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흥
장흥은 국내 유일의 문학관광특구다.
인구 4만이 채 안 되는 작은 고을에 등단 문인만 100여 명. 기봉 백광홍의 <관서별곡>에서 시작된 문맥은 <녹두장군>의 송기숙, 동시 <연>의 김녹촌 그리고 <선학동 나그네>의 이청준과 <아제 아제 바라아제>의 한승원을 거쳐 <샘섬>의 이승우로 이어진다.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은 한승원 작가의 딸이다.
장흥이 품은 산과 들과 바다는 모두 문학의 현장이다. 동학농민혁명 최후의 격전지인 석대들(사적)에서 영감을 얻은 송기숙 작가는 10여 년에 걸친 자료수집과 다섯 번의 수정·퇴고를 거쳐 자신의 첫 대하역사소설 <녹두장군> 완간했고, 이승우 작가는 자신이 유년시절을 보낸 바닷가 마을 작은 바위섬을 소재로 단편소설 <샘섬>을 썼다. 공주 우금치, 정읍 황토현, 장성 황룡과 더불어 동학농민혁명 4대 전적지인 석대들에는 동학관련 서적과 무기류를 전시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있다.
송기숙과 이승우가 소설을 통해 고향 산천을 이야기했다면 김녹촌은 동시를 통해 고향을 노래한 아동문학가다. 김녹촌 작가의 생가가 있는 내동마을은 19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작인 그의 작품 <연>의 무대다.
장흥 출신 문인들의 면면을 살필 수 있는 천관문학관과 송기숙, 김녹촌, 이청준, 한승원, 이승우 등 장흥 출신 문인을 포함해 한국의 대표 문인 54인의 글을 자연석에 새겨 꾸민 천관산 문학공원은 장흥 문학기행의 중심이다.
Course
1코스(땅 이야기) 김녹촌 생가 → 7080벽화문화거리 → 동학농민혁명기념관
2코스(바다 이야기) 천관문학관 → 천관산문학공원 → 이승우 <샘섬> 배경지 → 정남진전망대
Point 알면 쓸모 있는 문학여행 사전
맨부커상 & 맨부커인터내셔널상
맨부커상은 영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이다.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영어로 창작돼 영국에서 출간된 책을 대상으로 하는 맨부커상과 영어로 번역돼 영국에서 출간된 책을 대상으로 하는 맨부커인터내셔널상으로 구분해 시상한다. 맨부커인터내셔널 부문은 2005년 신설됐다.
장흥 아동문학의 거목, 김녹촌 생가
김녹촌 선생은 평생을 교사로 살아온 아동문학가다. 선생이 나고 자란 내동마을은 19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선생의 동시 <연>의 무대가 된 곳. 마을 생김이 ‘기러기가 내려앉은 모습’이라 해서 비안락지(飛雁落地)라 불렸던 내동마을은 계유정란 당시 평강현감을 지낸 영광김씨 경의가 두 아들 찬·필과 함께 난을 피해 내려와 집성촌을 이룬 곳이다.
1926년 내동마을에서 태어난 선생은 1947년 광주사범을 졸업하고 고향인 부산초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45년 교사 생활의 대부분을 벽지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선생은 어린이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기 위해 <꽃을 먹는 토끼> <산새 발자국> 같은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선생이 쓴 동시 가운데 <기차놀이> <밤바다> 등 33편은 동요로도 만들어져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세종아동문학상, 대한민국동요대상 등을 수상했다.
벽화로 아이와 공감하기, 7080벽화거리
장흥읍의 중심이었던 예양리와 기양리 일원에 1.8km 길이로 들어선 벽화거리. 7080이라는 이름처럼 거리 곳곳에 그 시절 풍경을 벽화로 재현해 놓았다. 지금은 부모가 된 이들이 아이였을 때 먹었던 학교 앞 간식들, 지금과는 조금 다른 옛날 교실 풍경, 소독차를 따라다니던 모습 같은 그림들이 보인다. 그 중에는 뽑기나 쫀드기, 아폴로처럼 요즘 아이들도 좋아하는 것들도 있으니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이어지는 8090 슬램덩크 만화 거리는 1990년대 폭발적인인기를 끌면서 만화의 고전으로 남은 일본 만화 슬램덩크를 모티브로 삼았다. 아이와 공통의 대화 소재로 재미난 만화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부모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날 듯. 정남진장흥토요시장에서 도보로 5분 거리라 시장에서 배불리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슬슬 산책하기에 좋다.
장흥의 동학 영웅 만나기. 장흥동학혁명기념관
동학농민군들이 최후의 결전을 벌인 장흥군 석대들 들어선 기념관. 장흥읍 석대들은 정읍 황토현, 공주 우금치, 장성 황룡과 더불어 동학혁명 4대 격전지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2009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달팽이 모양의 야트막한 기념관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전개 과정, 장흥 출신 동학군들의 활약상을 볼 수 있다.그중에서도 ‘남도장군’으로 불리며 최후의 결전을 이끈 대접주 이방언 장군과 전투마다 앞장서 동학군의 사기를 크게 높였던 22살 여장군 이소사, 13살 어린 나이에 말을 타고 농민군을 지휘했다는 소년 장수 최동린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또한 소년 뱃사공 윤성도는 일본군에 쫓긴 동학군 수백 명을 무사히 피신시켰다고 한다. ‘사발통문에이름 적기’, ‘장태 굴리기’,‘동학군 되어보기’ 등의 체험도할 수 있다.
장흥 문학기행의 랜드마크, 천관문학관
천관문학관은 왕관을 닮은 암봉을 병풍처럼 거느린 천관산 기슭에 자리했다. 문학관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장흥 출신 문인들을 소개한 상설전시관이 반긴다. 소설 <녹두장군>의 송기순, 아동문학가 김녹촌, 차기 노벨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이승우, 그리고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한강까지, 모두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유명 작가들이다. 등단 문인만 100명이 넘는 문림의 고장답게 출신 작가들을 소개한 전시물은 높이 3m는 족히 되는 전시실 세 개 벽면을 가득 채운다.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이청준과 한승원 두 동갑내기 작가에 대한 내용은 상설전시관 중앙에 나란히 마련했다. 진목마을과 신상마을에서 각각 태어난 두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비교하며 관람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백광홍에서 위세직, 위백규로 이어지는 장흥 가사문학의 역사도 흥미롭다.
천관산에 새긴 문학, 천관산 문학공원
천관문학관에서 예쁜 돌탑길을 따라 1km 남짓 오르면 천관산 문학공원이 나온다. 천관산 문학공원 가는 길에 만나는 돌탑은 대덕읍민들이 손수 쌓은 것이다. 마을주민들은 천관산을 알리기 위해 대덕읍에서 탑산사 방면 등산로 3km 구간에 돌탑 400여 기를 세웠다. 가을이면 천관산을 붉게 물들이는 수 천 그루의 단풍나무도 주민들이 한 그루 한 그루 정성들여 심고 가꾼 것들이다. 문학공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높이 15m의 문탑이 여행자를 맞는다. 천관산 문학공원을 조성할 당시 국내 유명 문인들의 육필과 메시지를 타임캡슐에 담아 이곳에 소장했다. 천관산 문학공원에는 장흥 출신 문인인 송기숙, 김녹촌, 이청준, 한승원, 이승우를 포함해 박범신, 양귀자 등 대한민국 문학을 이끌어온 작가 54인의 글을 새긴 석비가 있다. 산책로를 걸으며 만나는 작가들의 주옥같은 글은 공원을 품은 천관산 암봉만큼 아름답다.
치명적인 사랑이 불러온 비극, 이승우 <샘섬> 배경지
정남진전망대에서 삼산방조제를 지나 해안도로를 천천히 달리면 시리도록 푸른 바다 위에 외로이 떠있는 작은 섬 하나가 시선을 붙든다. 섬이라 하기엔 너무 작아 마치 갯바위처럼 보이는 돌섬이다. 이승우 작가는 마을주민들이 ‘가스마리(가슴앓이)’라고 부르는 이 작은 섬이 보이는 큰아버지 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작가의 단편소설 <샘섬>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이 돌섬을 배경으로 한다.
<샘섬>은 치명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에 등장하는 섬은 숲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솟는 생명의 섬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이름의 욕망에 사로잡힌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으로 섬은 대학살의 현장이 되고 만다. 전쟁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사랑. 작가는 민둥머리 돌섬을 보면 이런 이미지를 떠올렸을까. ‘한 사람’은 결국 섬에서 죽는다. 그리고 죽기 전,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밝힌다. ‘그 여자만 자기 것이 된다면 세상이 다 망한다고 해도 상관이 없을 것만 같았다’고.
한반도의 남쪽끝, 정남진전망대
정남진(正南津)은 ‘한반도의 정남쪽에 있는 나루’를 뜻한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 도로원표에서 남쪽으로 직선을 그으면 닿는 장흥의 정남진전망대가 위치한 곳이다. 정남진과 대칭점에 있는 곳은 한겨울 최저기온이 –45℃까지 내려가는 평안북도 자성군의 중강진이다.
정남진전망대는 전망타워와 통일분수 그리고 정남진을 상징하는 원형의 조형물로 구성됐다.
전망타워 상층부는 떠오르는 태양을, 중층부는 황포돛대를, 하층부는 역동적인 파도를 형상화했다. 45.9m 높이의 10층 전망대에 오르면 득량만 일대와 고흥 소록도, 거금대교, 완도, 금일도 등 수많은 섬들은 한눈에 볼 수 있다. 전망타워는 10층 전망대를 비롯해 각각의 층을 북카페, 문학영화관, 추억영화관, 축제관 등 테마가 있는 공간으로 꾸며놓았기 때문에 내려올 때는 계단을 이용해 천천히 내려오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