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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현 Jun 09. 2024

자랑 하나만 해도 돼요?

‘자랑’과 ‘자랑질’의 한 끗 차이

부장님 저 뭐 하나만 자랑해도 돼요?


지나가던 옆팀 PD팀장님도 내 얘기가 궁금했는지 그냥 지나치치 못하고 걸음이 느려진다.

“남편이 오늘 애 둘 다 데리고 2박 여행 간데요!”

역시나 PD팀장님은 걸음을 멈추고 한마디 보탠다.

“너무…. 너무 부럽다”

내 자랑 폭격을 맞은 부장님은 부러워서 그냥 퇴근시키면 안 되겠다며 주위 사람들한테 하고 있는 일 죄다 ‘쟤한테' 넘기라고 악역을 자처한다.


 우리는 회사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이런 자랑을 시도 때도 없이 한다.

 “저 오늘 저녁에.. 곱창 먹으러 가요!!”

 단순하고 귀여운 사람들. 그걸 자랑이라고 우쭐대는 너나, 부럽다고 손뼉 치고 있는 나나. 우리 참 귀엽고 단순하다. 사실 자랑할게 정말 이런 것밖에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박수 쳐주며 같이 좋아해 줄 수 있는 정도의 선을 아는 사회인이기 때문에 여기서 멈추는 것이다. 더 갔다가는 왠지 모를 밉상 캐릭터로 거듭난다는 상식이 있기 때문에.


 한 번은 자식 자랑을 밥 먹듯 하는 어떤 엄마 앞에서 작정하고 내 새끼 ’자랑질‘을 했다. 별것도 아닌 걸로 계속 자랑을 하길래 ‘니 새끼만 잘났냐? 내 새끼도 잘났다’는 유치 찬란한 생각에 휩쓸려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매번 참고 참아왔던 감정이라 이렇게 한번 터뜨리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하루종일 내가 내뱉은 말들과 행동이 머릿속에 떠올라 참을 수 없는 오글거림과 후회가 밀려왔던 기억이 있다. 그 엄마를 만나면 내 자신이 싫어져서 그 이후로는 멀리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던 걸까? 다른 모임에 가도 그 엄마가 눈에 띄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어머니는 말솜씨가 남다르다. 특히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죄다 ‘아들이 빙구였던 시절‘에 관한 것이니, 이건 뭐 바보 온달하고 결혼했다고 추켜세워주시는 건지, 지금이라도 도망가라는 뜻인지 이해는 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남편에 관한 이야기에 배꼽을 잡고 데구루루 구른다. 가령 이런 것이다. 국민학교 학부모 공개수업에서 선생님의 질문에 열심히 손을 들더란다. 어머님의 자랑스러운 미소는 잠깐일 뿐, 틀린 답을 말해서 한차례 부끄러웠으나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셨단다. 그런데 2학년 진우는 굴하지 않고 다시 손을 들었다. ’ 만회를 하는구나!‘ 기쁜 마음으로 진우가 하는 답을 들어보니 아까 선생님이 틀렸다고 했던 그 답을 또 한 번 우렁차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맑은 나의 진우는 지금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가장으로서 매우 잘 살아가고 있다(하하).  


 시어머니의 말솜씨는 상견례 자리에서도 빛을 발했다. 어머님의 아들 디스, 유년기 시절의 흑역사 등이 줄줄이 폭로되고 상견례 자리에 있던 모두가 매우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끝자리에 앉아있던 남편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고 있을 뿐이었다. 스스로를 낮춘다고 정말 낮아지는 걸까? 자존이 높은 사람이라면 그런 일화쯤으로 초라해지지 않는다. 상견례가 끝난 후 엄마는 어머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들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신 것 같다’고 말이다.


 이 글에서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자식의 흑역사를 들추며 깎아내리라는 뜻도 아니고, 자랑은 나쁜 거니 절대 하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분위기에 맞게, 적당하게, 더 바란다면 그 자리에서 세련되고 위트 있게 행동해 보자는 말이다. 유치하게 되갚아준다는 생각으로 자식 자랑했다가 두고두고 이불 킥하는 나 같은 사람이 없길 바란다는 뜻이다.


마지막 자랑으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부장님, 하나만 더 자랑해도 돼요? 저 오늘 4시 퇴근이에요!”

4시 퇴근을 위해 7시에 출근한 자의 퀭한 눈을 훈장처럼 치켜뜨며 부장님을 약 올렸다.

“뭐 해, 쟤 야근 안 시키고!”

부장님의 외침을 뒤로하고 육아해방과 정시퇴근을 모두 쟁취한 나는 유유히 회사 문을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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