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체능 DNA를 가진 사람에게 끌린다. 미술, 음악, 체육 분야의 직업인들이 타고난 재능 혹은 기본 역량을 바탕으로 갈고닦아 전문성을 갖춘 게 멋있다. 이 분야의 끝판 왕 느낌이다. 혹은 예술과 체육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 중에 ‘디깅(digging)’을 통해서 준 전문가 수준의 사람들도 간지 난다. ‘디깅(digging)’. 사전적으로 파기, 채굴 등을 뜻하는 말로 라이프스타일의 범주로 들어오면 어떤 것에 꽤 집중하여 파고드는 것을 의미한다. 예체능을 대상으로 ‘디깅’하는 사람은 유독 확고한 취향을 보유하고 있는 것 같아서 멋지다. 나로선 관심은 있으나 타고난 DNA는 부족하고 무엇보다 조예가 깊지 않으며 몰입해 본적도 없는 영역이기에 더욱 그렇다.
조용하고 내향적인 ‘I’형과 더 친하다. “두 분이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하고 너무 잘 맞을 것 같으니 꼭 한 번 만나 보세요.” 활발하고 액티브하며 네트워킹을 즐기는, 소위 ‘극 E형’ 혹은 ‘인(인사이더)’와 친하게 지내보라며 소개를 자주 받는다. 막상 만나면 오히려 부담스럽다. 티키타카가 잘 되는 것 같으면서도 때론 상대의 하이텐션을 따라가기 버겁다. 에너지 소모가 많아 금방 지친다. “저는 000랑 친해요”라고 하면 “두 분이 친하시다고요?” 라며 사람들은 토끼 눈을 하며 되묻는다. 나와 캐릭터가 정 반대로 여성스럽고 차분하며 모두가 내향적인 사람으로 인지하고 있는 이들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욕도 할 줄 모르는 누가 봐도 ‘천사’인 성격을 가지거나 대놓고 ‘아싸(아웃사이더)’인 사람들이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내가 그들과 있으면 한껏 차분해지고 진중해진다. 그 순간만큼은 묵직하고 신뢰감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에너지를 잘 비축해놨다가 꼭 필요한 시점에 맞춰 발산하는 현명한 사람이랄까? 착각이라도 좋다.
루즈한 핏의 옷에 손이 간다. 중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손잡고 압구정 로데오에 쇼핑을 자주 갔다. 로데오는 멋쟁이 언니 오빠들과 잘나가는 브랜드 숍이 많아 지방에서 서울 나들이하듯이 분당에서 오갔다. 팀버랜드 워커, 디키즈 오버롤즈(멜빵바지)를 좋아했다. 당시 힙합이 유행이었는데 여자는 키가 최소 165cm 이상은 되어야 바지를 잔뜩 내려 입고 워커에 끝자락을 걸쳤을때 힙합의 느낌이 제대로 나온다. 160cm이 채 안 되는 키에 볼 빨간 사춘기 같은 모습으로 1.5배 이상 큰 사이즈의 옷들을 걸치고 있자니 힙합 필은 나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나를 보면 한숨을 푹푹 쉬어댔다. 누가 봐도 나에게는 적당한 기장감의 피트한 옷이 잘 어울렸다. 내가 봐도 그랬다. 머리로는 아는데 스몰인 나의 손은 자꾸 라지 사이즈를 매만진다. 성인이 되고 아줌마가 된 지금도 그렇다. 주말마다 루즈한 슬랙스나 운동복을 한껏 내려 입거나 박시한 후디를 뒤집어 쓴다. 환갑 넘은 엄마는 “넌 딱 붙는게 어울리는데 왜 자꾸 그렇게 입냐?” 고 매번 말한다. 30년 가까이 지속되는 동일한 잔소리를 흘려보낼 법도 하지만 곧바로 맞받아친다. “나도 이제 40이야. 아직도 옷 가지고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어야 되나? 그냥 두셔.”
나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끌리는 건 부러워서다. 내가 갖지 못한 성향과 특성을 가진 그들이 부럽다. 내가 노력해도 잘할 수 없는 것을 잘하는 그들에게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게다가 나와 다른 모습을 가진 그들이 생소하지만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관심이 생기고 더 알고 싶고 나도 그들에게 물들고 싶다는 바람과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관심 밖의 분야라면 어느 누가 얼마나 좋을 것을 가지고 있든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부러워한다는 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반대의 스타일을 계속 시도해 보는 것은 새로운 모습에 대한 욕구 때문이다. 늘 같은 모습과 자태는 존경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루하고 식상하다. “이것도 어울리고 저것도 어울리네” 다양한 매력을 추구하며 계속 시도한다면 새로운 스타일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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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것’이 아니라 ‘있지 않는 것을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을 허영, 요즘 말로 허세라고 한다. 내게는 지적 허영심, 문화적 허영심이 있다. 나만의 확고한 취향을 고집하고 다른 것에 마냥 무관심하거나 배타적이지 않다. 오히려 나의 허영심을 인정하고 내게 부족하고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 방법이 반대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그들이 즐기는 영화, 음악, 책 등의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다. 어쩌면...이게 반대가 끌리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