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
하늘을 나는 풍선, 물 위를 달리는 버스
어릴 적, 풍선 4개를 두 손에 나눠 쥐고 마당 장독대에서 뛰어내린 적이 있다. 하늘을 날진 못해도, 그래도 공중에 잠깐 떠 있으리라는 확신은 있었다. 전날 밤, 토요명화에서 본 영화 ‘80일간의 세계일주’ 속 주인공은 풍선을 타고 하늘을 두둥실 잘도 날아다녔으니까.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거대한 풍선이 내 앞에 있다. 어린 내가 손에 쥐었던 풍선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큰 풍선이. 아, 그날, 그러니까 풍선 4개 쥐고 장독대에서 뛰어내린 그날, 나는 난생 처음 목발이라는 걸 짚고 걸어봤다. 오른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오전 7시. 백마강변으로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든다. 모두 20명. 열기구투어를 위해 새벽잠 설쳐가며 부여를 찾은 이들이다. 시린 손 호호 불며 이제나 저제나 열기구 탑승시간만을 기다리는 이들의 얼굴엔 비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가득하다. 짙게 낀 안개는 다행히 아침해살에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초초하게 하늘을 살피던 이들의 얼굴에 마침내 환한 미소가 번진다. 안개는 바람만큼 열기구 비행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부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열기구 자유비행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헬륨가스를 채운 기구에 몸을 싣고 계류비행을 하는 곳은 더러 있지만, 데운 공기로 띄운 기구에 올라 유형하듯 하늘을 나는 경험은 오직 부여에서만 가능하다. 높은 산과 고층빌딩이 없는 부여는 열기구 자유비행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고장이다.
송풍기를 돌려 ‘구피’라 부르는 거대한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한 건 그즈음. 열기구는 구피에 불어놓은 바람을 버너로 데워 하늘을 나는 비행체다. 1782년,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가 타다만 종이가 연기에 떠다니는 모습을 보고 열기구를 발명했다고 하니, 그 역사가 무려 240여 년에 이른다. 이듬해 몽골피에 형제는 사람을 태운 열기구로 460미터 상공에서 25분 동안 10킬로미터를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하늘을 날고자 했던 인류의 꿈은 그렇게 실현됐다.
‘둥실’ 아무 저항 없이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아주 천천히. 이 느낌, 참 낯설다. 중력에서 벗어나는 일이 이리 수월했던가 싶다. 하늘을 날기 위해선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를 테면 이륙하기 위해 활주로를 긁어대는 타이어의 굉음을 참아내고, 급격한 고도 변화로 귀가 먹먹해지는 불쾌감도 그러려니 감당해야 한다. 한데 지금은 그런 불편이 전혀 없다. 아니 되레 편안하다. 바람에 실린 깃털처럼, 그러니까 당연한 일인 것처럼 몸이 하늘로 둥실 떠오른다. 슉슉, 버너에서 불꽃이 피어오를 때마다, 딱 그만큼씩 하늘과 가까워진다. 구름처럼 백마강을 뒤덮은 안개가 그새 발아래 그림처럼 펼쳐진다.
부여 열기구투어는 하루에 딱 한 번, 해 뜨기 직전에만 체험이 가능하다. 열기구 비행에 영향을 미치는 지열이 가장 낮은 시간이기 때문. 조향 장치가 없는 열기구는 온전히 바람에만 의지해 하늘을 난다. 필요한 바람을 타기 위해 위아래도 열기구를 움직이는 게 파일럿의 역할. 열기구가 하늘을 나는 동안 지상요원들은 차량으로 열기구를 좆으며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파일럿과 계속 공유한다. 열기구의 이착륙 지점이 수시로 변경되는 건 그래서다. 부여 열기구투어는 지표면을 기준으로 150m 높이에서 백마강을 따라 6km 정도 자유비행을 한다. 비행시간은 40분 내외. 부여 열기구투어는 스카이배너 홈페이지(www.balloontour.co.kr)에서 신청할 수 있다.
풍덩! 거대한 버스가 물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든다.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입수에 성공한 버스는 곧바로 배로 변신을 시도한다. 영화 트랜스포머처럼 내심 멋진 변신을 기대하지만, 실상은 물에서 추진력을 얻기 위해 프로펠러를 작동 시키는 게 변신의 전부. 그래도 좌우로 뒤뚱대던 버스가 중심을 잡고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순간은 무척 인상적이다. 누가 뭐라 해도 버스를 타고 강을 건너는 일은 분명 특별한 경험이니까. 부여의 수륙양용버스투어는 이렇듯 스펙터클 하게 시작한다.
부여의 하늘을 열기구가 책임진다면, 부여의 젖줄 백마강엔 수륙양용버스가 있다. 수륙양용버스는 이름처럼 물과 육지를 자유롭게 오가는 버스다. 물에서 육지로, 육지에서 물로 수시로 오가는 버스이다 보니 일반 버스와는 그 생김도 조금 다른데,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차체에 지상고까지 높아 버스인 듯 버스 아닌 버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얼핏, 상륙작전에 투입되는 해병대의 수륙양용전차가 연상되기도 한다. 물론 수륙양용버스는 무한궤도가 아닌 네 바퀴로 굴러간다.
백제문화단지를 출발한 수륙양용버스는 백마강레저파크에서 입수해 고란사, 낙화암, 천정대를 수상에서 돌아본 뒤 다시 백제문화단지로 돌아온다. 시간은 40분 정도. 구드래나루에서 고란사를 오가는 황포돛배와 코스가 겹치지 않아 백마강의 새로운 매력을 만날 수 있다. 수륙양용버스 탑승료에는 백제문화단지, 정림사지, 부소산성 입장료가 포함돼 수상 관광 후 이들 여행지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백제문화단지, 부소산성, 궁남지, 정림사지를 순환 운행하는 육상시티투어버스와 연계하면 주변 여행지들을 보다 편하게 돌아볼 수 있다. 수륙양용버스투어 탑승권은 부여시티투어 홈페이지(www.buyeocitytoue.com)를 통해 구입할 수 있으며, 여유분에 한해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수륙양용버스가 출발하는 백제문화단지에서 차로 30분 쯤 달리면 성흥산성이라 불리는 가림성(사적)에 닿는다. 백제시대 축조된 이 산성은 하늘과 강을 부지런히 누빈 부여여행을 마무리하기에 말 그대로 맞춤한 곳이다. 이유는? 멋진 일몰을 볼 수 있기 때문.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부여의 대표 포토 존인 사랑나무가 바로 이곳에 있다. 산성 남문 입구에 우뚝 선,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가 주인공이다. 최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느티나무는 축 처진 가지가 마치 하트 모양을 반으로 잘라놓은 듯해 이를 반전·합성한 사진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특히 일몰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랑나무 사진은 ‘전국구 인생 샷 명소’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주말이면 사진 찍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긴 줄이 만들어질 정도. 성흥산성 사랑나무는 드라마 ‘세종대왕’과 ‘호텔 델루나’ 등 많은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