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_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재수 생활이 끝났다.
‘진짜 공부 끝이다! 더 이상 안 한다!!!’
E대 논술이 끝났다. 수능이 끝나고 치열하게 해야만 했던 논술 공부도 끝났다.
이제 더 이상 해야 할 논술 시험이 없기 때문에 자유의 몸이나 다름 없었다.
“내가 입학 전까지 공부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E대를 나오며 다짐했다.
당연히 대학교에 가면 공부를 해야 하지만, 그 전까지 공부하는 일은 없다고 확신하며 말했다.
“이제 늦잠도 자고, 마음껏 게임도 하고, 놀아보자!”
말은 굉장히 신나게 말하지만, 마음은 왠지 시원섭섭하다.
수능을 보고 논술까지 끝나면 굉장히 홀가분 할 줄 알았는데, 뭔가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절대 3수는 하지 말자!!”
재수를 하면서 확실히 성적이 올랐고, 그 희열감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하면 성적이 더 올라갈거라는 생각은 있지만 감히 실천할 자신이 없었다.
재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했지만, 삼수는 이미 한 번 겪어본 길을 다시 가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 질 지, 어떤 스트레스를 받을 지, 어떤 공부를 할 지 짐작가기 때문에 무섭다.
게다가 현실적인 문제로 돈을 꼽을 수 있다.
지금까지 재수하면서 들어간 돈이 4년간 대학교 등록금을 충분히 내고 남는 금액이다. 만약 다시 공부하면 이만한 돈이 또 들어갈 것이었다.
물론, 현재 성적이라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어느 정도 내는 돈이 적겠지만 그래도 다시 1년을 공부하는 사실이 끔찍할 따름이었다.
“이번에는 짐 정리할 게 없어서 다행이다.”
E대에서 바로 학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짐 정리를 시작했다.
이 곳에 짐을 보낼 때, 여유롭게 입을 외투 한 벌을 비롯해서 정말 간소하게 보냈다.
덕분에 택배 박스 하나로 모든 짐 정리를 마쳤고, 학사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택배 발송을 신청하고 나왔다.
“집에 가자.”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서울에 왔다는 생각에 핫한 클럽을 찾아보고, 밤새 놀기 위해 방법을 찾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 필요 없고, 그냥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외고 기숙사 생활을 위해 3년간 타지 생활을 해야 했고, 재수기숙학원에 있기 위해 1년간 밖에서 생활하다보니 집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물론 4년간 아예 집에 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있는 집이 최고였다.
게다가 약 열흘 간의 공부로 너무 힘들어 놀 기운도 없었다.
E대의 논술이 오전에 잡혀 있어서, 짐을 정리하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점심 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3시였다.
집으로 향하는 차표를 예약하니 여유 시간이 20분 정도 있어, 급히 터미널에 있는 프랜차이즈 햄버거 매장에서 간단히 배를 채우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솔직히 실감 나질 않는다.’
버스 창 밖 너머의 풍경을 보며 1년간 기숙학원에서 지내면서 있었던 일들을 회상했다.
정말 그 곳은 하루하루의 시간이 무진장 안 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고 되돌아보면 하는 것 없이 시간이 엄청 빨리 지나 있어서 빨리 정신차리고 공부해야 했다.
기숙학원에는 무조건 들어가야 하는 수업들이 정해져 있어 빠질 수 없고, 과제도 해야 한다. 여기에 내가 부족한 공부도 해야 하고, 학원에서 매일 보는 영단어와 테스트도 해야 했다.
가끔씩 수업을 빠지고 싶고, 학원 테스트를 왜 해야 하는지 알 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거를 강제로라도 했기에 내가 부족한 공부만 하더라도 다른 과목들의 성적이 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매 달 보는 모의고사에서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멘탈이 나갔다. 성적이 떨어지면 떨어졌다고, 성적이 잘 나왔다 하더라도 욕심이 생겨 왜 이 것 밖에 나오지 않았나 자책할 때도 있었다.
학원 초반에는 정말 기숙학원을 나가 통학 학원에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는데, 지나고보니 스스로에 대해서 너무도 모른 채 그냥 기숙학원에서 생활과 공부가 힘드니까 그냥 나오고 싶은 철 없는 판단이었다.
게다가 인간관계로 인해 여러가지 사건들을 겪고, 학원 규칙을 어겨 근신도 서 보았다.
이렇게 생활하다가는 기숙학원에서 돈과 시간을 버린 채 1년이 그냥 지나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는 진짜 정신 차리고 똑바로 생활했다.
“만약 처음부터 밖에서 공부했다면....”
문득 이런 가정으로 생각해보았다.
분명 1, 2주는 계획을 세워 공부하다가 점점 게을러 졌을 것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내가 제대로 공부하는 지 눈치를 보고, 모의고사 성적이 안 나왔을 때마다 밤새 술 마시고 놀고 이로 인해 부모님과 계속 싸웠을 것 같았다.
반대로 기숙학원에서는 부모님 눈치를 볼 일이 없어 마음이 좀 편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풀 방법도 마땅치 않으니 그냥 속으로 삭히다가 정기외출 때 나와서 6월 평가원 모의고사 전까지는 신나게 놀았다. 그렇지만 이 때부터는 점점 수시와 수능에 대한 압박감이 체감되어 정기외출을 나와서 조금씩 공부를 했다.
재수를 선택할 때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말이 재수를 하더라도 원하는 대학교에 갈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수능을 보고 정시로 대학교를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다면 하기 위해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도전하고 싶은 심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부모님도 나를 기숙학원에 보내 재수를 시켰던 것 같다. 더불어 외고를 다녔던 만큼 공부 머리가 있고, 가능성도 보였던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대전 터미널. 대전 터미널에 곧 도착합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하차 준비를 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벌써 대전 터미널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여기에선 집이나 부모님 가게까지는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되기 때문에 캐리어를 끌고 움직였다.
가게에 도착하니 부모님은 저녁 식사 시간 대로 영업 준비를 바쁘게 준비하고 있었다.
“어서오.... 어? 아들?!”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동안 고생했던 기억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며 그저 행복한 기억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가게에 손님들이 있었지만, 상관없이 조용히 엄마와 아빠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꼭 안았다.
“그래. 아들. 고생했어.”
“같다 오느라고 수고했다.”
부모님은 몇 마디 말과 함께 그냥 내 등을 토닥거리며 안아주었다.
"다녀왔습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나도 왜 이런지는 모른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대로 했다.
수능을 보았어도, 수능 후 논술 시험을 보았어도 끝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낯익은 부모님 얼굴을 보고 이 말을 건네자 이제서야 진짜 공부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