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쭈글쭈글할 때 우리 다 같이 글을 쓰자.
분명 육아기를 남기겠다고 감동 넘치게 시작했는데, 막 우리 애들을 넘치게 사랑하는 척 오버했는데 점점 나는 애들 성장이나 에피소드 대신 내가 하고 싶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긴 고3 이후 떠났던 고향에 돌아와서 친구도 거의 없이 임신, 출산, 육아를 묵언 수행하듯 집콕하며 그것도 3번째 반복하며 4년 차로 해오고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이 오죽 많으랴?
사실 보통의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는 그리 크게 달갑지 않을 것 같다. 애 셋 키우는 아줌마 한풀이가 뭐가 재미있겠어? 사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사람 혼을 쏙 빼놓은 재주가 있어야 하는데 할 말은 넘치는데 내 실제 모습처럼 글도 이래저래 변명이 많아서 길어지기만 하고 마음을 훔치는 것에는 소질이 보이지 않는다. 아닌 척 하지만 나도 안다.
박경리 선생님처럼 호흡이 길면서도 멋진 글을 쓰지 않을 거면... 이를테면 드립 커피 같이 공들여 내린 커피가 아니라면 가장 대중적인 라테처럼 부담 없이 마시고 딱 떨어져야 할 텐데 나는 다 식은 아메리카노인데 용량마저 벤티여서 그런가 보다 생각한다.
(누구 다 식은 아메리카노 좋아하시는 분? 아니면 얼음 다 녹아 물 넘치는 아메리카노는요?)
돌아보면 늘 그랬다. 나는 늘 큰 인기는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조용하지도 않았고 그냥 적당히 이름 정도는 알만한, 반에 한 둘쯤 있는 평범한 아이 정도. 반장, 실장은 아니고 잘해도 부반장, 서기 하는 정도. 성적도 국민학교부터 대학교까지 85점을 중심으로 오르락내리락 춤을 췄다. 오죽하면 대학 졸업장 마지막에 딱 85점, 정확히 3.50을 받았을까? 엄청 못 하지도 잘하지도 않은 애매함의 결정체.
누가 보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크는 성장과정을 남기는 것이 의미가 있을 거라고 시작한 이 글쓰기에 오늘은 꾸준히 85점짜리, 크게 눈에 띄지 않는 밋밋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딱히 누군가 관심 없을 내 과거까지 끌어다 구구절절하게 변명을 늘어놓는 이유는 내가 사실 종종 “우울하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쭉 우울해 왔으나 오늘 “우울한 척” 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살아오면서 나는 우울하지만 내가 우울하다는 생각을 지우려고, 직면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써왔다. 심지어 어느 날에는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하고도 다음 날엔 일어나 밥을 차렸고 아이들에게는 눈물을 닦고 웃어줬다.
‘나는 괜찮아. 이쯤이야 다 하는 거잖아?’
‘나는 알아. 결국 나는 긍정을 선택할 것을.’
하지만 책을 읽고 맛있는 걸 먹어보고, 집안 청소를 해보고 밀린 집안일을 맘먹고 해치워도 해소되지 않는 허전함과 우울함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는 이제 뭐 먹고살지?’, ‘난 뭐하지?’, ‘나 죽고 싶다.’까지...
잘 사는 것 같다가도 이상하게 패턴을 반복하며 원점으로 돌아왔고 나를 끝없이 넘어트렸다.
과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결혼과 동시에 임신, 출산을 하며 이런 반복되는 우울증의 패턴을 4년 차로 경험하고 있는 나는 그래도 나름대로 해봤던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1. 이런 나를 인정한다.
‘내가 힘들구나. 우울하구나. 내가 나를 굳이 괴롭히고 있구나.’ 이렇게 내 상태를 인정하고 관찰자로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반 정도는 해결된 기분이 든다. 내가 내 상태를 인정하고 마음이 아픈 것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치료의 절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 장기 목표, 중/단기 목표들, 장기 행복감을 주는 것, 중/단기 또는 즉각적인 행복,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생각하거나 바로 실행에 옮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서 기분 전환을 하거나 하다 못해 지금 당장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는 것일지라도. 없다면 단 10분 정도라도 시간을 정해 리스트를 작성해라. 리스트를 작성하는 동안 행복해지는 걸 경험했던 순간들이 나는 참 많았다. 특히 장기 목표가 터무니없는 것이 되더라도 일단 적는 걸 추천한다. 상상은 자유니까.
3. 우울함이 다시 올 수 있을 거라는 것도 인정한다.
우울증은 당뇨나 암 같은 질병처럼 친구처럼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 같다.
4. 내가 느끼는 감정과 이 감정을 겪어내는 것이 내 “선택”임을 잊지 않는다. 결국 이 말은 내가 내 기분을 선택하고 다른 기분 또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적극적인 자세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바로 4가지나 훌륭하게 적어낼 수 있다니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꾸역꾸역 나를 지탱해온 이것들의 원천이 결국 다시 또 내가 “엄마”라는 것과 “엄마는 강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에 현혹된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더불어 스스로 늘 되뇌는 “닥치면 다 해.” 까지.
정말 퍼펙트한 3종 세트다.
휴...
내가 종종 우울하다는 걸 말하는 것도 부끄러워 이렇게 눈치 보며 돌리고 돌아오더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처럼 우울한 것도 표현하지 못 하고 주체 못하고 있을는지...
누가 아이를 낳고 우울하거나 이미 경험한 분이 있다면 걱정 마시라. 당신이 인생 바닥 친 사람 같고 찐따같이 느껴질 때에 대한민국 소도시 어딘가에 나도 있다.
날 보면서 위로 삼기를.
“괜찮아! 쟤도 망했어.” 이 정신으로 우리 함께 짧게 우울하고 일어나 보자. 그리고 기분이 쭈글쭈글할 때에는 우리 다 같이 글을 쓰자. 이거 쓰고 나니 나도 좀 기분이 나아진다. (사실 이거 몇 주 전에 정말 우울할 때에 작가의 서랍에 넣어두고 마무리 못했는데 몇 주가 지난 오늘 또 우울하길래 대에충 마무리한다. “아 난 역시 게을러.” 하면서)
뭐 하루쯤 엎드려 울어도, 넘어져도 어떻겠는가!
100세 시대에.
우리 속의 작은 아이를 내 자식들처럼 감싸주진 못하고 너무 모른 척하며 학대하고 있는 건 아닐런지...
오늘은 우울한 척하고 내일부터 안 우울하면 된다. 내일모레 다시 우울할지라도 우리가 정해놓은 먼 미래의 인생 목표와 행복은 우울을 적은 게 아닐 테니 오늘은 조금 그래도 된다. 다이어트가 늘 내일부터인 것처럼.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받아주랴! (하지만 체중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