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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Jun 07. 2024

행동을 망설인 이유는 '상대성' 때문이다


'그게 될까?'

'내가 뭘. 어차피 안 될 거야.'

'실패하면 어쩌지.'










그동안 생각하다 지레 행동하길 포기해 왔다면 이 글을 읽어 보세요. 적어도 행하지 않아 오는 '후회'는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그동안 행하지 않아 버려졌던 행운을 이제는 잡을 수 있을 테지요.










우리는 무의식 깊이 자리한 그것으로 인해 잘못된 생각의 씨앗을 뿌리고는, 왜 썩은 열매를 맺는 거냐며 하늘을 탓합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는 생각의 전제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이 글이 당신의 무의식을 정화하길 바라며.












행동에 앞서 많은 이들은 생각부터합니다.

어차피 안 될 거야. 실패하는 것보단 행동(시도) 않는 편이 나아. 그냥 하지 말자.

이를 자기계발적으로 말하자면 '행동하지 않음'이 되죠.










이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

이면을 파고 들어, 그럼 왜 그럴까.










심리학에서는 말합니다.

"당신의 게으른 완벽주의 때문입니다."










자기계발서에서도 말합니다.

"아직 덜 간절하네, 일단 시작해. 못 먹어도 고라고!"










뇌과학에서도 말합니다.

"새로운 시도(행동)로 변화할 미래의 나는 예측 불가하다. 이런 불안이 행동을 주저하게 한다."










현상의 원인은 이토록 다양합니다만

오늘은 노자의 <도덕경>을 살짝 빌려 말하렵니다.

고전의 지혜는 현대적 접근으론 다가갈 수 없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믿으니까요.











당신을 주저하게 한 진짜 방해꾼은

'상대성'이다.













상대성이란 뭘까. 예를 들면 바로 이해갑니다.

예를 위한 질문.










Q.

당신은 행복이 어디서 생겨 났다고 생각하시나요?










집?

은행?










아니요. '불행'입니다.

행복의 모태는 불행입니다. 불행이 없으면 행복이 없고, 마찬가지로 악이 없으면 선도 없습니다.

이렇듯 세상은 '삼라만상'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반대, 즉 상대적인 개념을 잉태했습니다.










불행을 말하기 위해 불행을

악을 말하기 위해 선을 말이죠.










'네'가 없으면 '나'가 설명될 길 없는 것과 같습니다.

어쨌거나 우주는 그런 식으로 세상을 설명해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으나

단시 설명하는 방식이 그렇기에,

행동 전 당신 스스로를 제동하게도 했습니다.










'성공'이 존재할 수밖에 없게 만든 상대적 개념, '실패'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동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바로 '실패'로 인한 주저입니다.










행동에 앞서 내면은 다음과 같이 속삭입니다.










- 해봤자 네가 되겠어? : 했으니-성공해야 한다는 전제, 자기실망에 대비

세상이 세운 기준으로 볼때, '그걸론 성공 못해'










한 번쯤 해봤을 겁니다. 머리로 떠들다 제 풀에 지쳐 지레 포기하는. 사족입니다만, 영성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이를 두고 극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생각이 필요 없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행함에 앞서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










다시 말하지만 실패의 상대적 개념, 성공. 그리고 '성공'에 방점이 찍힌 행함 때문입니다.










당신이 그간 해왔던 머리 속 생각(떠듦)에는 다음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행하다 > 성공하다          

(행했으니 성공해야 한다. 성공이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










이면엔 '(행)하고 싶은 마음'이 또렷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속삭였던 거죠.










'하고는 싶은데, 될까? 성공할 수 있을까? 실패하면?'










그렇습니다.

행함의 전제는 상대성으로 요동치는 성공 vs 실패였던 겁니다.

분별하는 두 개념 속에 당신은 행동을 간 보고, 성공에 가깝다면 행함을 실패에 가깝다면 행하지 않음을 택해온 것.










행함에 '전제'가 확신할 수 없는 미래(성공과 실패), 하물며 분별할 필요조차 없는 이 둘에 있는데 어찌 행할 수 있었을까요.

(미래 아는 사람 나와보라 그래!)







성공도 실패도 없다.

성공은 실패를 설명하려 존재할 뿐,
그것은 그저 그런 것이다.

성공과 실패를 분별짓는 마음을 없애면
행하고 하지 않고를 기준할 잣대가 사라진다.

즉, 행함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실패해도 괜찮아' 할까?

'다시 하면 되지 뭐' 할까?










아니요. 그보다 고결한 지혜가 <도덕경>에 있습니다.










분별을 없애는 것.










애초에 성공과 실패라는 분별이 없으면 행함에 기준이 사라집니다. 뿌연 안개가 걷히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더는 성공도 실패도 아닙니다. 분별하지 않았으니까요. 대신 내 마음이 시키느냐 시키지 않느냐, 이 둘을 근거로 결정한 행함이 됩니다. 가장 순수하면서 원초적인 상태.










행하지 않아 오는 '후회'는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동안 행하지 않아 버려졌던 행운을 이제는 잡을 수 있을 상태요.








나의 행함을 성공과 실패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구별할 때
우리는 '성공'의 확신이 전제되지 않는 한 무엇도 행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구도 확신할 미래는 없다.

툭툭, 행함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성공이라 부를 우연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실패의 이면에 불과하다. 성공하지 않았음이 실패이듯, 단지 실패하지 않았음이 성공인 것이다.











앞으로는 오직 '행함'에 방점을 찍으세요.

'나 오늘 했다!' 그리고 성공과 실패를 분별하던 마음을 이겨, 결국 '해냈음'에 기뻐하세요.










나는 오늘 내 가슴이 시키는 일을 '했다'로 만족하는 것.

당신이 뜨겁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할 매일이 되어줄 겁니다.










*

위 글은 아래 영상에서 영감 받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지친 일상, 당신의 마음에 평온을 선물할 영상입니다.



편하게 보시라고 링크 걸어둠.^_^




https://youtu.be/eeizyCK_z6g?si=nZZdY-lmoeRgji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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