대요.
이번에는 연우도 혼자 돌아다니지 않고 언니 옆에 바짝 붙어 연수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아마도 차분한 기념관의 분위기 때문인 듯싶었다. 그렇게 천천히 연수네 가족은 기념관을 둘러보았다. 기념관에는 광양의 기독교 선교 역사는 물론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게 된 내용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광양기독교역사관으로 운영되는 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갔을 때 연우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 으, 아빠 이것 봐. 옛날 교인들은 저렇게 고문을 당하거나 죽었대. 무서워.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으로 꾸며진 3층 전시실은 조선시대 교인을 고문했던 다양한 그림 전시물로 시작되고 있었다. 주리를 틀거나 칼을 씌워 옥에 가두는 것 외에도 거꾸로 매달아 놓은 교인의 코에 잿물을 붓거나 손을 뒤로 묶은 채 높은 곳에 매달아 두는 등의 잔인한 고문방법을 그림으로 소개한 내용이었다.
─ 어떻게 저런 고문을 당하면서도 종교를 버리지 않았을까요?
연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제법 어른스러운 질문을 해왔다.
─ 아마 신념 때문이겠지.
─ 신념이요?
─ 그래, 신념. 아마도 그건 종교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게 아닐까? 어제 우리가 들렀던 황현선생 생가에서도 보지 않았니? 황현선생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셨잖니.
‘신념’
연우는 문뜩 황현선생 생가에서 만났던 문화해설사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잊고 있었던 쪽지도 생각이 났다. 여행의 끝에 읽어보라고 하던 그 쪽지. 연수는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천천히 읽어내려 갔다.
‘난리 속에 살다보니 백발이 성성하구나. 몇 번이나 죽으려 했지만 그 뜻을 못 이뤘도다.’
절명시. 연우가 차 안에서 읽어준 바로 그 내용이었다. 연수는 쪽지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어제 자신이 만난 문화해설사 할아버지가 어쩌면 환생한 황현선생이 아니었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연수가 꼼꼼히 4수로 이뤄진 절명시를 다 읽었을 때, 연수를 부르는 연우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언니. 뭐해. 우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