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흥
이청준과 한승원은 장흥이 배출한 동갑내기 작가다.
이청준은 1965년 단편소설 <퇴원>으로, 한승원은 1968년 단편소설 <목선>으로 각각 등단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작가의 작품에는 그들이 나고 자란 고향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 특히 장흥의 선학동마을을 배경으로 한 <선학동 나그네>는 <서편제> <소리의 빛>에 이은 이청준 작가의 ‘남도 사람’ 연작 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삶과 한을 전통적 정서로 풀어낸 수작으로 평가 받는다.
이청준 작가의 생가는 선학동마을과 댐배골을 사이에 자리한 진목마을에 있다. 작가는 회진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 서중학교로 진학할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작가가 어린 시절 넘었던 마을 뒷길은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대소설로 꼽히는 <눈길>의 무대가 된 곳. ‘정남진 문학탐방길 1코스(<눈길> 코스)’는 작가가 어머니와 걸었던 작품 속 그 길을 따라간다. 2008년 영면에 든 작가는 장흥 앞바다가 보이는 갯나들에 묻혔고, 2년 뒤인 2010년에 동료 문인과 지인, 독자들의 성금으로 이청준 문학자리가 조성됐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한승원 작가는 할미꽃군락으로 유명한 한재고개 너머 신상마을에서 태어났다. 한재고개를 힘겹게 넘었던 마을 주민들의 삶과 애환은 작가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작가는 지금도 여전히 해산토굴이라 이름 붙인 집필실에서 작업을 한다. 작가의 아름다운 시를 모아 조성한 한승원문학산책길은 작가가 화엄의 바다, 연꽃바다라 불렀던 여다지해변에 있다.
Course
1코스(이청준 문학 코스) 선학동마을 → 천년학 촬영지 → 이청준 생가 → 이청준 문학자리 → 문학탐방길1코스(<눈길> 코스)
2코스(한승원 문학 코스) 한재공원 → 한승원 생가 → 해산토굴 → 한승원문학산책로
Point 알면 쓸모 있는 문학여행 사전
현대문학이란?
우리나라 현대문학은 개화기를 분수령으로 한다. 현대시는 개화 가사와 창가, 신체를 거쳐 현대적 자유시로 이어졌으며, 소설은 개화기 새로운 시대의 이념을 다룬 신소설을 거쳐 이광수의 <무정>에서 본격적 면모를 갖췄다. 1960년대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청준, 한승원은 우리나라 현대문학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비상하는 한 마리 학을 보다, 선학동마을
선학동은 회진면 끝자락에 솟은 공지산에 기댄 마을이다. 회진면에서 가장 높은 산 아랫마을이라는 뜻에서 산저(山底)라 부르던 곳이다. 산 아래 작은 마을에 ‘선학’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인 이는 장흥출신 소설가 이청준이다. 선학동과 가까운 진목마을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누구보다 선학동을 사랑했고, 그런 마음으로 보았기에 바다에 비친 공지산 관음봉에서 비상하는 학을 찾아냈을 것이다. 작가의 눈에 담긴 아름다운 반영은 <서편제>와 <소리의 빛>에 이은 작가의 ‘남도 사람’ 연작 <선학동 나그네>로 태어났다. <선학동 나그네>는 앞서 <서편제>를 영화화 한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연출작인 <천년학>의 원작이기도 하다. 봄이면 노란 메밀꽃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메밀꽃이 안개처럼 피어나는 선학동마을은 이제 장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표 여행지다. 메밀꽃이 졌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월동을 위해 장흥을 찾는 두루미 가족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영화로 태어난 <선학동 나그네>, 천년학 촬영지
이청준 작가와 임권택 감독의 인연은 길고도 질기다. 1993년 100만 관객을 모은 <서편제>로 인연을 맺었고 1996년 개봉한 <축제>는 이청준 작가와 임권택 감독이 남포마을에서 같은 제목으로 소설 창작과 영화 촬영을 동시작업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한국영화의 거장 임권택은 자신의 100번째 영화로 이청준 작가의 <선학동 나그네>를 선택했다. 2007년 개봉한 영화 <천년학>이 그 주인공이다.
영화 <천년학> 촬영지인 선학동마을 앞에는 영화에서 주막으로 나왔던 세트가 남아있다. 영화 속 두 주인공 동호와 송화의 엇갈린 인연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던 공간이다. 세월이 흘러 건물은 많이 낡았지만 그 앞에 서면 여전히 동호와 송화의 애틋한 사랑에 가슴이 시리다. 영화 <천년학>은 개봉한 그 해 영화 잡지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 2위에 올랐다. 1위는 김창동 감독의 <밀양>. 영화 <밀양> 역시 이청준 작가의 소설 <벌레이야기>를 영화화 한 작품이다.
문학을 하려면 이청준처럼, 이청준 생가
이청준 작가의 생가가 있는 진목마을에는 ‘공부를 하려면 청준이처럼 해라’는 말이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 잘하고 모범생이었던 작가를 두고 생겨난 말이다. 문인들 사이에서 이 말은 ‘문학을 하려면 이청준처럼 해라’는 말로 바뀌어 회자된다.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거장 이청준을 설명하는데 이 보다 적절한 말이 또 있을까. 작가는 회진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서중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진목마을에서 살았고 서울대 독문과 졸업을 1년 앞둔 1965년, 단편소설 <퇴원>이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당선돼 등단했다.
가세가 기울어 고향을 떠났던 이청준은 20여 년이 지난 1979년 진목마을 인근 갯나들로 돌아왔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서편제> <빛의 소리> <선학동 나그네> 등은 대부분 이 시기를 전후해서 쓰여 졌다. 제12회 동인문학상, 제2회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아름다워라 이청준, 이청준 문학자리
‘그는 늘 해변 밭 언덕 가에 나와 앉아 바다의 노래를 앓고 갔다. 이청춘 –해변아리랑 中-’
고향 바다를 사랑한 이청준 작가는 죽어 그 바닷가에 묻혔다. 작가는 살아 늘 이곳에 묻히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고향을 떠났던 작가가 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의 그곳. 들판 너머 장흥 앞바다가 바라보이는 갯나들이다. 이청준 문학자리는 작가의 묘소 앞에 있다. 2010년, 2주기를 맞아 동료문인과 지인, 독자의 성금으로 건립됐다. 거대한 판석과 푯돌로 이뤄진 조형물 바닥에는 1982년 작가가 친필로 그린 문학지도를 새겼다.
대한민국이 사랑한 이청준의 소설은 많은 영화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익히 알려진 <서편제> <천년학> <축제> 외에도 <시발점> <석화촌> <이어도> <낮은 대로 임하소서> <밀양> <나는 행복합니다> 등이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직한 영화들이다.
오목오목 디뎌 걷는, 문학탐방길1코스(눈길코스)
이청준 작가의 단편소설 <눈길>은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대소설로 꼽힌다. 1977년 발표된 <눈길>은 2009년 8차 교과 개정 이후 고등학교 검인정 국어교과서 등에 실리기도 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눈길>은 작가의 고향인 진목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광주의 중·고등학교로 유학가기 전까지 작가는 진목마을에서 살았다. 가세가 기운 건 그즈음이다. 소설은 그 당시를 회상하는 작가와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남의 집이 된 집에서 어머니와 마지막 밤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 날, 눈 내린 산길을 어머니와 함께 넘는다. ‘나’는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어머니는 ‘나’를 배웅하기 위해. 눈길에 대한 ‘나’의 기억은 거기까지다.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온 어머니의 길에 대해 ‘나’는 아는 게 없다. “...오목오목 디뎌 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고 돌아왔제....” 문학탐방길1코스(눈길)는 이청준 생가에서 연지삼거리까지, ‘나’와 어머니가 작품 속에서 걸었던 그 길을 따라간다.
섬마을 고갯길에 핀 할미꽃, 한재공원
득량만에 면해 있는 회진면 덕산·신상·대리는 관덕방조제가 생기기 전까지 덕도라 불리는 섬이었다. 덕도에는 큰재산과 한재산이 남북으로 뻗었는데, 두 산이 만나 이룬 고개가 한재다. 한재는 섬 동쪽의 덕산리와 서쪽의 신상·대리를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
모든 섬의 고갯길이 그렇듯 덕도의 한재에도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 임진년 왜란을 피해 섬으로 들어온 이들이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기 위해 고개를 넘었고, 갑오년 동학군은 토벌군을 피해 고개를 넘었다. 덕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가기 위해, 신상·대리 청년들은 청운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개를 넘었다. 육지가 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한재를 넘는다. 한재 정상에 무리지어 피는 할미꽃을 보기 위해서다. 한재 정상에 조성한 한재공원 할미꽃군락은 단일 규모로 전국 최대를 자랑한다.
고향의 바다와 산을 이야기하다, 한승원 생가
한승원은 장흥이 배출한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거장이다.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이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년을 소설가로 살아온 그에게 고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창작의 근원이다.
한승원 생가는 할미꽃군락으로 유명한 한재 아래 있다. 득량만이 바라보이는 작은 어촌이다. 바닷바람 부는 어촌에서 태어난 그에게 바다는 놀이터이자 삶의 현장이었다. 친구들과 뛰어 놀던 바다는 청년이 된 그에겐 일터였고, 일터였던 바다는 작품에 녹아들어 그를 소설가로 만들었다. <목선> <포구의 달> <해변의 길손> <그 바다 끓며 넘치며>처럼 그의 작품에 유독 바다 이야기가 많은 건 그런 이유 때문일 터다. 물론 한승원의 작품이 모두 바다를 배경으로 하지는 않는다.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 <불의 딸>과 <아제아제 바라아제> 그리고 역사적 인물을 다룬 <다산> <원효> <초의>는 소설가 한승원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글을 쓰는 한 살아있다, 해산토굴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고향을 찾듯 한승원 작가도 1996년 고향 장흥으로 돌아왔다. 의무적으로 쓰는 글이 아니라, 치열하게 쓰는 소설이 아니라, 즐기면서 글을 쓰기 위해서다. 여다지해변이 보이는 율산마을 뒷산 중턱에 아담한 집필실도 마련했다. 집필실에는 자신의 호 ‘해산’에 집을 낮춘 ‘토굴’을 붙여 ‘해산토굴’이라 이름 붙였다. 지금까지 30여 편의 장편소설과 80여 편의 중단편소설, 6권의 시집과 10여 권의 산문집을 내 작가는 지금도 여전히 해산토굴에서 글을 쓴다. 지난 2016년에는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작가가 직접 고른 중단편소설 13편을 엮은 ‘야만과 신화’와 작가의 에세이와 대담집을 묶은 ‘꽃과 바다’를 펴내기도 했다. 작가는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목선>에 앞서 1966년 단편 <가증스런 바다>로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바 있다.
한 권의 시집 같은 길, 한승원문학산책길
한승원문학산책길은 이름도 예쁜 여다지해변에 있다. ‘내 소설의 9할은 고향 바닷가 마을 이야기’라고 말하는 작가를 기념해 조성한 공간으로 최적의 위치다. 솔숲을 품은 해안선과 금빛 백사장 그리고 물 빠진 갯벌의 활력은 생명력 넘치는 문학세계를 추구한 작가의 작품과 많이 닮았다. 작가는 여다지해변에 ‘연꽃바다’, ‘화엄의 바다’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 자신의 작품에 소개하기도 했다. 여다지는 썰물과 밀물에 열리고 닫히는 바다라는 뜻한다.
한승원문학산책길을 걷는 건 한 권의 시집을 읽는 일이다. 600m 남짓 이어진 산책로에 작가의 시비 30개가 20m 간격으로 놓였으니, 책장 넘기듯 걸음을 옮기며 작가의 시를 만나면 된다. 이들 시비에 새긴 시는 모두 작가가 율산마을로 내려온 뒤 쓴 작품들이다. 여다지 해변이 ‘연꽃바다’로 불리게 된 사연이 궁금하다면 산책로 서쪽 끝 표석에 새긴 한승원 작가의 ‘연꽃 바다 이야기’를 꼭 읽어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