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 기 죽이지 마. 세아는 다른 애들이 때려도 못 때리고 가만히 있어. 다들 자식 기 살려 주느라 야단인데. 아직은 아기니까 너무 완벽하기를 바라지마.” 남편과 일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뜬금없이 엄마에게 온 카톡 메시지다. “TV 보면서 밥 좀 먹을 수도 있지. 매번 혼내서 울리니까 애가 스트레스 받아서 하원하고 집에 안 오려고 해.” 우리 부부와 엄마는 평소 TV를 틀어주는 문제로 늘 싸웠다. 하지만 엄마 아빠 없으니 할머니가 TV를 원 없이 틀어줬을 텐데 그녀의 속사포 카톡은 계속 이어졌다. 짜증이 솟구친 나는 “뭔 소리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TV 보면서 밥 먹는 건 절대 안 돼.” 텍스트로 한참을 티격태격하다 이륙하는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오후 9시. 공항 리무진에 내려 마침내 현관 문을 열었는데 조용하다. 엄마와 아이가 없다. 역 근처로 마중을 나갔나? 바로 전화했다. “우리 집에 도착했는데 어디야?” 엄마에게 물었다. “내가 배터리가 없으니까 빨리 말할게. 순천향대학병원 모자 병동 1층으로 와. 세아 폐렴으로 오늘 입원했어.” 남편과 곧장 병원으로 갔다. 병동에서 만난 아이는 엄마 아빠를 격하게 반겼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도대체 5일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관이었다. 아이는 최근 독감 이후로 기침을 계속 했다. 밤에는 기침을 하다가 토한 날도 많았다. 우리가 여행을 떠난 지 3일째 되던 날, 미열이 있다며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38도 넘지 않으면 병원 안 가도 돼. 오늘 율동 발표회 최종 리허설이니까 그냥 보내고 혹시 중간에 열나면 담임 선생님한테 연락 달라고 할게.” 내 말은 들은 엄마는 알겠다고 했는데 아이는 고열이 났고 등원 후, 토를 하는 바람에 즉시 조퇴를 했다.
그 날 소아과 접수 똑닥 메시지를 받고 엄마에게 물어본 뒤에야 조퇴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는 했지만 열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때부터 사실은 은폐되었고 내가 몰랐던 스토리가 펼쳐졌다. 열이 나기 시작하자 심상치 않다는 촉이 발동 했던 엄마는 동네 소아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어 달라고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촬영 결과 폐가 뿌옇고 폐렴이 의심된다고 했다. 엄마는 아이 부모가 해외에 있고 내일 중요한 발표회가 있으니 하루 이틀 약으로 버텨볼 수 없는지 부탁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럼 하루만 더 지켜보자고 했고 해열제와 항생제를 먹으며 아이는 무사히 율동 발표회를 마쳤다.
발표회 다음날은 학기 종강일이자 과자 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다음날 아침. “세아 과자 뭐 사갔어?” “집에 있는 거 챙겨갔어.” 알고 보니 아이는 아침부터 다시 열이 나 등원하지 못했다. 다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폐렴이 심해졌고 빨리 큰 병원에 내원하고 입원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이 났다. 엄마는 모든 인맥을 수소문해서 병원의 지인을 찾아냈고 진료를 받은 후, 논스톱으로 입원시켰다. “병원에는 어떻게 간 거야?” “윤주 할머니한테 좀 태워달라고 했어.” 아이 친구의 할머니가 차를 가지고 다니시는데 라이드를 부탁했단다. 아이 짐을 미처 챙기지 못해 사당동 사는 나의 이모를 병원으로 불러 아이를 맡겼다. 엄마는 짐을 챙겨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빨리 가야 하는데 택시를 못 잡아서 정원이 엄마한테 불러 달라고 했잖아 또. 1정원이는 아이 같은 반 친구 엄마다. 우리 부부가 힘들게 놀러 갔으니 잘 다녀오라고 배려해 준 마음은 이해한다. 허나 내 기준으로는 '굳이 그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드는 too much 배려다. 오랜만에 혀를 내두른다.
이제야 그 밑도 끝도 없는 카톡이 왜 왔는지 실마리가 풀렸다. 엄마는 아이가 아픈 원인이 나의 통제성이 강한 양육방식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병원에 입원한 과정부터 이동 스토리까지 직접 들으니 실로 대단했다. 이번 위급 상황에서 엄마의 대처를 보며 나보다 한 수위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 더 놀라운 것은 병원의 똑딱 메시지가 더 이상 나한테 발송되지 않도록 수신자를 본인으로 변경하고 병원비 등 제반 비용들을 모두 현금으로 결제 했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하나다. 나와 남편이 아이가 아픈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하는 것.
“소아과에서 대기하다가 당이 떨어져서 내가 쓰려졌잖아. 간호사들이 초콜릿 챙겨줘서 겨우 정신 차렸어. 손녀 돌보다가 할머니가 쓰러지겠네 하드라.” 그럼 차라리 이런 말은 하지 말고 속으로 삼키지. “아니. 병원이고 유치원이고 동네방네 소문 다 나겠다. 애 두고 놀러 다닌다고.” “아니야. 내가 출장 갔다고 했어.” 겨우 짜증을 참고 있는데 한 마디 또 날아온다. “참, 말 못한 게 있어. 내가 독감 후로 바로 코로나에 걸렸어. 혹시 애한테 내가 독감 옮긴 건 아닐까 코로나도 옮기면 어쩌나 엄청 걱정했어.” 엄마는 이번에 코로나가 처음이었다. 지병이 많은 데다가 독감에 코로나까지 연이어 걸렸으니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을 게다. 코로나 확진 이라고 하면 아기 돌 볼 생각 말고 쉬라고 할 게 뻔하니 끝까지 숨겼단다. “아니 왜 말을 안 해. 그러다 애한테 옮기면 어쩌려고?” 사실 전염보다는 엄마에 대한 걱정이 컸는데 화가 난 나도 말이 삐딱하게 나간다. 돌아오는 엄마의 대답은 “그럼 죽어야지.” 그녀의 말은 진심이다.
자나깨나 아이를 위하는 엄마의 무한 희생은 늘 미련해 보였고 내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앞뒤 가리지 않고 본인 몸을 혹사시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절염, 골다공증은 물론 각종 디스크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업어달라고 하면 힘겨운 신음소리를 내며 기어이 업는다. 한쪽 팔이 올라가지 않아도 아이가 하자는 율동 체조를 열심히 하느라 여념 없다. 손녀가 아닌 그냥 엄마 자식으로 키우라고 하고 떠나고 싶을 때도 많았다. 내 딸의 아이라서? 주위를 둘러봐도 모든 할머니가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나 바빠~” 하고 손주 돌봄과는 거리가 먼 친구의 엄마처럼 쿨한 할머니였으면 하고 늘 바란다.
하지만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아이에 대한 엄마의 진심. 내가 아무리 적당히 하라고 해도 멈추게 할 수도 절대 통제할 수 없다. 여생의 이유가 손녀인 할머니. 아이가 기침을 하면 등을 쓸어내리고 목에 수건을 풀었다가 둘렀다가 하느라 한숨도 못 자는 할머니. 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면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정말 별도 따다 줄 것만 같은 할머니. 이제는 내가 엄마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차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