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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NP Jan 03. 2022

장흥으로 떠나는 문학여행 part III

전남 장흥

가사문학에서 현대문학까지. 장흥 문학의 전통은 뿌리가 깊다.


장흥 문림(文林)  씨앗을 뿌린 사람은 기봉 백광홍이다. 기산마을 출신 여덟 문인을 일컫는 기산팔현 가운데  명인 백광홍은 1555 평안도 평사로 재임할 당시 관서지방의 아름다움을 <관서별곡> 담았다. 정철의 <관동별곡>보다 25년이나 앞선 <관서별곡> 우리나라 기행가사의 효시로 히는 작품. 율곡 이이, 고봉 기대승  당대 석학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았던 백광홍은 문학적 재능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35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백광홍의 위패배향기양사에는 백광홍의  동생 광안·광훈 그리고 사촌동생인 백광성을 포함해 모두 13인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백광홍이 뿌린 장흥 가사문학의 씨앗에 물을 뿌려 거목으로 키운 인물은 위세직과 위백규다. 두 사람은 모두 방촌마을 장흥위씨 가문으로 위세직은 금당도와 만화도를 유람하면 느낀 감상을 서경적으로 풀어낸 <금당별곡>을, 위백규는 <자회가>, <권학가>, <합강정선유가> 등의 가사작품을 남겼다. 순창의 여암 신경준, 고창의 이재 황윤석 등과 호남 3천재로 알려진 위백규는 사회모순을 비판하고 개혁방안을 제시한 <정현신보>을 쓴 조선 후기 대표 실학자이기도 하다. 방촌마을 입구에는 장흥위씨 집성촌인 방촌마을을 소개하고 호남 실학의 대가 존재 위백규 선생의 유물을 전시한 방촌유물전시관이 있으며, 천관산 중턱에는 위백규 선생이 후학을 양성했던 장천재가 남아있다.        


Course    

1코스 방촌마을 → 방촌유물전시관 → 방촌리 석장승 → 방촌리 지속묘군 → 장천재

2코스 기양사 → 장흥다원(청태전체험)


Point 알면 쓸모 있는 문학여행 사전

가사문학

가사문학은 한시로 대표되는 한자문학의 틀에서 벗어나 우리말과 우리글을 우리가락으로 표현한 문학예술의 한 형태다. 가사는 형식이 자유로워 감정이나 자연미를 표현하기에 좋다. 조선 성종 때 정극인의 <상춘곡>을 효시로 삼는다. 기행가사, 규방가사, 양반가사, 서민가사 등 종류가 다양하다.



500년을 이어온 장흥위씨 집성촌, 방촌마을

방촌마을은 천관산 아래 자리 잡은 장흥위씨 집성촌이다. 기봉 백광홍의 뒤를 이어 장흥 가사문학을 한 단계 발전시킨 위세직, 위백규 등이 이곳 출신이다. 500년을 이어온 방촌마을에는 오헌고택을 포함해 존재고택, 신와고택 등 많은 고택이 남아있다. 오헌고택은 장흥위씨 반계공파 종택으로 원취당 위도순이 터를 잡은 뒤 오헌 위계룡이 완성한 집이고, 존재고택은 조선후기 대표 실학자이자 호남 3천재 중 한 명인 존재 위백규가 태어난 곳이다. 방촌마을 상류 민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신와고택은 1800년대 현 소유주의 6대조 위영형이 터를 잡기 시작해 1920년대 고조부인 신와 위준식이 완성했다. 존재고택은 1984년에, 신와고택과 오헌고택은 2012년에 각각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됐다. 방촌마을에는 이들 국가지정문화재 고택 외에도 죽헌고택, 장흥위씨 판서공파 종택, 근암고택 등 도지정문화재 고택 3채가 있다.


방촌마을의 역사를 한눈에, 방촌유물전시관

방촌마을 입구에 위치한 방촌유물전시관은 방촌마을이 이어온 500년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공간이다. 방촌유물전시관이 보유한 2000여 점의 유물에는 고문서 뿐 아니라 길쌈도구와 건축도구 등 서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도 많다. 방촌유물전시관의 전시공간은 방촌마을의 농경과 주거문화에서 시작해 마을의 세시풍속과 향반사회의 모습 그리고 존재 위백규의 흔적을 차례차례 소개한다. 장흥위씨 반계공파 종택인 오헌종택을 완성한 오헌 위계룡의 영정과 존재 위백규의 저작을 모아 간행한 <존재집>도 이곳에 전시됐다. 방촌마을에서 나고 자란 위백규는 호남을 대표하는 조선후기 실학자다. ‘비 갠 뒤 소산봉 위로 뜨는 달’을 뜻하는 동산제월(東山霽月) 등 방촌팔경을 소개해 놓은 대목도 흥미롭다. 방촌유물전시관 3층 전망대에서 오르면 천관산의 모습이 한눈에 담긴다.  


방촌마을 지킴이, 방촌리 석장승

장승은 마을 입구에 세우는 사람 모양의 기둥이다.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고 액운을 막기 위해 세운다. 장승은 남녀 한 쌍으로 세우는 게 일반적이며, 나무로 만든 목장승과 돌로 만든 석장승이 있다. 장승은 지역에 따라 벅수, 당산할아버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방촌마을 입구에는 한 쌍의 석장승이 있다. 장흥대로를 사이에 두고 동쪽에 위치한 장승은 ‘진서대장군’, ‘남장생’으로, 서쪽에 위치한 장승은 ‘미륵석불’, ‘여장생’으로 부른다. 방촌리 석장승 제작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전한다. 그중 고려 원종 시절 회주고성을 축조하면서 성문 주변에 세운 성문장승이라는 설과 조선 후기 창궐한 천연두를 퇴치하기 위해 세운 장승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방촌리 석장승은 마을공동체 제의인 별신제의 하위 신체로서 마을 수호의 기능을 담당한다. 방촌리 석장승은 국가민속문화재이다.


청동기인들의 무덤, 방촌리 지석묘군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이다. 족장 등 최고 지도자를 위해 만들었다고 알려진다. 큰 덮개돌 아래 작은 고임돌을 받친 형태를 하고 있어 흔히 ‘고인돌’이라고 부른다. 지석묘는 사면에 고임돌을 받혀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탁자식(북방식)과 지하 돌방 주위에 세운 고임돌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남방식)으로 구분된다. 세계 고인돌의 40퍼센트 이상이 우리나라에 모여 있다.

방촌리 지석묘군은 방촌유물전시관과 장흥대로를 사이에 둔 벅수골에 있다. 90여 기의 지석묘가 솔숲 사이에 옹기종기 들어앉았다. 장흥은 2만여 기의 지석묘가 산재한 전남지역에서도 지석묘 밀집도가 높은 곳으로 꼽힌다. 장흥에서 확인된 지석묘는 모두 210여 곳, 2250여 기에 이른다.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방촌리 지석묘군에서는 민무늬토기와 돌화살촉 등의 유물이 함께 발견됐다.


장흥위씨 집안의 공부방, 장천재

천관산 등산로를 따라 600m 남짓 오르면 맑은 계곡을 끼고 자리한 장천재가 나온다. 장천재는 존재 위백규가 어린 시절 수학하고 나이 들어 후학을 양성한 곳이다. 본래 이곳에는 장천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1450년 경 장흥위씨들이 장천재를 세워 한학의 서재로 이용해 왔다. 고려 공민왕 때 처음 지은 장천재는 조선 고종 때 중건해 오늘에 이른다.

장천재는 양쪽 누마루를 앞뒤로 돌출시킨 ‘H’자의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양쪽 누각지붕의 전면은 팔작, 후면은 맞배로 마무리한 것도 특이하다. 팔작, 맞배, 우진각 등 한옥에 사용되는 세 가지 지붕 가운데 두 가지 지붕을 장천재에서 볼 수 있는 셈이다. 우진각 지붕은 건물 사면에 지붕면이 있는 형태로 남대문, 창덕궁 등이 우진각 지붕으로 지어졌다. 장천재 앞에 있던 태고송은 2012년 태풍 볼라멘 때 고사해 2017년 안전상의 이유로 잘라냈다. 장천재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이다.


기산팔현을 배향한 공간, 기양사

기양사는 <관서별곡>을 쓴 기봉 백광홍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기양사에는 백광홍 선생을 포함해 모두 13인의 위패가 봉안됐는데, 그중 백광안과 백광훈은 친동생, 백광성은 사촌동생이다. 한 집안에서 네 명의 문장가가 나왔다고 해서 이들을 ‘일문사문장(一門四文章)’이라 부른다. 백광홍, 백광성, 백광안, 백광훈은 기산팔현에도 이름을 올렸다. 백광홍의 <관서별곡>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보다 25년 앞서 쓰인 우리나라 최초의 기행가사다.

기양사는 1808년 생원 이상원을 중심으로 한 사림과 수원백씨 후손들이 힘을 합쳐 창건했다. 건물로는 사당과 강당 그리고 외삼문과 내삼문이 남아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풍판 댄 맞배지붕이며,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사당 옆으로 가사비와 경연대 그리고 1901년 복설할 때 만든 석조 위패가 나란히 자리해 있다.


장흥의 전통 발효차, 장흥다원

떡차라고도 불리는 청태전(靑苔錢)은 삼국시대부터 장흥에 전해온 전통 발효차다. ‘청태(靑苔)’란 발효시킨 차에 파란색 이끼가 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전(錢)은 둥근 엽전을 닮은 차 모양에서 따왔다. 실제 청태전은 지름 5cm 내외의 원통을 1cm 남짓 간격으로 잘라낸 듯한 모습이다. 중앙에 엽전처럼 구멍도 뚫렸다. 끓였을 때, 일반 차에 비해 붉은 색을 띠는 것도 특징. 청태전은 일반 차에 비해 카페인이 적고, 아연, 망간 등 무기질이 풍부해 약이 귀했던 시절 사찰과 민가에서 상비약으로도 사용했다. 식사 후 청태전을 마시면 몸에 온기를 더하고 장내 유해균 번식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장흥다원에서는 청태전을 직접 만들어 보는 체험을 진행한다. 청태전 만들기 체험은 가마솥에서 찐 찻잎을 절구에서 분쇄해 모양을 잡고, 이를 건조하는 순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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