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말 부러운 사람들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쓰고 싶은 주제가 없을 정도로 깊은 생각을 하지도, 엉뚱한 고민을 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단순하게 살고 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쓰기 행위'로 스트레스를 풀던 습관을 생각해보면, 쓸거리가 없다는 것은 어찌 보면 평온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잘 살고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부모님 집은 초등학교 정문 바로 앞 아파트 2층이다. 은퇴한 아빠는 집 안과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이젠 누구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소리와 풍경엔 요일별로, 시간별로 규칙이 있음을 재미있어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등하굣길 풍경을 가장 귀여워했다.
아빠의 묘사에 따르면 아침 학교 가는 길은 고요하다. 서재 창문으로 등굣길이 훤히 보이는데, 너무도 고요해서 보면 아이들은 제 갈 길을 잘 가더란다. 어떤 판사가 아이들 소음에 대한 판결문에 아이들의 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자연의 소리'라고 했다던데, 그런 자연적인 현상이 멈춘듯한 고요함이다. 어깨는 축 처지고, 시선은 바닥에, 발걸음은 어찌나 무거운지 신발 밑창으로 거리의 먼지를 다 쓸고 갈 지경이다.
반대로 학교가 마치는 시간이 되면 어디 장이라도 열렸나 싶을 정도로 시끌벅적해진다. 조잘조잘, 재잘재잘 자연의 소리를 되찾는다. 책가방이 무거워서 처진 줄 알았던 어깨는 들썩이고, 등에 매달린 책가방이 통통 튕겨지다 못해 뒤통수에까지 닿을 정도다.
이 얘기를 들으며 출근하고 퇴근하는 내 모습과 다르지 않아 웃음이 나왔다. 거울로 직접 내 출근길 표정을 보진 못했지만 내 어깨의 각도, 시선, 발걸음은 어느 초등학생 못지않게 우울해 보일지 모르겠다. 출근하는 내 모습만 봐도 나는 잘 살고 있지 않았다.
- 10년 차 직장인
이렇게 사는 동안 팀장님이 한번 바뀌었고, 모바일 라이브 쪽으로 업무를 맡아 신상품 론칭을 여러 개 했다. 새로운 상품을 만나는 건 즐거웠지만, 결과가 좋았든 나빴든 그에 따라오는 숫자에 대한 압박이 너무 힘들었다. 결과가 좋으면 성취감도 커야 하는데 어느 순간 '다행'이라는 정도에 마음이 그쳤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며칠이 괴로웠다.
완전히 다른 업무를 해보고 싶어서 팀장님과, 담당님 면담도 했다. 10년의 MD 업무를 정말로 끝내고 싶은지 아직도 모르겠다. 10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하면 커리어가 뚜렷해지고 확신이 생길 줄 알았는데 왜 아직도 고민하는지, 뭘 하고 싶어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10년 차 직장인에게 ‘새로운 기회’는 사치였다.
-천 번의 기회
딸아이와 투닥투닥 싸우다가 아이가 나한테 비장하게 말했다.
“그래 엄마. 엄마한테 기회를 줄게.”
“(어이가 없어서) 기회라니? 기회 한번 준다고?”
“아니 기회는 1,000번이야.”
그렇게나 많은 기회를. 그렇게나 후하게 주다니. 천 번이나 해 볼 수 있다면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아이가 준다던 그 천 번의 기회를 왜인지 내가 나 스스로에게는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내가 끈기 있는 사람이 아닌 거겠지.
적어도 퇴근하는 길 책가방이 들썩이는 걸로 이 삶을 만족해야 하는 걸까. 더 이상 퇴근시간마저 즐겁지 않게 될까 봐, 책가방 자체를 더 이상 매고 싶지 않게 될까 봐 걱정이다.
내가 요즘 가장 부러운 사람은 그걸 찾은 사람들이다. 천 번이나 뛰어들고 싶은 일을 찾은 사람들. 그들의 등하굣길은 얼마나 신명 나고 재밌을까. 대단하고 부럽다. 진심으로.
지금 이 고민의 답을 찾고, 이 글의 후속 편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내용이 되었든 그때의 제목은 '잘 살고 있어요'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