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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현 Mar 22. 2023

동은이 주변에 '좋은 어른들'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가슴 아픈 학폭 장면보다, 통쾌한 복수 시나리오보다 더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던 건 동은이 주변에 있던 '좋은 어른들'이다. 세상의 불행한 일들만 겪은 동은이의 마지막 내레이션 속 그래도 좋은 어른들의 보호를 받았다는 그 대사에 마음이 놓이고, 동시에 미안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회사에서 한 달 휴가를 받았다.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하면 나오는 돌봄 휴가이다. 이 한 달 동안 등교도 시키고, 학원 라이딩도 시키고 시현이의 초등 생활, 그리고 시현이가 동네에서 마주치는 어른들을 나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직장을 다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엄마들과의 교류가 적다. 드라마나 맘카페 커뮤니티에 등장하는 열성 엄마들을 만나 볼 기회도 없었거니와, 그 사이에서 나는 생존하기 어렵겠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한두 명의 열성 엄마들보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좋은 엄마들, 좋은 어른들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나 사소해서 글을 쓸 만큼의 일인가 싶었지만 세상에 작은 온기라도 더할까 싶어 용기를 낸다.



- 내 아이만큼 다른 아이도 소중히 대해주는 어른

 엄마들이 교문 앞에서 하교하는 1학년들을 맞이한다. 우리 애가 하교하는 모습이 궁금하고, 제일 먼저 맞이하고 싶은 마음일 텐데 모든 엄마들이 교문 가장 뒤쪽에서 바글거리고 서있을 뿐 누구 하나 앞에 나와 교문을 가로막고 있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전방에 자리 잡고 서있는 건 (많은 아이들을 안전하게 데리고 가야 하는) 태권도 관장님들! 아이들이 안전하게 보호자를 찾을 수 있게 배려하는 모습. 이 엄마들 정말 멋지다!


- 무서운 길을 함께 건너주는 어른

 학교 앞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횡단보도에 교통정리를 하는 공사장 측 아저씨가 있다. 어른에게나 아이들에게 먼저 인사해 주시고, 건드리기도 무서운 중학생 남자학생들 얼굴에 웃음을 띄워 줄 정도로 친근하다. 등교시간이 다소 늦은 한 아이가 보호자 없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아저씨가 시작부터 끝까지 아이와 함께 건너주었다. 이런 어른 정말 멋지다!


- 주변에 관심을 갖고 배려해 주는 어른

  학교가 끝나고 두 아이를 데리고 빵집에 들어갔다. 남은 테이블은 2인 짜리 테이블 하나. 그런데 4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두 엄마가 자리를 바꿔주었다. 아이도 분명히 배려받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배려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고맙고 감동적인 일이라는 것을 아이에게 가르친다. 이런 어른 정말 멋지다!


- 아이에게 사과할 줄 아는 어른

 학습지를 엉터리로 푸는 딸에게 엄중경고했다.

 "지금부터 틀린 답 쓰면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풀게 할 거야." (내가 생각해도 참 어리석고 유치하다)

 "엄마! 그런 게 어딨어! 누구든 틀릴 수도 있고 실수할 수 있지!"

 "아..! 너 말이 맞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 이 말은 엄마 잘못이다. 미안해!"

 아이에게 내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고 나니 사과했다는 부끄러움은 1, 아이에게도 사과할 줄 아는 어른으로 행동했다는 뿌듯함은 9!


- 아이를 이해해 주는 따뜻한 어른

 부엌 수납장 문이 떨어졌다. 아이들이 하도 쾅쾅 닫은 이유에서다. 관리실에서 고쳐주러 오셨는데 심하게 망가져서 새로운 부품이 필요한 정도였다. 내가 멋쩍어하며 '아휴.. 아이들이 쾅쾅 닫아서..'라고 하니 수리 기사님이 말한다.

 "아이들은 원래 그래요. 절대 야단치지 마세요. 고치면 되는걸요."

 방문 선생님이나 기사 님들이 오실 때 대접하는 페트병 생수가 떨어져서 아이들 먹는 요구르트를 건네 드렸더니 한사코 거절하시며 '아이들 많이 먹을 수 있게 주세요'라고 대답하시던 기사님. 이런 어른 정말 멋지다!  


 회사 선배 때문에 힘들어하던 나에게 친구가 말해줬다. 본인만 소중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막 대한다는 그 사람에 대해 친구는 그 사람은 아마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잘 대해 주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내가 소중하면 다른 사람도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이다.


 우리 아이가 소중하니까 다른 아이도 소중하게 대해주는 어른들. 우리 동네엔 그런 좋은 어른들이 많이 있다. 내가 요 근래 따뜻함을 느낀 이유가 단순히 봄이 찾아왔기 때문만은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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