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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NP Jan 07. 2022

땅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소망하다 해남 두륜산

전남 해남

산은 곧잘 아버지와 어머니에 비유되곤 한다. 선 굵은 바위로 이뤄진 골산은 엄격한 아버지에, 흙으로 덮인 푸근한 육산은 인자한 어머니에 비유하는 식이다. 땅끝마을을 품은 해남의 두륜산은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의 엄격함과 어머니의 인자함을 두루 갖춘 산이다. 둘레길처럼 편한 흙길과 가파른 암봉을 지나야 비로소 정상에 설 수 있기 때문. 육산의 아늑함과 골산의 스릴을 동시에 즐길 수 있으니, 산 좀 타는 이들에게 이보다 매력적인 산이 없다. 산행을 즐기며 바다를 만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산정에서 바라본 다도해는 마음속에 고이 간직한 작은 소망 하나 정도는 거뜬히 들어줄 만큼 넉넉하다.


등산로 초입은 둘레길처럼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두륜산 들머리는 대흥사와 오소재 약수터 등 두 곳이다. 대흥사에서 두륜봉(630m)과 가련봉(703m), 노승봉(688m)을 거쳐 다시 대흥사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가 일반적이지만, 조금 편하게 두륜산을 만나고 싶다면 오소재 약수터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게 좋다. 산행 거리는 조금 늘어나지만 들머리인 오소재 약수터에서 오심재까지 구간이 둘레길처럼 편안해 체력 소모가 그만큼 적다.


오심재. 좌측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노승봉이다.

오소재 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 한 모금 마시면 본격적인 두륜산 산행이 시작된다. 오소재 약수터에서 오심재까지는 산책로 같이 편한 길이 줄곧 이어진다. 그래도 등산인데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 그렇게 30분쯤 걸어 만나는 첫 번째 갈림길이 오심재다. 분지처럼 너른 고갯마루를 중심으로 우측에 고계봉이, 좌측에 노승봉이 호위하듯 우뚝 솟았다. 고계봉은 두륜산의 많은 봉우리 중 유일하게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는 곳. 오심재는 오소재 약수터와 대흥사를 잇는 가장 짧은 고갯길이다.  


암릉이 멋진 고계봉.
노승봉 정상석
가련봉에서 바라본 멋진 풍경

두륜산 산행은 오심재부터가 진심이다. 지금까지와는 급이 다른 경사 구간에 대한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오소재 약수터에서 오심재까지 1.6km를 이동하는 동안 고도차는 200m 정도에 불과했지만 오심재에서 노승봉에 오르기 위해서는 340m 높이를 800m 거리로 극복해야 한다. 걷는 거리는 절반으로 줄고, 올라야 할 높이는 140m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각도로 환산하면 7도 남짓의 완만한 길을 걷다 3배가 넘는 23도의 급경사와 마주한 격. 물론 이건 평균이다. 실제 노승봉에 오르다 보면 코가 무릎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계단과 계단조차 놓을 수 없어 굵은 쇠사슬을 설치해 놓은 바위구간도 만난다. 노승봉 넘어 두륜산 최고봉인 가련봉까지 길은 계속 이런 식으로 오르고 내린다. 말 그대로 산 넘어 산. 그나마 다행이라면 노승봉과 가련봉의 고도차가 15m 남짓에 불과하고, 거리도 200m 정도로 짧다는 것.  


두륜산 흔들바위
흔들바위 전망대에서 본 대흥사

2017년 발견된 두륜산 흔들바위는 오심재에서 노승봉 오르는 길에서 만날 수 있다. 등산로에서 살짝 벗어난 나무 덱 위에 당당히 자리한 큼직한 바위가 바로, 200여년 만에 실체를 드러낸 두륜산 흔들바위다. 사람 얼굴을 닮은 듯도 한 이 바위에 대해 초의선사는 1816년 자신이 편집한 《대둔사지》 <유관> 편에 ‘동석(動石)은 북암 뒤편에 있으며 천인이 밀면 움직이지 않지만 한 사람이 밀면 움직인다’고 기록했다. 기록으로만 남았던 바위를 직접 눈으로 마주한 감동만큼 바위에 옆에서 바라본 풍경도 일품이다. 노승봉으로 향하기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흔들바위를 슬쩍 밀어 보지만, 바위는 역시나 꿈쩍도 않는다.


가련봉에서 만일재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
노승봉과 가련봉 구간에는 철심과 쇠사슬을 설치해 놓은 곳이 더러 있다.

노승봉과 가련봉을 연이어 오를  가장 곤혹스러운  역시 가파른 계단이다. 여기서  하나. 계단을 오를 때는 ‘타이거 스텝(tiger step)’이라 부르는 교차 걷기가 무척 유용하다. 호랑이처럼  발을 일차로 교차시켜 걷는 타이거 스텝은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평소에 쓰지 않는 허벅지 바깥쪽 힘을 사용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를 줄일  아니라 근육에 가해지는 부담도 덜어준다. 이때 상체를 앞으로 살짝 이면 더욱 효과적이다. 타이거 스텝은 계단  아니라 오르막에서는 언제든 유용하게 활용할  있지만 내리막에서는 자칫 중심을 잃을 수도 있으니 절대 사용 금지.


천녀와 천동의 전설을 간직한 천년수
해남 대흥사 만일암지 오층석탑

가련봉에서 만일재로 내려선 뒤 두륜봉이 아닌 북미륵암 방향으로 길을 잡은 건 순전히 천년수(千年樹) 때문이다. 천년수는 터만 남은 만일암 앞마당에 서있는 느티나무의 이름.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산 천녀와 천동이 바위에 불상을 새기는 동안 해를 묶어 두었다는 전설 속 그 나무다. 수령 1200~1500년으로 추정하는 천년수에선 봄이면 지금도 여전히 새잎이 돋는다.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에게 노거수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버팀’과 ‘희망’ 그렇게 다시 힘을 얻는다. 만일암 터에는 고려시대 석탑인 해남 대흥사 만일암지 오층석탑(문화재자료)도 남아있다.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전설 속 천녀와 천동이 바위에 조각한 불상이 북미륵암의 마애좌상(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과 남미륵암의 마애입상이다. 북미륵암은 천년수에서 집채만 한 바위가 무더기로 널린 금강너덜을 지나면 만날 수 있다. 천녀가 새긴 불상이라는, 전설 속 이야기가 아니어도 북미륵암의 마애좌상은 붓으로 그린 그림처럼 섬세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보고만 있어도 위로가 되는 마애불의 은은한 미소도 매력적이다. 국보로 지정된 북미륵암 마애좌상과 달리 두륜봉 아래 미완으로 남은 남미륵암 마애입상은 거대한 바위에 흐릿하게 그 흔적만 남았는데, 이는 불상 조각을 먼저 끝낸 천녀가 급한 마음에 줄을 끊고 혼자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이라고. 물론 전설 속 이야기다.


북미륵암에 닿으면 두륜산 산행도 얼추 마무리 된다. 북미륵암은 앞서 지나온 오심재와 대흥사로 길이 갈리는 분기점. 내친 김에 대흥사까지 돌아볼 심산이라면 이곳에서 대흥사 방면으로 길을 잡아 하산하면 된다. 북미륵암에서 대흥사까지는 1km 남짓.


신라 진흥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대흥사는 선암사, 마곡사, 법주사, 봉정사, 통도사, 부석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천년 고찰이다. 경내에 대웅보전을 포함해 천불전, 침계루, 표충사 등 많은 전각이 남아있다. 탑산사명 동종(보물),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보물) 등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많은 유물도 볼거리. 대흥사 터는 입적을 앞둔 서산대사가 자신의 의발을 보관하며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 동안 훼손되지 않을 땅(萬古不毁之地)’이라 했을 만큼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대흥사는 실제로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당시에도 아무런 화를 입지 않았다. 해탈문 앞에서 바라본 두륜산은 영락없는 누운 부처(臥佛)의 모습이다.

조선 시조 문학의 대가인 고산 윤선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고산윤선도유적지는 대흥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해남윤씨어초은공파 종택인 녹우당과 고산사당 그리고 해남윤씨 가문의 유물을 보관·전시하는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 등이 자리해 있다.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에는 위대한 시인이자 올곧은 정치가의 삶을 살았던 고산 윤선도와 뛰어난 예술적 감각으로 수많은 그림과 글씨를 남긴 공재 윤두서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당일 여행 코스>

두륜산 산행 → 대흥사 → 고산윤선도유적지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두륜산 산행 → 대흥사 → 고산윤선도유적지

둘째 날 / 땅끝전망대 → 해남공룡박물관 → 우수영국민관광지


<여행 정보>

○ 관련 웹 사이트 주소   

해남군 문화관광

www.haenam.go.kr/tour/index.9is?contentUid=18e3368f655bdbc60166192794d9237d

두륜산도립공원

www.duryunsan.kr

대흥사

www.daeheungsa.co.kr


○ 문의 전화   

해남군 관광마케팅팀 061)530-5914

두륜산도립공원 061)530-5543

대흥사 061)534-5502

고산윤선도유적지 061)530-5548


○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해남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주중 2회·주말3회(07:30~17:55) 운영. 약 4시간 30분 소요. 해남종합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농어촌 723·725·728·732버스 이용, 오심재 정류장 하차.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해남종합버스터미널 1666-0884


○ 자가운전 정보

남해고속도로 서영암 IC → 영암로 영암·삼호 방면 좌회전 후 1.2km 진행 → 영암로 성전·보성 방면 좌측도로 11km 진행 → 공룡대로 해남·완도 방면 우측도로 7.8km 진행 → 공룡대로 13km 직진 → 고산로 해남 방면 우측도로 → 고산로 좌회전 후 4.6km 진행 → 오소재로 북일·완도 방면 좌회전 후 5.9km 진행 → 오소재약수터 주차장


○ 숙박 정보   

설아다원 : 북일면 삼성길, 061-533-3083, www.seoladawon.co.kr

거목장민박 : 삼산면 민박촌길, 061-535-1456

해마루 힐링숲 : 북평면 동해길, 010-2332-6303, www.airbnb.co.kr/rooms/25366238


○ 식당 정보   

달동네보리밥 : 보리밥정식, 삼산면 고산로, 0507)1326-3667

원조장소통닭 : 토종닭, 해남읍 고산로, 061)535-1003

천일식당 : 떡갈비정식, 해남읍 읍내길, 061)535-0110


○ 주변 볼거리

두륜산케이블카, 미황사, 달마고도, 김남주시인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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