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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NP Dec 29. 2021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순교지, 전동성당

전주 전동성당

전주의 역사는 넓고도 깊습니다.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며 도읍으로 삼았고,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본향이 이곳 전주거든요. 조선시대 도청 격인 감영이 전주에 세워진 것도, 전주의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라는 지명이 만들어진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 내력을 간직한 고장이다 보니 많은 분들이 전주하면 으레 ‘전통’이나 ‘한옥’ 같이 우리 문화를 상징하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시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전주의 대표 여행지인 한옥마을에 발을 들이면, 고풍스러운 한옥보다 먼저 여행자의 눈을 사로잡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네 전통 건물과는 확연히 다른 그것! 혹시 눈치채셨나요? 맞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여행할 장소는 바로 전주를 대표하는 인생 샷 명소! 전동성당입니다.



전동성당이 전주를 대표하는 포토 스폿으로 자리 잡은 건 뭐니 뭐니해도 아름다운 외관 때문이겠지요. 유럽의 그 어떤 성당을 옆에 가져다 놓아도 전혀 꿀리지(?) 않는 자태라니! 사실 우리나라에는 예쁜 성당이 여럿 있어요. 서울의 명동성당, 아산의 공세리성당, 횡성의 풍수원성당 등등. 한데, 조금 죄송한 얘기지만 전동성당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아요. 아!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니 오해는 마시고요.



겉모습만 놓고 봤을 때, 위에 언급한 세 곳 성당과 전동성당의 가장 큰 차이는 종탑에 있습니다. 명동·공세리·풍수원성당의 종탑 지붕이 뾰족 지붕인 것에 비해 전주 전동성당의 종탑은 둥근 반원형입니다. 세 곳 성당에는 없는 두 개의 키 작은 탑을 중앙탑 양옆에 세운 것도 독특하고요. 겉모습만으로는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답동성당과 많이 닮았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양파 지붕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정교회 성당과도 조금 비슷해 보이네요.



전주 전동성당은 191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1891년 보드네 신부가 대지를 매입하고, 17년 뒤인 1908년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건물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성당이 완성되는데 꼬박 23년이 걸린 셈이지요. 1년이면 20층짜리 아파트가 훌쩍 올라가는 요즘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진지한 질문 하나! 그럼 왜 이곳 전주 전동에 성당을 세웠을까요? 궁금하신가요? 정답 바로 갑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인 순교 터예요. 혹시 내용도 궁금하신가요? 그럼 설명도 바로 갑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건 임진왜란 전후로 알려져 있어요. 명나라에서 들어온 <천주실의>를 통해서였지요. 당시 사람들은 천주교를 학문으로 생각해서 ‘천주학’ 또는 ‘서학’이라고 불렀습니다.


‘인간은 양반과 천민으로 나뉠 수 없으며 남녀가 평등하다’는 천주학의 가르침은 많은 백성들의 호응을 얻습니다. 하지만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던 조선사회에서 이 같은 교리는 통용될 수 없었지요.

 

들불처럼 번지는 천주교의 확산을 막기 위한 최초의 박해가 ‘진산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신해박해(1791년)입니다. 그때 전주 출신 윤지충(바오로)과 그의 외종사촌인 권상연이 이곳에서 참수되었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순교자가 나온 겁니다.


자, 이제 보드네 신부가 왜 이곳에 성당을 세웠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보드네 신부는 자신의 한국어 이름을 ‘윤사물’이라고 지었는데, 윤지충의 성 씨에서 따온 이름이 아닐까 싶어요. 한국 최초의 순교 터에 세운 성당의 초대 신부 이름으로는 그럴듯하지요?


윤지충은 남인당의 거두 고산 윤선도의 7대손이자 공재 윤두서의 증손자로 고종사촌인 정약용의 가르침을 받아 천주교에 입교했습니다.



호남 최초의 사도로 알려진 유항검 역시 10년 뒤 신유박해 때 이곳에서 처형됩니다. 유항검이 순교한 신유박해(1801년)는 천주교에 그나마 관대했던 정조 사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기해박해(1839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와 함께 우리나라 4대 천주교 박해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유박해로 인해 정약용은 강진으로, 그의 둘째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각각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셋째 형인 정약종과 백서사건을 일으킨 조카사위 황사영 그리고 정약용의 매부이자 한국인 최초로 영세를 받은 이승훈은 이때 모두 순교했습니다.



조금 어렵고 지루한 내용이지만, 그래도 전동성당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아름다운 성당을 배경으로 멋진 추억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동성당이 품은 역사적 내용을 조금이라고 알고 돌아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족과 함께, 혹은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 전동성당을 찾는다면 인생에 남을 멋진 사진도 찍고, 또 전동성당이 품은 많은 이야기에도 잠시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팁 하나! 전동성당은 서쪽으로 살짝 치우친 북향 건물이니, 오후 보다는 오전시간을 택해 방문하는 게 사진 찍기에는 조금 더 유리하다는 사실도 알려드려요.


ps

전동성당은 2022년 4월 11일까지 첨탑과 외벽 등에 대한 보수공사로 관람이 제한될 수 있으니 여행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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