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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수 Dec 25. 2023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신인류 vs 꼰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챙길 것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나만 생각하면 된다. 나한테만 집중하면 된다. '내 인생을 어떻게 빛낼까?'에 집중하면 된다. 내 인생을 빛 낼 수 있는 자격증을 따고, 친구를 만나고, 나에게 집중하면 된다. 물론 집안 형편에 따라 집안 사정을 챙겨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우선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게 되면 챙길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물론 지금은 삶의 방식이 다양하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한국사회에서는 비난을 받곤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 직장에 들어가면 결혼을 하기를 바라고 결혼을 하고 나면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고 묻는다. 이런 과정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벗어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한국사회는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물어보는 것에 주저가 없다. 


학생한테는 성적을 물어보고, 대학생한테는 성적, 이성친구, 직장에 대해서 묻는다. 직장을 다니면 언제 결혼할 건지를 물어본다. 결혼하고 나면 아기는 언제 낳을 거냐고 묻는다. 남의 인생에 '감 놔라 대추 놔라!'라고  참견하는 얘기를 하는데에 주저함이 없다. 성인이 된 조카가 어엿한 인격체라는 걸 잊는 기성세대가 많은 것 같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말이다.


물론 점점 이런 어른이 줄어들기는 하는 것 같다. 이전에 볼 수 없던 신인류의 출현 때문에 말이다. 신인류, MZ는 상대방이 어른이라도 대체적으로 거침없이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전 같으면 '되발아 졌다' 또는 '버르장머리가 없다' 라고 매도 됐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신인류의 개성이라고 이해해 주는 분위기가 많다. (물론 나의 생각이다.) 




프라이버시에 전혀 개의치 않는 최강 꼰대와 누구보다 더 독특하고 자기중심적인 최강 신인류의 싸움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날의 다툼은 이랬다. 꼰대와 신인류의 평소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꼰대는 어른이라고 평소에 신인류의 프라이버시에 참견하는데 있어 전혀 게의치 않았다. 신인류는 그것이 평소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신인류는 평소에 집안 어른이라 꾹꾹 감정을 참고 있었다. 격전이 벌어진 건 '인사'에서 비롯됐다.


평소에 꼰대 어른은 인사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날도 꼰대가 볼 때는 신인류의 인사예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꼰대는 신인류를 불러 새웠다. 인사를 '다시 하라'고 했고 하지 말아야 할 얘기를 하고 말았다. 그냥 '인사를 잘하라'고 타이른 것이 아니라, 평소에 쌓였던 감정 때문이었는지 처음부터 막말로 시작했다. "XX가 없다. 뭘 보고 배웠냐?"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날은 신인류도 참지 않았다. 막말을 하지 말라고 대들었다. 그 대꾸로 둘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신인류는 존댓말은 쓰고 있었지만, 꼰대의 말에 전혀 뒤로 물러나지도 논리에 어긋나지도 않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그러면 그럴수록 꼰대 어른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평소 다혈질인 꼰대는 화가 나서 손찌검을 하려고 손을 들었고 옆에서 보고 있던 신인류의 부모가 등판한다. 


신인류의 부모는 다혈질 꼰대의 손윗사람이어서 꼰대는 뒤로 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는 "자신의 집에 오지 말아라"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신인류도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비난을 받았지만, 꼰대는 지지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평상시에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한테는 어른대접을 받으면서 그들한테 해주는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해주는 것이 없어도 '말로 천냥빚도 갚는다'라고 했는데, 그는 평상시에 '말로 천냥빚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신인류와 꼰대의 전쟁을 많은 사람이 목격을 했는데, 다들 속으로 신인류에게 응원을 보냈다.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성인( 人)이 되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면 성인(成人:자라서 어른이  사람보통  19 이상의 남녀를 이른다.)은 되지만, 성인( 人:지혜와 덕이 매우 뛰어나 길이 우러러 본받을 만한 사람.)이 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우리 세대의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 세대는 조금 억울한 면은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말하는 것은 무조건 잘 들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어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배웠다. 참된 어른도 많았지만, 못된 어른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이제 합리적이지 않은 건 우리 세대에서 바꾸는 게 맞다. 우리가 괜찮은 어른이 된다면, 젊은 세대가 보는 어른의 정의가 '꼰대'가 아니라 성인(人)이 되지 않을 거? 


그리고 신인류들도 개성이라는 이유로 손윗사람들한테 예의 없이 대하는 것도 올바르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내 아이는 어디 가서도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하기를 바란다. 그래도 말하는 방식은 중요하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식으로 말하냐에 따라 논리적인 반박이 될 수도 있고 버릇없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주장을 얘기할 때는 조금 더 예의를 갖추고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머릿속에 생각을 정리하고 얘기하면 좋을 것 같다. 지금은 머릿속에 생각을 집어넣어서 정리를 하기 전에 이미 입 밖으로 생각을 그대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세대를 구분해서 다른 종이라고 치부해 버리지 말고 다 같이 공존하는 삶을 지향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가 든다고 다 꼰대는 아니다!' 그리고 '어리다고 다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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