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_지금 되돌아보면 좋은 선택이었다.
“이 주제는 사람의 심리를 표현한 것이 핵심으로, 주관적인 생각으로 쓰면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논술 강사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머리로는 내용을 암기하고, 손으로는 필기 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내가 왜 여기서 공부해야 하는 거야?!’
마음은 도망치고 싶지만, 머리는 여기서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 차마 도망갈 수 없었다.
지금 듣는 수업은 D대 논술로, 정시 성적으로 합격하기 어려운 대학교로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어제 수능을 보고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틀 후에 D대 논술 시험이 있어 도무지 공부를 안 할 수 없었다.
‘그래도 5개 중 3개는 공부하지 않아서 다행이긴 해.’
수능 성적을 떠올리니 피곤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한국사는 1등급이 나왔고, 생활과 윤리는 50점 만점, 사회문화는 1문제를 틀렸지만 문제들이 어려워서 1등급이 나오기에 충분해 보였다.
의외로 예상치 못한 탐구 과목에서 대박이 터졌다.
한편으로는 담임 선생님과 찬혁이 말을 믿지 않고 국어와 수학에만 집중했다면 2등급과 3등급이 나오는 점수가 나왔을 것이었다.
점수를 계산해보니 D대와 E대 논술 수업은 예정대로 참여하기로 하고 G대, H대, K대 논술 수업은 취소했다.
등급이 아닌 점수로 계산해 보니 이 성적으로 정시 지원을 했을 때 G대까지는 합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수학 등급이 낮은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정시에서는 등급이 아닌 점수로 환산을 하고 현재 가채점 기준으로 3등급 상단에 있는 점수이고 다른 과목들이 잘 나와서 충분히 커버 가능할 것 같았다.
“이해 됐나요? 지금부터 기출 문제를 나눠줄테니 시간에 맞춰서 원고지에 풀어볼게요.”
그 사이 수업 진도가 다 나갔고, 조교들이 문제지와 원고지를 배부하기 시작했다.
‘후우, 해 보자.’
솔직히 체력이 바닥이다. 당장이라도 침대에 누워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대학교 라인을 높이기 위해서 눈 앞의 논술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신줄을 잡고 눈 앞의 문제지와 원고지를 보며 마음을 다 잡았다.
‘이제 하나 끝났다.’
D대의 논술 고사장. 정해진 시험 시간이 끝나자 종이 쳤고, 감독관의 지시를 따라 펜을 놓고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정말 이틀 동안 미친 듯이 공부했고 이제서야 끝이 났다.
‘기숙학원이 아닌 밖에서 공부하는 게 정말 힘들다.’
지금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 것도 있겠지만, 정신적으로 공부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체력은 탈수한 수건을 쥐어짜서 물방울을 내는 것처럼 간신히 끌어올렸고, 멘탈은 이거 아니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이 것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이고, 포기하는 순간 끝이라는 절박함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지만 정말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조금만 더 하자. 조금만 더.’
수능을 보기 전에는 당연히 점수가 나오기 전이기에 내가 어느 대학교에 갈 수 있을 지 확신이 없었다.
게다가 기숙학원이라는 환경이 공부해야 하는 분위기여서 휩쓸리지 않고, 딴 생각을 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능을 보자 지금 성적이면 어느 대학교를 갈 수 있을 지 라인이 나왔다.
그리고 논술은 합격하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에, 이걸 하더라도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고 성적이 따로 발표되지 않아 내가 대충해도 다른 사람들은 결과를 알지 못한다.
이런 생각을 한 번 하자, 정말 끊임없이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늘도 술 마시는 애들이 있겠지.’
유혹의 절정은 학원 수업이 끝나고다.
내가 다니는 논술 학원의 강의실과 복도를 지나다니다보니 많은 학생들의 얼굴이 낯익다. 그리고 내가 다녔던 기숙학원의 단체복인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애들도 있었다.
물론 여기에서도 성실히 공부하는 애들도 있지만 몇몇은 수업이 끝나면 기숙학원에서 다녔던 애들끼리 뭉치며 술을 마시고, 이성과 대화하며 연애하기 위해 노력하는 애들이 보였다.
기숙학원에서 못했던 욕망들이 수능이 끝나자마자 터진 것이었다.
만약 입장을 바꿔 내가 기숙학원이 아닌 통학학원을 다녔다면 수능 전까지 저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짜 대화창이 폭발하겠는데?’
논술 고사장에서 나와 부모님에게 연락하기 위해 핸드폰 전원을 키니 대화 알림창이 수백개가 떠 있었다.
기숙학원에서 나와 가장 적응되지 않는 것이 핸드폰 사용이었다.
기숙학원에서는 담임 선생님이 핸드폰을 보관하고 있었지만, 이 곳에서는 내가 핸드폰을 보관해야 했다. 첫날밤부터 자연스레 아무런 일이 없음에도 핸드폰에 손이 가고, SNS를 보느라고 잠을 자지 못하는 모습에 정신 차리고 학사 사무실에 핸드폰을 반납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오늘은 D대 논술 시험이 있어 부모님에게 연락하고 길을 찾기 위한 용도로 핸드폰을 사용하는데, 정신 없이 기숙학원 반 학생들의 단체방에서 끊임없이 알람이 뜬다.
무슨 대화를 하는 건지 궁금해서 단체방에 들어가니 서로의 수능 성적과 안부 그리고 가까이에 있으면 만나서 술 마시자는 대화들이 대부분이었다.
영양가 없는 시덥지 않는 내용들로 여기서 한 번 참여를 시작하면 계속 참여해야 할 것 같아 빠르게 훅 읽고 창을 닫았다.
“오늘은 삼겹살 먹고 푹 쉬자!”
다음 논술은 E대로 토요일 오전에 시험이 잡혀 있었다.
D대는 이틀 밖에 시간이 없어 정말 체력을 쥐어짜며 공부했지만, E대는 시간이 있어 그래도 정신적으로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가 어찌되었든 그 동안 나에게 고생한 보상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여 밖에서 먹고, 학사에선 잠을 푹 잘 계획을 세웠다.
기숙학원에서와 달리 식탐이 밖에 나와서 터졌다.
아무래도 급식을 먹는 학원과 달리 여기선 바로 즉석으로 나온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퀄리티가 다르기도 하고, 더욱 맛도 있었다.
특히 학원에선 먹지 못했던 삼겹살, 치킨, 회 등을 밖에선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다. 그래서 논술 학원을 다니면서 근처 식당에서 맛집을 찾아 다니는 것이 지금의 공부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되고 있었다.
‘9개월 동안 기숙학원에서 공부 했잖아. 일주일만 빡세게 하자!’
“아자아자!! 파이팅!!”
많은 고난과 힘듬이 있었던 기숙학원에서도 11월까지 해냈기에, 남은 기간동안 버티지 못할 리 없다는 자신감을 만들어 결심했다.
이 모든 게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기에 끝까지 잘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풀지 않고 공부하기로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