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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궐 Apr 22. 2024

기숙학원에 갈 지, 군대에 갈 지 결정하래.

63_N수를 한다고 모두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다.


집에 돌아온 뒤로 죽은 듯이 밀린 잠을 잤다.

잠 자고 일어나면 가볍게 배를 채우고, 다시 침대에 누워 핸드폰에 온 알람이나 메시지를 확인하고 다시 점을 자는 패턴이었다.


이렇게 3일을 보내고, 드디어 기숙학원의 같은 반 애들과 연락하기 시작했다.

주로 관심사는 어떻게 수능 성적이 나왔고, 논술을 잘 봤냐는 것이었다.


반 친구들이 모두 있는 단체방에서 성적을 말하기가 껄끄러워 그냥 평소 모의고사 성적보다는 잘 나왔다고 이야기하며, D대와 E대 논술을 응시했다고 했다. 기숙학원에서 지내면서 서로의 성적은 대충이나마 알고 있어 애들이 많이 축하해주었다.


이렇게 대화를 하다보니 중간에 기숙학원을 나가 독학학원을 다니거나 통학학원을 다니는 애들의 소식도 접할 수 있었다.


먼저 기숙학원에서 생활 패턴과 공부 습관을 다 잡았다고 독학기숙학원으로 간 태영이 형은 망했다.

중간에 기숙학원에서 완벽하게 숙지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강제성에 의해 나온 것이었고, 독학기숙학원에서는 최소한의 규칙만 있기 때문에 제대로 습관을 잡고 꾸준히 공부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특히, 9평을 보고 멘탈이 무너질 때 제대로 잡아줄 사람이 없어 한 달을 그냥 날렸다. 이렇게 시간을 흐지부지하게 보내며 공부하다가 작년 수능보다 못 본 상태로 수능최저점수도 하나도 맞추지 못해 논술 시험도 보지 못했다.


기숙학원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밖의 학원으로 간 윤성이는 공부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밖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자친구와 헤어져 멘탈 잡기가 힘들었다.


통학으로 학원을 바꾼 이유가 여자친구 때문에 헤어지자 더 이상 통학을 다닐 의미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다시 다른 기숙학원으로 간다고 부모님에게 말하기가 굉장히 껄끄러웠다. 


이렇게 두 달을 끙끙거리다가 집과 학원을 왔다갔다하며 공부는 뒷전으로 한 채 놀다가 부모님의 강제성에 다른 기숙학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곳에서도 몰래 연애하느라고 공부는 뒷전이었고, 그나마 강제로 수업을 들은 탓에 작년 수능 성적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나마 담배 때문에 다른 독학재수학원으로 옮긴 동준이는 성적을 꽤 올렸는데, 타 학원에서 적응하느라고 고생이 많았다. 그래도 밖에서 자유롭게 담배를 필 수 있어 스트레스가 있을 떄마다 즉각적으로 해소되어 공부할 수 있었고, 수능 성적이 괜찮게 나왔다고 한다.


가장 최악은 세영이였다. 또 다른 기숙학원으로 간 세영이는 절도라는 나쁜 손버릇을 그 곳에서도 고치지 못했고, 상당히 비싼 금액의 물품을 훔쳤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되어 고소가 들어가는 바람에 멘탈이 나간 채 수능을 아예 망쳤다.


이렇게 친하게 지냈던 애들의 소식을 들으니 반갑지만, 대부분 좋지 않은 소식이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만나서 올해 어떻게 공부했는지 자세히 들어보기로 한 사람이 있었다.


“진수야. 집에서 잘 쉬었어?”

“어. 그 동안 집에서 안 나가고 침대에 계속 누워 있었어. 너는?”

“나야. 평소와 똑같았지.”


중학교 동창인 종현이다.

나와 같이 기숙학원에서 공부하자며 꼬셨다가 정작 본인은 통학 학원으로 가 버린 배신자다.


그 때는 정말 마음이 상했지만, 그래도 친구인지라 연락을 끊지 않고 한 달에 한 번씩은 연락하며 생사 확인을 했다. 그리고 9월 평가원 모의고사 이후엔 정말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종현이와 잠깐 연락을 끊었다.


이후 논술 시험까지 끝나고 대전에 내려오자 종현이가 어떤 성적을 받았는지 궁금해 얼굴을 보게 되었다.

카페에서 만난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논술은 모르겠어. 합격하면 그냥 가는 거고, 정시로 가면 작년 9월보다는 좋은 데 갈 것 같아.”

“그게 대박이잖아. 작년 수능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데가 W대 였는데, 올해는 G대 정도 되는 거니까!”


종현이의 칭찬에 괜히 부끄러워졌다.

정말 엄청난 대박은 아니지만, 나름 성공한 재수였다.


보통 다시 수능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메디컬 계열의 대학교와 최상위 대학교들만 이야기한다.

게다가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성적이 잘 나왔다하더라도 수능에서 이 성적이 그대로 나온다는 보장이 없어 다시 수능 공부를 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수능 성적 대비 높은 성적 향상으로 좋은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너는 어떻게 됐어? 수시는 안 쓴다고 했고, 정시로 의학과에 갈 수 있냐?”

“어... 그게... 에휴.”


말을 꺼내자 종현이의 반응이 이상해, 결과가 좋지 않음을 눈치챘다.


“작년보다 떨어졌다. 그래서 군대를 가야하나 고민중이야.”


투덜거리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6월 평가원 모의고사 때까지 통학 학원을 다니며 철저하게 공부를 열심히 한 덕분에 성적이 올라 지방 의대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다. 아니러니하게도 이렇게 성적이 오를 수 있었던 건 게임이 컸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미친 듯이 공부를 했고, 보상으로 일요일에 게임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런데 이 루틴이 무너지게 된 계기가 7월 모의고사부터였다.


슬럼프에 빠지며 성적이 떨어졌는데, 이 원인을 공부에서 찾아야 했다. 그런데 종현이는 스트레스가 쌓여서 이를 풀면 된다는 생각에 주구장창 게임만 했다. 이렇게 모의고사 후 문제점 분석에 소홀하게 한 채 9월까지 시간을 보냈고, 정신차리고 게임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마음과 달리 실천이 어려웠다.


결국 공부와 게임 사이에 줄다리기하다가 수능을 응시했고, 나와 비슷한 성적을 받았다.

그렇지만 작년 대비 성적이 떨어졌으니 망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숙학원에 갈 지, 군대에 갈 지 결정하래.”


종현이의 부모님은 기숙학원에 가면 한 번 더 지원을 해준다고 해서 고민 중이었다.

어차피 군대는 갔다와야 해서 나쁘지 않는데, 공부에 대한 감을 잃지 않으려면 군대에 가서 어느 정도 공부를 해야 했다.


“군대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어차피 병역 의무를 피할 수 없으니 깔끔하게 해결하고 공부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리고 기숙학원에 간다해도 외출 나와서 게임을 멀리 하는 건 불가능하고.”

“흐음. 그러네. 잠깐, 군대에서 핸드폰 사용 가능하니까 그 것도 어렵지 않을까?”

“내가 다닌 기숙학원도 핸드폰은 줬어.”

“어렵다.”


올해 내가 기숙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종현이는 게임만 끊으면 이번 수능에서 충분히 의대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이 나올 거라 생각함과 게임만 안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인지, 게임 때문에 올해에도 망했다.

끝까지 종현이는 기숙학원과 군대 중 어느 것을 선택할 지 결정하지 못하다가, 나한테 3수를 해 볼 생각 없냐고 물었다.


“이번에 하면서 성적 많이 올랐잖아? 한 번 더 하면 한의대까지 노릴 수 있지 않을까?”


내 대답은 NO다. E대 논술을 끝나고 한 결심은 변함 없었다. 내가 한 번 더 공부를 한다고 더 성적이 잘 나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그 동안 들어가는 비용을 다시 부모님에게 부탁할 수 없었다.


그냥 지금 성적 나온 것으로 만족하기에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렇게 종현이와 만남을 마치고, 시간이 지나 수능 점수 발표 날짜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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