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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사 key Aug 14. 2020

07. 우리 반 활동사진. 도대체 어느 별에 있을까?

“우리 선생님 정말 최고신 것 같아. 매일매일 아이들 활동사진 밴드에 올려주시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도 간략하게 적어주신다니깐. 유치원에서나 가능한 일인 줄 알았는데, 정말 세심하셔.”
“우리 선생님은 주마다 클래스팅에, 아이들하고의 추억 영상을 올려주시는 거 있지? 대단하지 않아? 정말 감동이야.”     
 오랜만에 나간 유치원 반 모임에서 듣게 된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들.
 은율엄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학교 홈페이지 우리 반 사진첩을 클릭한다. ‘비어 있습니다’. 이번엔 선생님이 알림장을 올려주시는 아이엠스쿨에 들어가 본다. 역시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혹시 나만 모르고 있나? 여기저기 더 찾아보지만 역시 없다.
 다음 날, 하굣길에 만난 같은 반 소하엄마에게 넌지시 말을 던져보았다.
 “혹시 선생님께서 우리 반 아이들 사진 어디에 올리시는지 아세요?”
 “어머, 사진 올려주시나요? 왜 우리 반은 사진이 없나 궁금했는데 어디 가면 볼 수 있어요?”
 “아뇨. 없는 게 맞나보네요. 전 혹시나 저만 모르고 있나 해서.”
 선생님이 그 많은 아이 상대하느라 바쁘실 거 모르지 않는다. 매일 사진 찍어 올려주길 바랄 만큼 생각 없는 엄마도 아니다. 그렇지만 엄마로서 학교에서의 은율이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많이는 바라지도 않는다. 한 달에 몇 장이라도 볼 수 있음 좋겠는데. 그렇다고 이런 걸 선생님께 말씀드릴 수도 없고. 다른 선생님에 비해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정성이 부족하신 거 아닐까? 아쉬운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고작 사진 한 장이라 말할지 몰라도 학부모에게 이건 사진 한 장이 아닙니다. 유난히 불투명한 벽이 느껴지는 학교 안에서, 우리 아이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몰래 들여다보고 싶은 건 모든 부모의 마음이지요. 닿지 않는 곳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그나마 떨칠 수 있는 건 그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엿보았을 때입니다. 학습 결과물, 사진, 동영상과 같은 매개를 통해 교실 안에 들어갈 수 없는 학부모는 내 아이가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하고 안도합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학부모와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넘쳐납니다. 유치원, 학원에서 수시로 제공되는 이러한 서비스는 이제 특별한 전략도 아니죠.

초기에는 젊고 변화를 꿈꾸는 몇몇 선생님이 중심이 되어 활동사진, 동영상을 탑재하며 학부모와의 상 방향 소통을 시도하였습니다. 이어 네이버 밴드, 클래스팅과 같은 다양한 플랫폼들이 교사 연수에 소개되는 등 학교 안 깊숙이 들어와 다양한 방식으로의 활용이 정착되었지요. 이는 이제 몰라서 사용하지 않는 교사는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교사에게도 이러한 학습활동의 공개는 분명 장점입니다.

첫째, 학부모와의 거리를 좁혀줍니다. 

학습활동에 대한 투명성을 보장하고 소통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와 친밀감을 쌓는 발판이 됩니다.

둘째, 학급의 한해살이 실적이 됩니다.

 다른 곳에 따로 정리해 두지 않아도 이맘때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 근거가 되어 묶여 쌓입니다. 필요한 때, 바로 사진과 활동내용을 가져다 사용할 수도 있지요.

 사실, 전 누구보다도 이러한 장점을 마음껏 누린 교사 중 한 명입니다. 6학년을 맡던 때입니다. 밴드에 매일 활동사진과 간단한 내용을 올렸으며, 오늘 우리 반에서 일어난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간략히 소개하기도 했지요. 기록으로 남기면 작은 이벤트도 큰 축제처럼 보입니다. 지인들의 SNS에 들어가 글을 읽을 때의 마음을 떠올린다면 어렵지 않게 짐작되리라 믿습니다. 학부모님들은 “6년 만에 이런 거 올려주시는 선생님 처음 만났다.”, “말도 잘 하지 않는 6학년이, 이리 해맑고 재밌게 학교 다니고 있었다니 안심이 된다.”, “우리 때랑은 너무도 달라진 교육내용과 환경에 부러움을 느낀다.” 등 긍정의 댓글들을 셀 수 없이 남겨주셨죠. 이러한 댓글은 제게 긍정적 피드백이 되어 더욱 교재연구에 매진하게 했고,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어떤 학년을 만나든 이러한 소통의 장을 만들었습니다.     

 몇 년 후, 1학년을 할 때였습니다. 언젠가부터 교육현장도 민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지요. 도가 넘는 민원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될 때도 있고요. 특히 그게 1학년이라면 말해 무엇할까요. 학교가 처음인 건 아이도, 학부모도 마찬가지거든요. 이러한 현실은 ‘동 학년 통일’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각자의 개성이 녹아든 교육관을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교가 될 법한 최소한의 행동은 통일하는 게 민원을 줄일 수 있단 씁쓸한 이유도 한몫했지요. 교사 개인번호 공개, 기념일 이벤트, 개인 준비물 구입, 받아쓰기나 그림일기의 시작 시기, 체험학습 간식 허용범위 등 학교 차원에서의 지침이 따로 없는 경우, 필요한 부분 회의를 거쳐 동 학년이 의견을 통일하지요. 아예 학년 차원에서의 통일된 안내장이 나가기도 합니다. 물론 학교, 학년, 공동체 구성원의 문화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옆 반은 이러던데 우리 반만 왜 이러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학교에서도 되도록 민감한 사항이나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경우는 통일을 권장하지요. 학년 통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통일된 학년의 방침은 학부모에게 혼란을 주지 않고, 교육 활동을 펼치는 교사에게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게 해주니까요.

입학 준비가 한창이던 2월. 회의 중 ‘아이들 사진 올리는 거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고 한 선생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저는 내심 ‘당연히 올려야죠’ 싶었는데 의외로 올리지 말자는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귀찮아서 그런가? 너무한데? 애들도 학부모님들도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런 여과 없는 말들이 제 머릿속을 어지럽혔습니다. 사진을 올리자 열심히 제 의견도 피력해 보았지요. 더 의아했던 건 반대 의견의 분들이 연륜, 인성 모든 면에서 저보다 훨씬 뛰어나신, 학급을 너무도 잘 꾸려가시는 분들이었다는 거지요. 결국, 전 설득을 당하고야 말았습니다.

사실, 사진을 올렸을 때의 부작용 또한 간과할 수만은 없지요.

첫째, 학부모를 민감하게 만듭니다. 

사진을 찍는 교사는 수업 집중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후다닥 버튼을 누르지요. 앨범 사진을 찍는 게 아니니깐요. 역할극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버튼 한 번. 간단하면서도 서로가 방해받지 않는 선을 지키죠. 설정과 같은 보여주기식 촬영을 하면 사진은 내실 있는 수업과 주객이 전도된 비교육적 연출일 뿐입니다. 교사는 모든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합니다. 하지만 사진은 찰나죠. 이렇게 찍힌 사진들 속에 유난히 특정 아이만 자주 찍힙니다. 혹은 내 아이가 나온 사진이 거의 없지요. 그런데 교사가 이런 걸 하나하나 고려하며 공평하게 사진을 찍고 있다면 수업의 1/3은 날리는 거짓 수업 중이라 보아야 합니다. 저도 제 아이 반 사진에 유독 가장자리에 앉은 우리 아이만 매번 잘리는 바람에 사진 볼 맛이 안 났던 경험이 있습니다. 막상 겪어보니 속상하긴 하더라고요.

교사는 사심 하나 없었다지만 그걸 본 학부모는 “선생님이 우리 아이만 미워하나?”, “쟤만 좋아하나?” 이런 생각을 충분히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아이는 집중 잘하다 하필 그 순간 기지개를 켜며 책상에 엎드렸습니다. 이 사진을 본 아이의 부모는 그때부터 걱정 시작입니다. ‘학교에서 자세가 바르지 않네?’, ‘집중력이 부족한가?’, 다른 학부모의 시선도 신경 쓰입니다. 산만한 내 아이가 일어서 있거나, 흥분한 모습이 자주 찍히면 (모두가 나처럼 자세히 내 아이를 볼 거란 학부모의 착각이지만요) 다른 엄마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학부모는 내 아이만 보니까요.

둘째, 개인정보 문제입니다.

간혹 내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개인 SNS나 카카오톡 프로필에 아이가 친구와 함께 찍힌 사진을 올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즘은 워낙 개인정보에 민감한지라 이로 인해 불쾌감을 토로하시는 학부모님들도 계십니다.

셋째, 학습권 침해 우려입니다.

교사가 자연스레 찍더라도 사진 촬영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집중이 흐트러지는 아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1학년의 특성까지 고려하여 그해, 결국 저는 처음으로 활동사진을 올리지 않는 한 해를 맞았습니다. 아쉬움도 있었으나 어떤 면에선 자유로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사진을 올리던 그 시간을 내일 아침 아이들이 오자마자 화면으로 읽을 아침편지를 쓴다거나, 다른 새로운 일을 하는 데 쓰게 되었지요.

학년이 끝나가던 때 저희는 다시 사진을 주제로 모였습니다. 올리지만 않았을 뿐,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아이들 사진을 꾸준히 모아두는 게 교사지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의견을 나누다 1년의 활동사진을 구글 드라이브에 넣고 마지막 알림장에 주소를 올렸습니다.    

- 친구와 함께 나온 사진은 절대 상대의 동의 없이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 주세요.
- 수업이 우선인 만큼 활동 중간중간 버튼을 눌렀을 뿐입니다.
  ‘우리 아이가 왜 자주 안 나오지?’, ‘왜 표정이 어둡지?’
  너무 많은 상상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라는 짤막한 안내와 함께요.     

 앞선 사례의 은율이 엄마는 저의 이야기기도 합니다. 올해 저희 아이반을 제외한 모든 반은 첫 등교부터 아이들 사진을 올려주셨거든요. 학교에서의 내 아이의 모습이 너무 궁금했는데 확인할 길이 없으니 저도 딱 저런 마음이 들더군요. 교사라는 사람도 이렇습니다. 상황을 다 알고 있어도 똑같더라고요. 대신 전, 이내 ‘이 시간 우리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을 위한 다른 쪽에 에너지를 사용하셨겠지.’라고 생각을 달리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금방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선생님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생각의 전환이었습니다.

“왜 홈페이지에 우리 반 사진만 없나요?” 따지는 게 옳지 않음은 우리 다 알고 있습니다.

어찌 바꿀 수 없는 거, 말하기도 멋쩍은 거, 그 일이 내 아이의 학교생활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면 내 마음을 고쳐먹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마음속 서운함은 한 번 쭈욱 흘러가게 두세요. 그리고 언젠가 사진을 올려주시는 선생님을 만나면, 그 해엔 또 그것대로 맘껏 누리면 됩니다. 내 아이 활동사진이 어느 별에도 없는 건 아닙니다. 내 눈에 보이는 사진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선생님 마음이 곧 별이고, 그 안의 백 개의 폴더에서 내 아이의 추억이 빛나고 있다면 그거면 되는 거지요.     


         번째 아이가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을 ,

    웃음이  개의 조각으로 부서져 요정들이 탄생했다.

                             - 피터팬 中에서 -     


 아이들의 웃음은 무엇에도 담기지 않는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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