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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국향 Jul 10. 2023

지금은 나를 비추는 시간이지

 60대 아직 늦지 않았다.

제주의 가을은 귤밭들이 이쁘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그린 색에 주황이 주렁주렁 달려서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듯 손사래를 칩니다. 일찍 익은 극조생노지감귤은 주인을 찾아 떠납니다. 이제부터 바쁜 계절이 오고 있습니다. 오른쪽 물줄기를 타고 묵직하게 아파지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암튼 아프네요. 내일은 병원엘 가야 하나 고민을 해봐야겠어요. 이제 바쁜 계절이 오고 있는데 아프면 곤란하니까요.


요즘은 나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나에게 나를 비춰보고 있는 중이라고 해야 할까요?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스스로 만족하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비춰보게 되는 거예요. 혹시 잊고 있는 것은 없는지, 외면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이 구석 저 구석을 들여다봅니다.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듯이 내 안에서 끄집어내지 못한 나를 이리저리 찾아봅니다.


봄부터 시작한 글을 아직도 마무리하지 못한 것은 욕심이 과해서일까요? 마음이 급해집니다.


하나라도 빨리 눈앞에 완성된 책을 보고 싶어서입니다. 한 더 하자하면서 하지 못하는 게으름은 세탁기에 돌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뭔가 오물이 묻어있는 것 같아서 닦고 싶고, 빨고 싶지만 버리지는 못하겠어요. 아직은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고 기대를 하고 있다는 증거이죠. 아침이면 열심히 준비를 하고 나갑니다. 노트북과 책을 가지고 나가면서 기대를 하고 나가죠.


오늘은 카페에 가서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요. 하지만 두머니물농원이 그렇게 쉽게 일이 끝나지가 않아요. 그렇게 시간이 가고 또 하루를 보내버리게 됩니다. 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올라오는 것도 같고, 그래서 화가 납니다. 하루를 그렇게 마구 보내고 있어서 말입니다.


지난달에 동생과 한라산 등반을 했습니다. 무척 가고 싶었는데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하지만 기회가 왔죠. 남동생이랑 성판악으로 올라갔습니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새벽 5시 30분에 등반을 하는데 많은 이들이 열심히 시작을 하네요.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 거죠.


많이 힘들었는데 앞만 보고 올라갔습니다. 멀리 있는 정상을 보니 주저앉을 것 같아서 눈앞에 있는 길만 보자 하면서 눈앞에 놓인 길만 보고 올라갔습니다. 이것이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목표를 정해놓았다면 한발 한발 눈앞에 있는 길만 보고 걸어라라고 말이죠. 멀리 서 있는 정상을 보면 두려움이 너를 덮칠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되니 너는 눈앞에 있는 돌부리만 조심하면서 걸어가거라 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한발 한발 옮기다 보니 정상에 다다랐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하루를 잘 살아내면 되겠다 싶었어요. 나에게 주어진 시간, 주어진 하루를 모으면 언젠가는 도착지점에 깃발을 꽂을 수 있으리라 확신하네요. 한라산 등반으로 백록담에서 나를 비춰보고, 산 위에 있는 구름에도 나를 비춰봤습니다.


아무나 볼 수 있는 백록담이 아니라고 했는데 난 그 아무나가 아니었네요. 너무 설레어서 자세히 보지도 못해 아쉬웠는데 사진으로 남겨서 자세히 보네요.  그 아무나가 아닌 나는 요즘의 나를 들여다보느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새벽이면 살짝 손끝이 시리다 할 정도의 날씨에 감사하고, 더운 여름 잘 보낼 수 있어서 더 감사했던 시간들. 이제 두 달하고 11일이 남았는데 많은 기대를 합니다. 아직 세워 놓은 계획과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가 완성했다는, 달성했다는 싸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온 시간이었습니다. 신나게 즐거운 시간을 즐겨봤어요.


한국에 온 이후로 요즘같이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늘 긴장하면서 살아왔었어요. 남들은 모르지만 나만 아는 긴장감. 하지만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젠 알아버렸네요. 자꾸 나를 들여다보니 보이고 알아지네요. 앞으로는 그렇게 살 것 같아요. 긴장하지 말고 적당히 재미나게 살면서 자꾸 내 안에 있는 거울에 나를 비추면서 살고 싶은 데로 살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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