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미 Apr 07. 2024

빵 소리 귀 호강

“빵빵!” 자동차 경적 소리가 귀를 때린다. 1년 365일 귀가 찢어질 듯한 경적 소리에 시달리던 을지로 구둣방 주인 아저씨가 팻말을 내걸었다. “빵 소리 귀 찢어짐” 2012년부터 “제발 경적을 울리지 말아달라”고 호소했으니 그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버스 안에서 그 팻말을 보며 남의 일마냥 마냥 웃기만 했었는데 직접 운전을 하다 보니 구둣방 아저씨의 고통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운전을 하다가 골목길에 들어가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때가 있다. 특히, 길에 차보다 사람이 많은 성수동, 홍대 같은 곳이 더욱 그렇다. 귀 양쪽에 이어폰을 꽂고 걷는 사람, 헨드폰에 온 시선이 가 있는 사람, 일행과 수다를 떠느라 정신 없는 사람들 모두 앞뒤에서 차가 오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사람 천지인 골목길에서는 자동차가 불청객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기라도 한다면? 모두가 놀라 쳐다볼 테니 일찌감치 포기하고 뒤에서 시속 10km 미만으로 서서히 따라간다. 차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다른 길로 방향을 틀거나 내 차가 방향을 바꿔 빠져나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사람들이 자칫 차에 부딪힐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조심해야 하는 건 운전자다. 차를 서서히 몰다가 도저히 안되겠으면 클랙션을 아주 살짝, 조심스럽게 눌러본다. “조심하세요. 잠깐 비켜 주시겠어요?” 주의, 당부 목적이다. 손바닥을 클랙션에 가져갔다가 닿을 듯 말 듯 다시 떼어냈다가 누를 듯 말 듯 수십 번 고민하면서 ‘잘못 눌렀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약하게 말이다. 그러자 차 앞에 겨우 멈춰 선 사람이 나를 노려본다. 저만치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까지 차로 향한다. 마치 인도에 차가 덮치기라도 한 것처럼 도대체 왜 나에게 빵빵거리냐는 표정으로 말이다. “빵!!빵빵” 화가 나서 클랙션을 주먹으로 내려친 것도 아닌데 억울하다.


자동차 경적은 운전을 하다가 중요한 시점에 사용하게 되는 의사소통 장치다. 물론 자제하는 게 미덕이겠지만 불가피한 상황이 있다. 자동차간 충돌 위험이 있을 때, 사람들이 자동차를 인지하지 못해 사고 가능성이 있을 때, 고속도로에서 졸음 운전하는 주변 차를 깨우는 데도 경적은 아낌없이 쓰인다. 경적을 울리는 상황의 경중이나 횟수는 개인적인 판단이고 때마다 경적의 의미도 다르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필요할 때 제대로 인지되는 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자주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다면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맞게 소리를 다양하게 만들어 보면 어떨까?


‘비켜주세요’와 같은 요청은 부드러운 소리나 멜로디로, 경고성 메시지는 임팩트 있게 빵!, 혹은 사람의 육성을 넣어 직접 말해주는 거다. “조심하세요!” 사람들이 잠 자는 밤에는 낮보다 조용하면 좋겠지만 위험요소가 더 많기에 소리가 너무 작아서도 안 된다. 빵! 보다는 삐? 혹은 경적소리와 함께 사이키 조명? 사실 모든 TPO를 고려해서 소리를 만든다면 대혼란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예 모든 경적을 사람 목소리로 대체 하는 거다. “거기 좀 비켜주세요.” "위험하니 끼어들지 마세요" 이렇게 하다간 거리의 육두문자가 울려 퍼지고 패싸움이 일어나려나.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것처럼 부드러운 경적 소리에는 온화하게 반응하고 강력한 소리에는 경각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소리로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고 서로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자동차 경적 소리를 따졌다고 삼단봉으로 위협하거나 보복 운전 같은 삭막한 일들이 줄어들 수도 있다. 짜증과 화가 가득한 시끄러운 빵 소리에서 벗어나 을지로 구둣방 앞에 “빵 소리 좋아요“,”빵 소리 귀 호강“ 이라는 새로운 팻말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꼭 필요할 때, 조금 더 신중하게 경적을 사용한다면 더 없이 좋겠다. 내가 기분 나쁘면 상대도 그러할 것이라는 배려의 마음으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반대가 끌리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