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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Jul 19. 2021

서른 즈음에 - 영화 '나의 서른에게'

 어떤 책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깊은 무력감을 억압한 사람들이 특별히 활동적이고 분주하다는 사실이다. 과잉활동은 극단적으로 허무해진 삶에 대한 반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타인과 사회의 수많은 요구들에 대응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시간에 쫓기는 듯이 살고 있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을 받고 그러다 겪게 되는 신경질적인 자신과, 무기력, 우울과 같은 긴장상태는 이런 삶에 대한 반발일 것이다. ‘나의 서른에게’라는 영화는 서른 즈음에 분명 무언가를 분주하게 해내고 있지만 텅 비어 버리고 있는 것 같은 감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 영화다.


 주인공 ‘임약군’은 괜찮은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6시 30분. 아침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먼저 일어난다. 양치질과 세수를 재빠르게 끝낸 뒤 옷을 고르면서 오늘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곤 간단한 아침식사와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 영화 도입부에서 편집의 속도만큼 그녀의 시간도 어지럽게 날아가 버린다.


 그렇게 출근한 회사에서 화장품 광고 모델이 주인공을 몰아세운다.

“난 바빠요. 어제도 새벽 4시까지 영화 촬영하고 2시간 잤어요. 오늘은 지면 광고 촬영이랑 리허설도 있고요. 내 시간은 소중해요. 한가한 당신들이랑 다르다고요.”


 ‘임약군’은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목적을 위해, 자발적이 아닌 규격화된 일정에 의해 적게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또한, 고객의 시간이 그녀의 시간보다 언제나 소중했고 시간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간은 분명 흐르고 있는데 그 시간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광고모델은 행사를 할 기분이 아니라며 일방적으로 취소를 통보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반드시 상냥해야 했고 솔선수범도 갖추어야 했다. 감정까지도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그녀에게 기대하는 바 대로 행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자신의 것을 표현할 수 없는 시간과 감정들 속에서 무엇을 채우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 분명, 그녀의 머릿속에선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상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도움을 주려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로 가시를 세우기 시작한다.


“그만해! 내가 알아서 할게”


 수많은 요구들을 누구보다도 잘 대응했던 그녀는 또래보다 회사에서 높은 자리를 얻게 된다. 맡은 책임이 더 늘어나면서 여유는 점점 더 사라진다. 여유가 없는 삶에서 관계는 짐이 되었고 주변 관계들이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상황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느끼지만 스스로 삶을 잘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더욱 몰아붙인다.


 일에 대한 과도한 열정은 허무해진 삶에 대한 깊은 불안감에 쫓기고 있다는 반응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무의식적 소망이  행동 바탕에 깔려 있는 원인이때문이다. 물론 영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상이 무너지고 관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직감하고 있다면 되돌아봐야 할 순간이 왔음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에서의 노랫말처럼 기억 속에 무얼 채우며 살고 있는지, 아니면 있는 기억조차도 비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이 영화를 한번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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