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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B Jan 30. 2021

<이방인> 뫼르소 & <아이 킬드 마이 마더> 후베르트

어머니의 죽음을 통한 삶에서의 해방과 실존 

노트북 정리하다 발견한 2019년 과제로 쓴 레포트 그대로 올리는 글.

<이방인>에 대한 강의를 하던 중에 내주신 과제였는데, 아마 이방인 속 인물과 비슷한 실제 사례나 매체 속 인물을 비교하는 과제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좀 막막한 과제였으나 순간 자비에 돌란 감독의 <아이 킬드 마이 마더>가 떠올랐고 "이거다" 싶었다. 과제 점수 20점 만점에 19점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두 인물 사이에 아주 밀접한? 공통점이 없다는 피드백을 받았었는데.. 솔직히 <이방인>의 뫼르소랑 정말 똑같은 인물상이 어디 있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개인적으로 주제를 잡고 나서는 쉽게 썼던 글이었고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았던 <이방인>이라는 작품이 이 레포트를 쓰고 나서는 어느정도 이해가 되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과제.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며 헤어짐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랑을 깨닫는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소설가인 기 드 모파상의 말이자 영화 <아이 킬드 마이 마더> 첫 부분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아이 킬드 마이 마더>의 주인공 후베르트는 어머니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평범한 16살 사춘기 소년이다. 그는 매일같이 자신의 어머니와 말다툼을 한다. 어머니와의 반복되는 다툼에 지친 후베르트는 어느 날 어머니에게 독립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그의 어머니는 후베르트의 질문 때문에 텔레비전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며 대충 대답을 해 넘겼고 후베르트는 어머니의 대답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다음 날 바로 아파트를 보러 나선다. 아파트를 보고 온 후 후베르트는 어머니에게 최종 허락을 받으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독립이 무슨 소리냐며 허락해주지 않는다. 어제와 다른 대답을 내놓는 어머니를 보며 후베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내 계획이 있고 삶이 있어.”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후베르트의 어머니는 우연히 태닝 샵에서 후베르트의 남자친구 이야기를 듣게 된다. 후베르트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후베르트의 어머니는 자신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아들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자꾸만 어긋나는 둘의 관계가 지속되던 도중 후베르트의 어머니는 결국 후베르트를 기숙 학교로 전학 보낸다. 후베르트는 그녀의 결정에 분노하고 자신이 어머니에게 귀속된 존재라고 생각하며 두 모자의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자유로운 자신만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후베르트는 어머니가 항상 자신의 발목을 잡고 놓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소설의 제목처럼 말 그대로 이방인의 모습을 보인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이 소설 속 뫼르소는 자신의 어머니가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장례식에 가야 해 직장에 휴가를 내는 장면에서도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 아니지 않냐는 도피적이고 무감각한 모습을 보여주는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서도 담배를 피우거나 잠을 이기지 못하고 조는 등 어머니를 잃은 아들의 일반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에서 벗어난 듯한 행동을 취한다. 그의 이러한‘비정상적인 행동’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이어졌다. 전날 어머니를 묻고 온 뫼르소는 수영장에 가고 마음에 드는 여자와 코미디 영화를 보고 하룻밤을 보내는 등의 행동을 취한다. 이러한 그의 행동들은 후에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이고 재판을 받게 되자 다시 재구성되어 결국 뫼르소가 비정상적이고 정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죄로 사형을 처하게 만든다.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뫼르소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가 왜 많은 나이에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섰는지를 이해하며 어머니가 죽음 앞에서 느꼈을 해방감을 이해한다.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삶을 강요하는 세상과 타인이 정해준 죽음이라는 부조리 앞에서 반항하던 뫼르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실존을 느낀다. 



<아이 킬드 마이 마더>의 후베르트와 <이방인>의 뫼르소. 두 인물은 사는 곳, 나이, 직업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매우 다른듯해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두 인물 모두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반항하며 실존을 경험하는 인물이다. 두 작품 모두 어머니의 죽음, 반항, 실존이 중요한 키워드인 셈이다. 소설 <이방인>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뫼르소의 비정상적이고 반항적인 모습으로 시작되어 죽음 앞에서 부조리로부터의 해방감과 실존을 느끼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영화 <아이 킬드 마이 마더> 역시 이 세 가지 키워드가 등장한다. <아이 킬드 마이 마더>는 <이방인>과 다르게 어머니의 죽음이 실제 일어난 사건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 후베르트는 상징적인 어머니의 죽음을 두 차례 언급한다. 학교에서 부모님을 인터뷰해 그들의 직업을 소개하는 과제가 주어지자 후베르트는 선생님께 아버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며 어머니는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며칠 뒤 후베르트의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아채고 학교로 찾아오지만 후베르트는 그 길로 어머니에게서 도망쳐버린다. 이후 기숙학교에서 글을 쓰는 시험을 보게 된 후베르트는 자신의 글 제목을 ‘나는 엄마를 죽였다’라고 적어서 제출한다. 이 영화 속에서 후베르트는 어머니의 죽음을 실제로 경험하지 않는다. 하지만 후베르트는 멀쩡히 살아계시는 어머니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그녀의 죽음을 바라는 것처럼 행동한다. 또한 영화 내내 어머니와의 갈등과 충돌 안에서 후베르트는 반복해서 그녀를 향해 고함을 지르거나 가출하는 등 일반적인 아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행동을 보인다. 후베르트는 자신이 어머니라는 그늘에 가려져 자유와 자신의 삶을 억압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어머니의 죽음을 표현하고 그녀에게 반항함으로써 자신의 자유의지와 독립된 자아, 즉 실존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이방인>의 작가 카뮈 역시 실존주의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증가했던 시대의 작가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실존주의 작가라는 사실을 부정했지만,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실존에 대해 고민하고 반항하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의 대표작 <이방인> 역시 실존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 주인공 뫼르소는 남들이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난 듯한 행동을 반복한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코미디 영화를 보며 웃고 떠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햇볕이 뜨겁다는 이유로 한 남자에게 총을 쏴 그를 죽음으로 이끈다. 이 일로 재판을 받게 된 뫼르소는 죄에 대한 벌을 줄이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변호사의 말에도 오로지 진실만을 말한다. 그에 관한 결과가 사형이라도 말이다. 결국, 뫼르소는 남자를 살인한 죄보다는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에서 벗어난 죄, 어머니에게 무심한 아들인 죄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타인이 만든 울타리를 넘었다는 죄의 벌을 가혹했다. 하지만 뫼르소는 벌 앞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타인이 만든 규범과 틀을 넘으며 반항하며 주체적이고 개인적인 삶은 살아가던 뫼르소는 이러한 행동 때문에 다시 한번 사회가 만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감옥에 갇힌다. 그렇기 때문에 뫼르소는 다시 한번 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인 죽음 앞에서 해방감을 느낀 것이다. 


실존주의는 19세기 덴마크 철학자였던 쇠렌 키르케고르에 의해 세상에 소개되었다. 인간 삶에 대한 의미를 찾고자 했던 이전의 철학자와 다르게 키르케고르의 철학은 더욱더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철학이었다. 인간은 한가지 절대적인 진리와 정의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칸트나 벤담 같은 철학자들의 생각과 다르게 그는 “적극적인 주체로서의 인간”을 내세우며 개개인이 가진 존재 가치에 대한 실존주의 철학을 이야기했다. 키르케고르에게 있어 인간은 여러 사건 앞에 놓인 개개인이 자신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힘으로 삶은 선택한다는 것이다. 처음 키르케고르가 실존주의 철학을 내놓았던 19세기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하였다 하지만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인간은 이성과 지혜의 힘으로 움직이는 존재이며 도덕적인 존재라는 기존의 철학적 기준이 모두 무너진다. 사람들은 히틀러의 만행을 보며 인간존재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고 이성의 판단으로 내려지는 선택과 자연스러운 죽음이 생각처럼 순탄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람들의 현존하는 나의 존재에 대한 관심은 증폭했고 전쟁이 끝난 1945년부터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을 남긴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에 의해 실존주의 철학이 사회에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콜린 윌슨은 실존주의에 대해 “실존주의로 인간을 자유를 얻었지만, 세계는 텅 비어버리고 무의미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목사이자 잡지사 편집장인 마이클 호턴은 자신의 저서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에서 “실존주의란,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빈 공간이며 개인이 그 빈 공간을 채워주는 역할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개개인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자아를 형성시키고 그것을 또다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이 실존이라는 것이다. 소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를 깨닫게 된 인물의 실존을 위한 반항을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소설 <시지프 신화>에서 “반항은 자신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현존이다.”,“반항은 삶에 가치를 준다, 한 존재의 전 생애 위에 펼쳐져 있는 이 반항은 삶에 그의 위대함을 되돌려준다. 눈가리개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지성이 스스로를 뛰어넘는 현실과 싸우는 광경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은 없다.”라고 설명했다. 카뮈에게 실존이란 곧 반항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실존을 위한 반항이란 자신의 삶을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후베르트와 뫼르소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반항적인 인간임이 틀림없다. 앞서 설명했듯이 타인의 시각에서 뫼르소는 주위에 무관심함을 넘어 무정한 인간으로 비친다. 후베르트 역시 걸핏하면 어머니와 다투고 집을 나오거나 차마 부모님께 할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한다. 두 인물 모두 정상이라고 불리는 철창을 넘기 위해 온 힘을 쓰는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 행동은 단순히 이들이 어딘가 삐뚤어진 인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후베르트와 뫼르소는 철창 밖에 본인들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후베르트와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반항하며 실존을 느끼는 인물들이다. 특히 후베르트와 뫼르소에게는 어머니의 죽음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며 헤어짐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랑을 깨닫는다.”라는 기 드 모파상의 말처럼 어머니의 죽음, 어머니와의 헤어짐이 두 인물에게 남긴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실존이었다. 후베르트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자신의 주체성, 실존을 위한 발버둥의 수단이었고 그는 자신을 옮아 매는 어머니를 상징적으로 죽임으로써 자신의 삶과 실존을 갈망한다. 뫼르소에게 어머니의 죽음이란 뫼르소의 반항과 현실에 대한 무감각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또한, 뫼르소는 결국 어머니가 죽음 앞에서 느꼈을 해방감을 이해하고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실존을 느낀다. 보이는 모습은 다르지만 두 인물 모두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그들의 실존을 보여주는 가장 큰 역할을 한다. 후베르트와 뫼르소는 자신의 삶 안에서의 부조리함을 느꼈던 인물들이다. 후베르트에게는 어머니의 결정 안에서 휘둘리며 자신의 선택은 묵살당하는 부조리, 뫼르소에게는 세상이 만든 사회적이고 도덕적, 종교적인 틀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부조리를 느꼈다. 이 두 인물은 자신들이 느끼는 부조리함 속에서 반항하며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나타낸다. 그 방법과 두 인물이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확실히 후베르트와 뫼르소는 ‘적극적인 주체로서의 인간’인 것이다. 




참고자료 


알베르 카뮈, 이방인, 이휘영(옮김), (문예출판사, 1973년 10월)
자비에 돌란, 아이 킬드 마이 마더, (2015년 1월 캐나다)
김민주, 50개의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이야기, (미래의창, 2014년 1월)
마이클 호턴,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 김대영(옮김), (나침반, 2001년 2월) 

이서규, 카뮈의 부조리 철학에 대한 고찰, (철학논집 제35집, 2013년 11월) 

알베르 카뮈, 시지프의 신화, 이가림(옮김), (문예출판사, 1966년 12월) 

[세기를 넘어]6.실존주의 https://news.joins.com/article/3831731, 2019.11,23 

아이 킬드 마이 마더 이미지 출처: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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