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미 May 31. 2024

클럽라운지 인턴, 대통령을 만나다.

호텔 인턴십 이야기(1)

호텔에서 첫 인턴은 대학 3학년 겨울 방학. A그룹에서 운영하는 특급호텔의 클럽 라운지였다. (특급 호텔은 일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서비스와 편의 시설을 제공하는 호텔을 의미하고, 보통 가장 높은 등급의인 5성급 호텔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됨) 클럽 라운지는 클럽층, 클럽 라운지 이용 혜택이 포함된 객실을 예약한 고객의 전용 공간으로 대개 고층에 위치하며 간단한 식, 음료와 주류가 제공된다. 고객은 클럽 라운지의 티타임, 해피 아워 등의 시간에 맞춰 방문하면 간식, 음료, 주류 등을 즐길 수 있다. 전용 체크인, 체크아웃 센터, 별도 미팅 룸 이용, 컨시어지 서비스 등의 하이엔드 서비스도 제공된다. 주로 다수의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하거나 프라이빗하게 호텔을 이용하고자 하는 고객들이 많이 찾는다. 이를테면 기업의 리더나 임원, 대사, 주지사, 스위트 투숙객, 유명 작가, 예술가, 운동선수 등이다. 

처음 클럽 라운지에 근무 배정을 받았을 때 많이 아쉬웠다. 아, 컨시어지 업무를 경험하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컨시어지는 보다 전문적인 응대 스킬이 필요하고 호텔 전반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시니어 레벨 이상이나 할 수 있는 업무였다. 고로 인턴이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업무는 아니었다. 하지만 클럽 라운지에서 근무하는 두 달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고객 응대와 간소화된 레스토랑 업무가 동시에 이뤄져서 기본 업무들 만으로도 벌써 호텔리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손님이 이용한 접시를 치우거나 테이블을 닦는 일, 정리된 테이블에 식기를 순서에 맞게 세팅하는 일, 고객을 자리에 에스코트하고 음료 주문을 받는 일, 각국 대사의 미팅이 있을 때는 회의실에 국기를 세팅하고 테이블에 지문이 보이지 않게 정비하는 일까지 인턴의 몫이었다. 

무엇보다 클럽 라운지에는 사적인 공간을 선호하는 유명인사들이 있었다. 인턴 근무 당시, 이ㅇㅇ 대통령, TV를 켜면 나오는 드라마 주인공을 눈앞에서 수없이 마주쳤다. 정부 및 기업 VIP, 연예인은 물론 글로벌 스포츠 스타까지! 유명인사들과 VIP 들이 방문하기 때문에 컨시어지만큼이나 세심한 서비스가 필요한 곳이었다. 전문적인 응대를 위해 고객의 이름을 기억하고 라운지 입장 시마다 이름을 불러 드리고 고객의 특별한 기호(식습관, 선호하는 자리 등)를 파악해 두는 것은 기본이다. 일례로 유명 스포츠 스타 박ㅇㅇ 선수에게는 아침마다 따뜻한 커피 대신 얼음 없는 미지근한 사과주스를, 신문은 뉴욕 타임스를 준비해 두는 것이다. 프런트 오피스(현장)의 직원들은 스케줄 근무이기 때문에 본인이 근무하지 않았던 시간에 라운지에 방문한 고객은 알지 못한다. 다음날 출근해서 처음 본 고객이 입장하면 이름을 확인하고 외운다. 그리고 다른 직원이 남겨둔 고객의 프로파일을 체크한다. “식기를 왼쪽에 두고 사용하심”, “라테에 설탕 3스푼”, “계란은 항상 하드보일드로 드심” “오후 3시에 미팅룸 예약되어 있음” 등 고객의 특별한 기호, 니즈 등이 메모되어 있어 직원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내용이다. 간혹,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블랙 컨슈머로 추정되는 고객들에 대한 코멘트나 대외비 정보도 메모가 되어 있다. 당연히, 고객의 개인 정보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유니폼을 입고 현장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일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고객의 니즈를 사전에 파악하고 맞춤 서비스 혹은 고객이 기대하는 것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이미 레끌레도어 배지를 획득한 전문가가 된 기분이었다. 게다가 머리에 포마드 젤을 발라 잔머리 한 올 없이 무결점 그루밍을 유지하면 일시적으로 굽은 허리까지 펴졌다. 유니폼과 곧은 자세에서 오는 자신감도 한몫했다. 다만스케줄 근무로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생각보다 금방 질려버리고 말았다누구보다 빨리 지루해하는 나의 습성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나. 고작 인턴 두 달 하고 질려버렸으니 말 다 했다. 이걸 매일 하라고? 손님만 다를 뿐 매일 똑같은 답변과 유사한 응대를 하는 건 AI와 다를 바 없었다. 고객의 요청사항이나 질문의 패턴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근처에 맛있는 한식 레스토랑이 어디예요?” “가족 선물로 어떤 걸 사면 좋을까요?” 등이다. 물론 성실하게 수십 년 같은 일을 하시는 전문가나 구루들도 많지만 나보고 그리 하라면, 절레절레 다. 막상 인턴으로 현장 업무를 경험하고 보니 컨시어지레끌레도어 모두 남의 이야기였다그래도 여전히 호텔리어는 되고 싶었다.  

작가의 이전글 "왜 하필 호텔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