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현지하상가
25년, 아니 30년은 지난 것 같다. 아껴둔 용돈 챙겨들고 회현 지하상가를 찾았던 시절이. 그 때는 그랬다. LP(Long Playing)라고 부르던 레코드 한 장 사기 위해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두세 시간을 달려 명동으로 신촌으로 부지런히도 다녔다. 스마트 폰으로 음원을 다운받는 지금 생각하면, 말 그대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다.
80년대 중반. 음악 좀 듣는다는 이들에게 회현 지하상가는 성지 같은 곳이었다. 최신 가요와 팝송은 물론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희귀 음반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잘만 고르면 새 것 같은 중고 레코드를 손에 쥘 수 있었으니, 주머니 사정 가벼운 학생들에게는 보물창고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음악을 듣고 자란 할리우드 키드, 아니 회현동 키드들이 이제 머리 희끗한 중년이 되어 다시 회현동을 찾고 있다.
회현역과 명동역 사이에 자리한 회현 지하상가는 1977년 회현 지하도로가 생기면서 형성됐다. 중고 레코드를 취급하는 상점도 그 즈음 생겼다. 명동과 남대문, 그리고 충무로 일대에서 레코드를 수집해 판매하던 상인들이 하나둘 회현 지하상가로 모여든 것이다. 중고 레코드를 판매하는 상점이 생기니 오디오를 취급하는 가게가 뒤를 따랐고, 한국은행과 서울중앙우체국이 지척이니 우표와 옛날 돈을 파는 상점도 덩달아 문을 열었다. 마니아와 수집가를 위한 공간, 회현 지하상가는 그렇게 태어났다. 특히 중고 레코드와 오디오 가게는 전국 100여 개 점포 중 15개 점포가 회현 지하상가에서 영업할 정도로 번성했다. 회현 지하상가에는 지금도 여전히 7~8곳의 중고 레코드 가게가 남아 영업을 하고 있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시간이 흘렀지만, 회현 지하상가 내 중고 레코드 가게의 모습은 교복 입고 찾았던 그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새끼손가락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촘촘히 채워진 레코드 진열대의 모습도, 진열대에서 뽑아 든 레코드 자켓 속 가수의 모습도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다. 90년대 한국 가요계를 주름잡던 신승훈과 김건모의 앳된 얼굴이 반갑고, 혜성처럼 등장해 ‘난 알아요’를 외치던 서태지의 1집 앨범은 지금 봐도 신선하다. 이제는 전설이 된 마이클 잭슨과 비틀즈의 초창기 앨범도 진열대 한켠에서 만날 수 있다.
“좋은 음반 고르는 법이요? 직접 찾아보는 게 최선이에요. 진열대에 꽂힌 음반 하나하나를 천천히 넘기다 보면 숨겨진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회현 지하상가의 터줏대감, 리빙사의 이석현 사장이 들려주는 좋은 레코드 고르는 법이다. 이석현 사장은 이를 ‘디깅(digging)’이라고 표현했다. 삽으로 땅을 파듯이 진열대의 레코드를 하나씩 꼼꼼히 살피다 보면 의외의 물건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른 음반은 가게 안에 마련된 턴테이블을 이용해 바로 들어볼 수 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레코드에 카트리지의 바늘이 닿는 순간, 짧은 잡음 뒤로 깊고 묵직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디지털 음원과는 분명 다른 소리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디지털 음원이 깔끔하게 손질해 포장한 선어 같다면, 레코드 홈을 긁고 지나는 바늘 소리는 바다에서 바로 잡아 올린 활어처럼 생동감이 있다.
“입체감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MP3나 CD의 소리가 2D라면 레코드의 소리는 3D라고 할 수 있어요. 음질도 훨씬 깨끗하고요. 레코드는 모든 음역대를 왜곡 없이 담아내지만, MP3와 CD는 고역대와 저역대의 일부를 잘라내기 때문에 인위적인 소리가 납니다. 디지털 음원을 들을 때 조금 투박하게 느끼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잡음이요? 레코드에서 나는 잡음은 대부분 불량 바늘에 의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석현 사장의 말마따나 레코드의 풍부한 음질을 즐기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턴테이블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전축이라 부르던 그 장비 말이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고뿌(컵)가 없으면 못 마시는 법. 아무리 귀한 레코드를 소장하고 있어도 전축이 없다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리빙사에서 한 블록 떨어진 종운전자는 회현 지하상가에서 손꼽히는 오디오 전문점이다.
“이게 다 카트리지(바늘)예요. 이렇게 많은 카트리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저밖에 없을 겁니다. 크기도 모양도 다 달라요. 직접 들어보면 차이를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종운전자의 김종운 사장은 충무로에서 오디오 상가를 운영하다 회현 지하상가가 생기면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충무로에서 30년 이상 생활했으니, 오디오와 함께한 지도 60년이 훌쩍 넘는다. 깊게 팬 노사장의 주름만큼 가게 안에는 골동품급 오디오가 빼곡하다. 진공관이 백열전구만한 오디오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EMT 턴테이블까지, 말 그대로 오디오 박물관 수준이다.
김종운 사장이 마니아 중에서도 마니아만 사용한다는 EMT 턴테이블에 자신 있게 올린 레코드는 남인수 선생의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다. 잠깐 숨을 고르고 레코드에 카트리지를 올리는 김종운 사장의 모습이 꽤 진지하다. ‘평생을 레코드에 바늘 올리며 살았지만 첫 곡에 바늘 맞출 때면 지금도 긴장된다’고 말하는 김종운 사장. 그 기분, 아는 사람은 안다. 원하던 레코드를 손에 넣었을 때 얼마나 가슴이 뛰는지, 새 레코드에 첫 바늘 얹을 때 얼마나 긴장이 되는지, 그리고 스피커를 통해 원하던 음악이 흘러나올 때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사람은 안다. 쉽게 구하고 또 쉽게 소비해 버리는 디지털 음원과 레코드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고음역이니 저음역이니 하는 음질 따위가 아니라 조금은 더디고 조금은 번잡해도, 그 과정을, 그 음악을 진심으로 즐길 준비가 되었다면, 그게 바로 아날로그적 감성이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 이별 슬픈 부산 정거장 / 잘 가세요 잘 있어요 / 눈물의 기적이 우네’
레코드의 좁은 홈을 파고드는 바늘이 마침내 김인수 선생의 목소리를 구성지게 토해낸다. 그럴듯한 콘서트장은 아니지만, 가끔은 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리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충분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