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_배운 게 공부 뿐이라서, 공부로 돈을 벌기 시작하다.
10분 뒤에 있을 수능 점수 확인을 앞두고 있지만 작년과 달리 떨리지 않는다.
그 때에는 망했을 거라 생각하고, 가채점도 하지 않아 내 점수가 어떻게 나올 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올해에는 가채점을 했고, 꾸준히 여러 학원 사이트에 들어가서 내 수능 원점수로 받을 수 있는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확인했다. 여기서 크게 바뀌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고요하면서 차분했다.
그리고 평가원 홈페이지에 성적이 게시되는 오전 9시가 되었다.
바로 들어가서 확인하려고 했지만, 동시에 몰려 접속이 느리자 30여분 뒤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았다.
“바뀐 게 없네.”
수능 가채점을 했을 때 나온 원점수와 예상 등급이 그대로 나왔다.
더불어 내 점수에 맞춰 표준점수와 백분위도 나왔다.
수학 등급이 딱 3등급 턱걸이로 걸려 아쉽지만 나중에 정시는 등급이 아닌 점수로 환산해서 지원하기에 괜찮다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수능 성적 화면을 캡쳐해서 담임 선생님에게 전달했다.
며칠 후 수시 발표가 있지만, 결정 난 게 아무것도 없어 정시까지 가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담임 선생님에게 보내자 나중에 정시 지원 시 해야 할 내용들을 받았다.
“이제 일하러 가자.”
얼마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수능과 논술 시험까지 끝나고 일주일은 눈치 보지 않고 푹 쉬며 놀았는데, 이제 집에서 지내는 것이 눈치보였다.
내년에는 대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라 학교 생활하며 쓸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1년간 재수한다고 부모님이 쓴 돈이 크기에 차마 대학교에 가니 용돈 달라고 손 벌리기 염치 없었다.
“선생님. 프린트 정리는 어떻게 됐나요?”
“네. 원장님. 각 반 별로 정리해서 선생님들 자리에 올려 두었습니다.”
“고생했어요. 그리고 수능 성적표 가져 왔어요?”
“네. 여기 있습니다.”
집 근처에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중형 학원에서 조교를 뽑고 있어, 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일주일 전부터 하고 있었다.
옛날에 중학교 다닐 때 내가 다녔던 학원이기도 했고, 원장님이 부모님과 친해 면접은 프리 패스였다.
수능 성적표를 가지고 온 이유는 어제 원장님은 겨울 방학 한정으로 중학생 임시 강사를 해 볼 생각이 있냐는 제안이 있었다. 아직 과목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올해 좋은 성적이 받았다는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들었고, 입시를 막 끝낸만큼 관련 공부에 대해서 다른 이들보다 수월하게 가르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면 시급이 크게 뛰어 오르기 때문에 이 제안을 생각하지 않고 바로 수락했다.
‘역시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모든 공부가 끝나자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진 공부를 안 하겠다고 결심했는데, 이렇게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 공부를 다시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그 동안 한 게 공부 뿐이라 공부로 돈을 버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 어쩔 수 없었다.
“오늘 수시 발표 날이었지?”
며칠 후, 기다리던 수시 발표가 이루어졌다.
B대, D대, E대에 논술 응시했었는데, 같은 날짜 & 같은 시간에 발표된다고 한다.
3개의 대학교에 지원한 학과들은 경쟁률도 나쁘지 않아 운이 좋으면 합격할 수 있다고 여기며, 시간이 되자 미리 적어둔 수험번호와 신상 정보를 합격자 발표 안내 창에 기입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버튼을 눌렀다.
“B대는 떨어졌네.”
수능 최저 점수 없이 논술을 볼 수 있었던 B대는 경쟁률이 굉장히 치열했고, 예비 번호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시험을 잘 봐서 합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학생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
“아, 진짜 아깝다....”
그 다음으로는 D대 합격자 발표를 확인했는데, 합격 예비 번호로 3번이 찍혀 있었다. 일주일 동안 정말 빡세게 집중하며 공부한 만큼,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D대는 인문계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고, 예비 번호로 합격한다해도 거의 1명 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내 번호까지 오는 건 로또와 같은 기적이라고 판단했다.
“E대가 붙으면 감사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마지막 남은 E대의 합격을 간절히 기도하며 조심스레 핸드폰 화면의 버튼을 눌렀다.
D대에서 예비 번호에 들어갈 정도로 논술을 잘 했기에 E대는 합격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졌다.
“아....”
화면을 보자 나도 모르게 탄식이 튀어나왔는데, E대는 예비 번호 없이 불합격이었다.
이렇게 논술 응시한 3개의 대학교는 모두 탈락되어 믿을 건 정시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미루어 두었던 실시간 정시예측 프로그램을 결제한다.
올해 다녔던 기숙학원의 담임 선생님이 정시 상담을 해주고 학원에서 만든 프로그램이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중복으로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함으로써 정확하게 경쟁률과 지원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럼 상담 신청 기간에 맞춰 신청하면 되겠다.”
정시 상담은 12월 말에 약 4일 정도 시간을 내어 진행한다고 전달 받았다.
나중에 상담 시간표가 뜨면 내가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체크하면 상담 신청이 완료 된다. 더불어 상담일의 3일 전까지 지원을 원하는 대학교와 학과를 보내야 담임 선생님이 확인하고, 내 성적으로 지원 가능한 지 확인하고 다른 대학교도 찾아 놓아 수월하게 상담할 수 있다고 한다.
정시 상담은 전화 상담과 방문 상담으로 신청할 수 있다.
원래 계획은 전화 상담을 하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학원에 찾아가고 싶다고 하여 방문 상담으로 결정되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화로 상담하는 것과 직접 방문해서 모니터를 보며 이야기하는 것에 있어서 차이가 크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의 일정을 미리 체크해두었고, 상담 신청 기간이 되자 미리 정확하게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정시 상담 신청을 완료할 수 있었다.
“정시 3장을 어디에 써야 하지?”
정시는 가 군, 나 군, 다 군. 3개로 각 대학교와 학과별로 지정되어 있다.
하나의 학교가 하나의 군에 모두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 2개의 군으로 나누어 배정되어 있기도 해서 눈치 싸움이 필요했다.
고민 되는 것 중 하나가 고등학교 때 학생생활기록부에 적은 진로 희망대로 영어영문 계열을 희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영어를 좋아하긴 하지만, 정말 이 것으로 공부해서 이 쪽으로 취업하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이었다.
끝까지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정말 상담 3일 전에, 담임 선생님에게 지원 희망 대학교와 학과를 보냈다. 그리고 상담 날짜가 되어 부모님과 함께 학원을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