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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NP Dec 30. 2021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독립운동 명가(名家)

안동 임청각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영남산 기슭에 자리한 임청각(보물)은 안동의 독립운동 명소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500년도 훌쩍 넘은 이 고택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이 태어났거든요. 아들 이준형과 손자 이병화도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한 독립운동가입니다. 3대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명실상부한 독립운동 명가죠. 2018년, 이상룡 선생의 손부인 허은 여사가 건국훈장 애족장에 서훈되면서 임청각이 배출한 독립 유공자는 무려 10명에 이릅니다.



임청각 입구에는 ‘국무령 이상룡 생가’를 알리는 현판이 걸려 있어요. 한데, 현판이 걸린 대문이 조금 작아 보입니다. 안동에서 내로라하는 유림의 종택 치고는 말이지요.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임청각은 1515년에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지은 집이에요. 당시만 해도 민가에서 가장 크다는 99칸짜리 저택이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절반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아요. 중앙선 철도가 놓이면서 많은 부분이 철거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시만요. 철도를 놓기 위해 500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고택을 철거한다? 그것도 3대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성지와도 같은 곳을? 이해가  되시죠? 일제강점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독립운동가를 많이 배출한 임청각을 눈엣가시처럼 여겼거든요. 게다가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최고 명승지로 칭송한 집이니, 여기저기 쇠말뚝을 박으며 민족말살 정책을 추진했던 일본정부가 그냥 놔둘 리 없었겠지요. 그러니, 지금의 임청각 출입문은 옛 가옥의 중문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임청각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며 복원을 약속했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낙동강을 품은 늠름한 99칸 임청각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뿌듯해지네요. 함께 건립되는 이상룡 기념관에 대한 기대도 크고요.



출입문을 지나 좌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행랑채 일부를 활용해 꾸민 ‘임청각 작은 전시관’을 만날 수 있어요. 이곳에 이상룡 선생의 초상과 업적, 그리고 그 가족이 걸어온 험난한 여정을 소개하는 기록이 전시돼 있습니다.



행랑채에서 계단을 올라 중문을 지나면 사랑채가 나옵니다. 이곳의 우물방에서 이상룡 선생이 태어났습니다. 1858년의 일입니다. 이상룡 선생은 안동 유림의 명문가 자제로 남 부러울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하지만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그리고 명성황후 시해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은 청년이 된 이상룡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일제에 의해 짓밟힌 우리 땅을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선생이 계몽운동에 힘쓰고 의병을 조직해 일제에 맞섰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국권을 넘기고 맙니다. 경술국치(庚戌國恥)입니다.



이상룡 선생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1월, 52세의 나이로 식솔 50여 명을 이끌고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조상의 위패를 땅에 묻고, 모든 가산은 독립자금을 위해 처분했습니다. 노비 문서도 전부 불살랐다고 해요. 선생은 만주로 떠나면서 ‘더 없이 소중한 삼천리 우리 산하여...’로 시작하는 거국시를 남겼습니다.



이상룡 선생은 만주에서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우당 이회영과 함께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고, 상해 임시정보의 초대 국무령을 맡은 뒤에는 군사 기구인 서로군정서를 조직해 무장 항일투쟁에 앞장섰습니다. 선생은 1932년 5월, 74세의 일기로 만주에서 숨을 거둘 때, ‘국토를 회복하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에 싣고 가지 마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해요. 이상룡 선생의 유해는 1990년이 되어서야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선생이 고향을 떠난 지 79년째 되던 해입니다.



임청각의 정자, 군자정은 사랑채와 중문으로 연결됩니다. ‘丁’자 모양의 군자정은 대청을 서쪽에 두고 앞뒤로 두 개의 온돌방이 나란히 자리한 형태예요. 군자정 옆에는 네모반듯한 연못도 마련돼 있답니다. 군자정 툇마루에서는 햇살에 반짝이는 낙동강이 아련히 보여요. 아직은 철로에 가로막혀 조각 풍경에 만족해야 하지만 몇 년 뒤에는 활짝 열린 낙동강을 두 눈에 오롯이 담을 수 있겠지요.



임청각에서는 이상룡 선생이 태어난 우물방과 군자정 그리고 안방, 사랑방, 뒷방, 행랑채 등에서 고택체험도 가능해요. 500년이 넘은 고택, 그것도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임청각에서의 하룻밤, 멋지지 않나요?



임청각 옆에는 우리나라에 있는 벽돌로 쌓은 탑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안동법흥사지칠층전탑(국보)이 있으니, 놓치지 말고 꼭 함께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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