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현 Nov 10. 2022

일하는 엄마의 사생활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한 좋은 것이 생겨버렸다.

 8살밖에 되지 않은 조카가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아침에 일어나서 레고도 만들고,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혼자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갖는다. 아침잠 많은 그 애의 엄마는 더 자라고 말해도 조카는 늘 아침 6시에 일어난다. 밑으로 세 살, 한 살 동생들이 둘이나 있는 조카에게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 만의 사생활일 거라 짐작해본다.


 재택근무가 없어졌다. 최근 한 달 휴가를 내고 미국에 다녀왔는데 그 새를 못 참고 회사가 바뀌어 있었다. 시차 적응은 쉬웠는데, 주 5일 출근 적응은 한 달이 지나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다행인 건 어떤 상황에서도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찾아내고,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성격이라는 거. 이 와중에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한 좋은 것이 생겨버렸다.


 출근시간은 8시. 회사에 도착시간은 7시 15분. 이렇게 도착하기 위해서는 새벽 5시에 일어난다. (매우 한적한 신도시로 이사 왔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이 새벽 5시부터 8시까지의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힐링되는 자유시간이 되었다.


 새벽 5시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화장을 하는 시간이 좋다. (아이 키우는 엄마라면 화장하는 시간은 결코 혼자 하는 일이 아닌 ‘네가 바르네, 내가 바르네’ 온갖 관심과 간섭이 따른다는 것을 안다.)

 새벽 6시에 버스기사님 바로 뒷자리를 지정석 삼아 졸리면 자고, 휴대폰도 하고 음악도 듣는 시간이 좋다.

 아침 7시 15분에 회사에 도착하고 45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면 커피 한 잔과 빵을 산다. 그리고 좋아하는 책 한 권 챙겨서 가장 구석진 미팅룸에 들어간다. 그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은 나의 가장 사적인 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되었다.

 “중고차라도 사줄까?”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 9시가 되면 애들 재우다가 같이 곯아떨어지는 나를 보며 남편은 많이 안쓰러웠나 보다.

 “아니야. 나 할 만 해.”

 나도 모르게 이 시간을 ‘할만한’ 시간으로 에둘러 말했다. 최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남편에게 말하지 못한 건, 애들 등원을 담당하는 신랑이 아침에 얼마나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는지 알기 때문이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나는 아침에 좋은 시간 보내고 있어’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출근하는 엄마 아빠들. 그리고 아침부터 아이들과 등원 전쟁하는 엄마 아빠들.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고생이 많다. 아침에 커피 한 잔 또는 육퇴 후 맥주 한 캔 즐길 수 있는 각자의 사생활이 있으니 조금은 힘을 낼 수 있는 거라고 믿어본다.


 ‘등원 완료!’

 카톡이 왔다. 나는 진심을 담아 답장을 보낸다.

 ‘고생했어. 커피 한 잔 때려!’



매거진의 이전글 잘 못살고 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