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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현 Jan 18. 2024

틈을 안 보이는 남자

관대하기. 나 자신에게도.


1. 너의 실수

 미국 여행을 갔는데 일을 아주 대충 하더라고요? 감자튀김 안 시켰는데 그냥 막 넣어주고요. 안 시켰다고 말하니까 그냥 먹으래요. 그리고 정작 내가 시킨 소스는 안 나왔는데 컴플레인은 무슨.. 그냥 덤으로 준 감자튀김이나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다가도 소스 생각이 너무 간절해서 ‘내가 주문한 소스가 안 나왔어’라고 말하니 쿨하게 건네주던걸요. 죽을 듯이 따질 일도 아니고, 실제로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니잖아요.


2. 나의 실수 

 이걸 지금 와서 잘못되었다고 하면 어쩌자는 거야!!

 가령 이런 말을 예상했습니다. 방송을 하면서 죄인이 되는 몇 번의 순간이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였기 때문이에요.

 상품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는 MD가, 그걸 방송으로 구현해 내는 PD에게 잘못된 내용을 전달하였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날도 한 가지의 정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녹화 당일에 알게 되었고, 죄인 모드로 재빨리 PD한테 달려갔어요.

 “오케이~”

 이건 단단히 잘못되었죠.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같이 녹화를 진행하는 PD는 우리 회사에서 연차도 직급도 높은 대선배 중에 선배님이시거든요.

 뭐가 좋은지 모르겠지만 ‘좋습니다!’를 연달아 외치던 피디님과의 녹화는 너무나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방송이 즐겁다고 느낀 순간이었고요.

 

3. 너한테 관대하기

 남편과 연애 3년, 결혼생활 10년을 함께 하면서 남편이 운전 중에 클락션을 울리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안 누르길래 조수석에 앉은 제가 신명 나게 울려줬던 기억이..)

 자기 앞으로 차선 변경해서 들어오는 차가 있으면 남편은 속도를 줄이며 이렇게 혼자 중얼거립니다.

 “이래서 틈을 보이면 안 돼.”

그러면서도 깜빡이를 켜는 자동차를 보면 속도를 줄이고 또다시 틈을 보여줘요.

 “내가 틈이 없는 남자인데 용케 잘 끼어드네.”


4. 나한테도 관대하기

 한 동안 마음이 힘들었던 적이 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제 자신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기 어려워서 그랬던 것 같아요. 나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던 어느 날, 출근길에 마구 뒤엉킨 전봇대 전깃줄을 봤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연주해야 할 악보가 딱 저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무지 연주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악보요.

나는 왜 이럴까.

 5개의 선 위에 규칙적이고도 아름다운 음표들로 수놓아진 완벽한 악보여도 잘 해내기 어려운 기분인데, 내 악보는 왜 저렇게 꼬이고 꼬였을까.


 그런데 더 생각해 보니 저 뒤엉킨 악보가 결코 ‘무질서’는 아니더라고요. 완전히 망가지고 답도 없고 제 기능을 못하는 전봇대가 아니잖아요. (그랬다면 불꽃이 튀고 난리도 아니겠죠) 어디론가 전기를 전달하며 제 역할을 잘 해내는 전봇대. 제가 잘 연주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음이라도 제대로 낼 수 있게 내게 주어진 이 삶의 악보를 들여다보려고요.

 틀리면 뭐 어때요. 그 연주를 듣고 있는 사람은 나뿐인데. 다른 사람은 그 악보가 어떤 노래인지 알지도 못하고, 나한테 관심도 없을 텐데요 뭘.


 다른 사람의 실수에 너그러운 마음이 생겼다면, 내 실수도 그렇게 바라봐주면 좋겠습니다. 자책하지 않았으면 해요.


 너무 빡빡하게 살지 말자고요.

 틈을 (안) 보이는 우리 집 남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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