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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별 Feb 07. 2022

[실실실] 9. 새해가 밝았다.

우리는 음력으로 새해를 맞자

둘째는 늘 밤에 잠들기 힘들어한다.

작년 어느 날 밤에도 둘째는 잠이 안 오는지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둘째: “나는 잠이 왜 이렇게 안 오지요?” (옹알거리듯 병아리처럼 삐약삐약 그러나 또박또박 말하는 둘째의 귀여운 목소리에 "~지요?" 하는 저 특유의 말투는 매일 듣지만 나의 심장에 무리를 준다.)

아빠: “잠아, 빨리 와! 해봐.” (우리 애들이 읽었던 책 중에 나오는 말이다.)

둘째: “잠아 빨리 와…” (조금은 작아진 목소리로 외쳐보는 둘째)


야속한 잠은 어째서 둘째에게만 늦는지, 매일 밤 첫째는 제일 먼저 잠들고 셋째는 잠은 오는데 누나가 소리 내고 뛰어다니니 자꾸만 일어난다. 이렇게 우리의 밤은 잠들기가 쉽지 않다. 잠에 예민한 남편은 둘째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하고 결국 한소리를 듣고 셋째와 잠을 청하는 나에게 파고든다. 그렇게 나는 왼쪽엔 셋째, 오른쪽엔 둘째를 끼고 종종 잠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그런 둘째가 혼자서 잠이 들었다. 낮잠을 무시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신나게 놀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좋아하는 옥토넛 탐험대를 보다가 거실 매트 위에서 잠이 든 걸 남편이 데려와 눕혔다. 사실 우리는 1월 29일 둘째의 생일부터 설 당일을 제외하고 아이들은 쭉 집에 있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어마 무시하게 늘어났고 전염병의 확산세에 늘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우리 부부는 그게 옳은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처음 2-3일은 집에서 좋아하는 만화도 보고 어린이집, 유치원을 안 가니 좋아하다가 가끔 의아한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왜 우리는 집에 있어요?" 분명 창 밖으로 아파트 공원에는 사람들이 다니는데 자기들은 집에 갇혀 있으니 아무래도 심란했나 보다. 자신들이 느끼는 그 감정이란 것에 어떤 이름을 내걸어야 할지 혼란스러웠을 테지. '너희는 쫄보 부모를 둬서 집에 있단다. 코로나19가 나쁜 녀석이야 얘들아.'


단 하루,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된 설 당일에만 남편의 부모님이 계시는 시가와 나의 부모님이 계시는 친정에 순서대로 방문한 것 외에는 우리의 집콕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단 하루 동안 아이들은 정말 신나게 놀았다. 시가에서는 한복을 입고 세배도 드리고 바람에 날리는 눈을 데크에 서서 보았고 친정에서는 이종사촌들과 만나서 두피에서 흐른 땀이 이마를 가득 채울 정도로 신나게 놀았다. 모두 같은 지역에 사는 분들이었기에 다행이었다.) 우리가 필요해서 나섰던 단 두 번의 드라이브(마트, 병원 다녀오기) 외에는 차 밖도 나가지 않고 차 안에서 바다를 보았었다. 다둥이 집의 당연한 선택(?)인 카니발 안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둘째는 "성게가 보여"라고 했었다. (고마워 옥토넛, 넌 정말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주는 멋진 친구들이야. 우리 둘째, 투시도 할 수 있다니 멋져!)


이렇게 어영부영 집에서 냉장고와 양가에서 주신 설음식들을 파먹으며 음력설이 지났고 남편과 나는 진정으로 40대가 되었다. 아이들은 순서대로 한국 나이로 6,4,3살이 되었다. 올해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남편은 이사와 이직을 꿈꾸고 있고 나는 막둥이가 어린이집을 간 이후로 쭉 하원이 다가오기 전까지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눈을 돌리고 있다.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고민했으나 아무래도 아이 셋을 케어하는 것과 현실적인 출퇴근의 어려움을 고민하다 보니 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 나이 마흔 그리고 하나.

이제는 여러 시도를 하기보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는데 더 많이 즐겁게 시간을 써보려고 한다. 올해에는 글, 그림, 사진 그리고 그것들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걸 즐겁게 해 볼 생각이다. 


글, 허술하지만 쏟아내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은 나라 어쨌든 글은 써야 마음이 풀린다. 누가 읽을지는 모르나 내가 쓰고 싶다.  


그림, 전성기라고 하면 우습지만 한참 그림을 좋아하며 그리던 때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고 우습지만(물론 그때도 충분히 우스웠었다. 하하하!) 그림일기와 잊혀 가는 골목길을 남기는 노력을 이따금 해보려고 한다. 


사진, 사진도 무진장 좋아했었다. 30대에 그림 그려보는 걸 처음 배웠다면 20대는 사진이었다. 수동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를 번갈아가며 늘 메고 사진을 찍었었다. 그 사진을 좀 더 생활 속에서 찍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 결과물들을 나름대로 좀 더 수익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NFT 시장도 웃기지만 나가보려고 한다.

일단 오픈씨에 카이카스를 통해 등록은 4점만 해두었다. 판매는 아직. (시장에 나간다니 너무 설레잖아!)


이젠 늦었지만 늦은 대로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지 않고 일어설 시간인 것 같다.

올해도 아이들과 함께 즐겁기를. 이런 계획, 많이 늦었다. 

하지만 우리는 매년 음력으로 새해를 맞자. 한 달 정도는 늦어도 머쓱하지 않게 새해 계획도 세울 수 있으니.

이미 수년, 수 십 년 늦었는데 뭐 어때. 


여러분도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역시 새해는 (이럴 때만) 음력으로 쇠는 겁니다.


새해 첫 해는 아니지만 뜨거운 동해의 태양의 기운을 받아가세요!

우리 모두 비상!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 주인공 남녀의 고등학생 때 앉아서 바라보던 그 바다가 바로 우리 집에서 3분 거리의 바닷가다. 1월 22일의 일출을 아이폰8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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