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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혁 Mar 26. 2023

#6 후회로 요리한 식사

후회하게 되는 게 싫어서, 노력하는 사람

'후회'는 양날의 검처럼 보인다.


'후회'에 빠져, 뒤돌아보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족쇄와 같고,

'후회'를 딛고, 앞으로 나가는 사람에게는 나침반과 같다.


후회를 대하는 방식에 따라서, 이는 족쇄가 되기도,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나는 무엇을 후회하는가?

나는 사실 후회를 많이 한다. 주로 족쇄보다는 나침반의 형태로 후회를 써먹지만, 늘 후회와 반성을 반복하며 성장해 왔다.


그렇다면, 무엇을 후회하는가?


나는 내가 바꿀 수 있었던 것을 바꾸지 못했던 것에 대해 후회한다.


'내가 더 노력했다면, 더 실력이 있었다면, 더 경험이 많았다면,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런 요소들이 나에게는 후회라고 불린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굉장히 우울한 형태의 후회와 좌절이라고들 생각하는데, 그런 느낌은 아니다. 


그런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존재한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나는 단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으로써 후회를 대할 뿐이다.


하지만, 모든 후회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후회는 '쉽게 포기한 것에 대한 후회''무책임했던 내 행동에 대한 후회'이다.


이 두 가지는 절대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순간을 '훗날 후회하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한 편으로는 이 순간을 '영원히 후회로 남기게 될까 봐 그 두려움'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나를 믿어주던 사람의 신뢰를 깨뜨리는 '무책임'

먼 미래의 관점에서는 지금 모든 순간이 하나의 점처럼 보일 것 같다.


마치 10년 전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듯이


하지만 10년도 넘은 일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나의 '무책임'한 행동이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초등학교 6학년때의 일이다.


그때, 방과 후에 진행하는 수학 관련 창의 활동이 있었다.


그 활동의 담당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동영상 제작을 맡겼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내가 원해서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나는 무책임하게 그 일을 기간이 지났음에도 제출하지 않았다. 까먹어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딱히 담당 선생님께서는 별다른 조치나 꾸중을 하시지 않았고, 며칠 새에 그걸 잊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께서 따로 부르셨다. 


"너 OO 선생님한테 동영상 만들어서 드린다고 약속했다며, 그런데 왜 안 한 거야? 네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행동해서, 내가 대신 다 만들어드렸다."


나는 정말 그때, 담임 선생님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매우 실망한 표정에 경멸을 약간 섞어놓은 표정이었는데, 정말 잊히지 않는다.


내 기억에 왜곡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 당시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평소 정말 잘 챙겨주시고, 기대해 주시던 분이셨는데, 나에 대한 신뢰를 내가 깨뜨린 일은 지금 생각해도 후회가 된다. 


그 이후로, 그 정도로 무책임한 행동을 하며 살아가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포기하면 편할까?

슬램덩크 영화가 요즘 꽤나 인기였다. 


수많은 명장면들이 있지만, '포기'와 관련된 대사가 있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예요"

"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참 멋진 대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강백호는 산왕전에서, 부상을 당하고 뱉은 유명한 대사가 있다.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였을 때였나요? 나는 지금입니다!"


이 대사들 모두, 현재에 충실하고 지금 이 순간을 후회로 남기지 않기 위해, 포기를 거부하는 모습이다. 


포기하면, 그 순간에는 편하지만 나중에는 후회하게 된다.


모든 일이 그렇지는 않지만, 내가 간절히 원했거나 필요했던 것이라면,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 일들이 있다. 또, 그렇게 원하던 일이 아닐지라도, 지나 보면 '더 해볼걸' 하는 생각이 드는 일도 있다.


내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후회할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포기가 필요한 순간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잡을 수 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더라

'그때의 최선이었어'


과연 그랬을까 싶다.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을 텐데,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쉽게 한계를 단정 짓고, 자만했는가.


나에게 있어,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은 포기와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최선'은 정말 기준치가 높다. 


진정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돌아보면 없다고 생각한다.


결과가 아무리 좋았다고 한들, '단 한순간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노력으로 달성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난 더 놀라운 것을 이뤄내고 싶다. 


지금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 합리화는 나의 적이고, 내 한계를 규정짓는다. 


내가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소중한 것을 잃지 않으면서, 현명하게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후회를 요리하기

'무책임', '포기', '최선'에 대해 후회한다고 했다.


이것들을 잘 요리하면, 어떤 요리가 나올지 궁금하다.


단지 후회에서 머무른다면, 그 사람은 그 순간을 언젠가 또 후회할 것이다.


이제 지난 후회를 요리해, 끝내주는 식사 한 상을 차려보고 싶다.


이 음식을 먹고 나서부터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후회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나에겐 이 글과, 지금 이 순간이 후회로 요리한 애피타이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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