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사랑과 붉은 이별
가장 좋아하는 감독의 가장 좋아하는 작품. 영화가 너무나 미셸 공드리 감독 스타일이라 원작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었다. 원작인 보리스 비앙의 <세월의 거품>은 영화보다 더 커다란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준다.
4가지 인생 조각
부엌의 생쥐들은 햇살이 수도꼭지에 부딪쳐 내는 소리에 맞추어 춤추기를 좋아했고, 마치 노란 수은이 분출될 때처럼 햇살이 바닥에 부딪쳐 가루가 되면서 만들어내는 작은 공들을 쫓아다녔다. - <세월의 거품> 中
영화 무드 인디고는 4가지 색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비비드, 파스텔, 세피아 그리고 완전한 흑백톤으로 흘러가는 영화는 주인공 콜랭의 상황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 4가지 색채에서 찾을 수 있는 재미있는 점은 색채의 변화나 콜랭이 처한 상황이 아니다. 콜랭의 삶을 이 색채와 같이 4로 나누어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전에, 영화 속에서도 몇 차례 등장했던 듀크 앨링턴의 '클로에'라는 노래의 부제목이 늪의 노래라는 사실을 기억해두자. 수련이 자라는 늪과 수련이 집어삼킨 클로에. 노래의 제목은 영화 속 클로에의 모습을 미리 이야기해준다. 수련은 저수지나 늪에서 자라지만 맑은 물을 좋아해 어떠한 흙탕물도 깨끗하게 정화시킨다. 일 년 중 5월부터 9월까지 피어있지만 그동안도 아침 8시에 일어나 오후 4시가 지나면 서서히 꽃잎을 접는다.
콜랭의 인생을 1/4로 나누어 첫 번째 1/4 부분을 비비드 두 번째를 파스텔 세 번째를 세피아 마지막을 흑백 파트라고 정해두면, 클로에와 사랑이 시작되면서 그의 인생은 파스텔 파트로 접어들고 클로에의 죽음 이후 콜랭의 삶은 흑백으로 변화한다. 일 년 12개월을 1/4로 나누어 같은 순서로 이름을 붙이면 수련이 피는 시기인 5월~9월은 파스텔 파트에서 세피아 파트에 속한다. 같은 방식으로 하루 24시간을 4로 나누면 수련이 피는 8시에서 16시 역시 파스텔에서 세피아 파트에 속한다.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주 정확한 해석도 아니지만, 만약 감독이 이러한 수련의 특성을 중심으로 영화 색채의 변화를 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사소한 재미가 있는 영화가 된다.
동물을 잡아먹은 식물
작은 장밋빛 구름 한 조각이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구름이 두 사람을 감쌌다. 그 안은 따뜻했고 계피향을 넣은 설탕 냄새가 났다. - <세월의 거품> 中
"오른쪽 폐 속에 수련이 있어요. 교수 말에 의하면 처음에는 그게 그냥 동물적인 것인 줄 알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수련이래요. 화면에 나타나더라고요. 벌써 상당히 많이 자랐지만 결국에는 제거할 수 있을 겁니다."
위는 클로에의 병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소설 속 콜랭의 대사이다. '동물적인 것'이라는 표현을 쓰는 콜랭의 말로 보아 클로에의 몸속에 자리 잡은 수련은 그와 반대되는 개념인 '식물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동물이 식물을 섭취하거나 자신의 욕구나 목적을 위해 취하거나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만 먹으면 길가의 꽃을 꺾기도 할 수 있고 건강이나 맛을 위해 야채를 섭취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결국 식물적인 것이 동물적인 것을 집어삼킨다.
바람을 타고 창문으로 날아가 클로에의 몸속에 안착한 씨앗은 사람의 몸 안에서 꽃을 피운다. 사람의 몸 안에서 피어난 이 식물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결국 죽음까지 몰아간다.
식물에 잠식되어 버린 건 클로에만이 아니다. 평생을 일 해본 적 없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칵테일을 만들고 춤을 추며 편안하게 살던 콜랭은 클로에의 병 치료를 위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 콜랭은 타자기를 쳐 글을 완성하는 일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레일을 타고 이동하는 타자기가 자신의 앞에 오는 순간부터 옆 사람에게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이어서 글을 완성한다.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 이 사람들이 작성하고 있는 글의 내용이 콜랭의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글의 첫 소절과 같이 돈 걱정 없이 여유롭게 살고 있었던 글의 '주인공' 콜랭은 돈을 벌기 위해 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아무도 그의 존재를 몰라주는 ‘일 하는 사람 1’이 되어 타자기를 두드린다.
바람결에 창문을 통해 날아들어온 식물 조각 하나는 한 인간의 목숨과 한 인간의 삶을 앗아갔다.
이 이야기가 단순히 주객전도의 요소인지 암이나 종양을 수련에 빗대어 표현한 다소 현실적인 이야기인지, 가볍게 꺾어버릴 수 있는 작은 존재라고 여겼던 무언가로 큰 피해를 입게 되는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다.
차가운 노동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게 분명했다. 타일을 깐 바닥은 옅은 안개로 둘러싸인 듯 윤기가 없어 보였고, 햇살은 금속성의 작은 방울이 되어 튀어 오르는 대신 지면에서 으깨진 다음 둔하고 엷은 물구덩이가 되어 이리저리 흘러갔다. 태양이 양떼구름에 덮여 떠 있는 벽도 이제는 예전처럼 균일하게 빛나지는 않았다. - <세월의 거품> 中
클로에가 물었다. "왜 그 사람들은 그렇게 우리를 경멸하듯 쳐다보았을까요? 일을 하는 게 그다지 즐겁지 않은가 봐요......"
"'일은 한다는 건 좋은 것이다.'라는 말은 그들도 들었겠지.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든 아무도 없어. 그냥 습관적으로 그리고 거기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 일을 하는 것뿐이지."
"어쨌든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은 한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중략)
"그렇지 않아. 만일에 사람들이 기계 만들 시간을 갖게 되면 그 이후로는 뭘 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게 될 거라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뭐냐 하면, 사람들은 그들로 하여금 일 하지 않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기계를 만들려고 애쓰는 대신 살기 위해 일은 한다는 거야."
클로에가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복잡하군요."
"아냐, 굉장히 간단한 거야. 물론 이런 일은 점진적으로 일어날 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닳아 떨어지는 만드느라 시간을 모조리 허비하고 있어....."
..(중략)
"그럼 그들은 바보란 말이에요?"
"그래, 그들은 바보야. 그래서 노동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라고 그들로 하여금 믿게 만드는 자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거지. 그래서 그들은 생각도 하지 않고, 진보를 위해 애쓰지도 않고,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거야."
소설 속 등장하는 콜랭과 클로에의 대화를 통해 콜랭이 가지고 있는 '노동'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단편적으로 보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 일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건방진 도련님의 생각으로만 보이지만 무드 인디고를 끝까지 본 사람이라면 콜랭의 삶에 있어 이 대사가 얼마나 가볍고 잔인한 말인지를 알 수 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콜랭은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결혼 상대인 클로에가 병에 걸리자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모든 돈을 써버 린다. 하지만 이마저도 곧 부족해지게 된다. 콜랭은 그렇게도 무시하고 하찮게 생각했던 '노동'을 하러 나선다. 일자리를 구해 정해진 자리에 앉지만 닳아버리면 곧바로 빼내어 버려질 기계의 부품처럼 취급받는다. 더군다나 살면서 한 번도 일을 해보지 않은 콜랭에게는 그 어떤 일도 적응하기 쉽지 않다. 타자기를 치는 일을 하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일터에서 실려나가기도, 전쟁에 쓰이는 총을 키우기 위해 자신의 온기를 차가운 흙에 내어주는 일을 시작했지만 못 미치는 실적으로 쫓겨나기도 한다. 마지막 콜랭은 하루 일찍 세상의 뉴스를 알고 미리 그 일에 대해 귀띔을 해주는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일 역시 클로에의 죽음을 하루 일찍 접하게 되는 비극으로 끝이 난다.
콜랭은 자신의 생각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것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의 절망감을 먼저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순수한 땀의 노동을 하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서 일을 하고 누군가는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기 위해,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일을 한다. 콜랭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일을 했다.
물론 힘들이지 않고 더 많은 자산을 만들기 위한 방법도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방법을 실행하지 않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서고 사랑은 실존에 앞선다
알리즈가 힘을 모으더니 단호한 동작으로 심장 뽑게를 파르트르의 가슴에 꽂았다. 그 알리즈를 바라보더니 금세 죽어갔다. 그는 자기 심장이 사면체라는 걸 확인하자 마지막으로 놀란 눈길을 던졌다. 알리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이제 장 솔 파르트르는 죽었으며 차는 식어갔다. - <세월의 거품> 中
콜랭의 친한 친구인 시크는 철학자 '장 솔 파르트르'의 열렬한 팬이자 추종자이다. 장 솔 파르트르의 강연을 보러 갔다 만난 알리즈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은 다짐하지만 가진 돈이 없어 좌절한다. 시크의 이러한 모습을 본 콜랭은 자신의 재산의 일부를 건네주며 알리즈에게 청혼하라고 한다. 그러나 시크는 돈이 생기자 장 솔 파르트르의 물건을 모으는데 더욱 욕심을 낸다. 장 솔 파르트르의 흔적이 남은 물건에 대한 집착은 날이 갈수록 커졌고 이러한 시크의 모습에 지쳐버린 알리즈는 시크와 장 솔 파르트르를 죽이게 된다.
'장 솔 파르트르'라는 이름은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영화 속 장 솔 파르트르의 책 <토사물> 역시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 장 솔 파르트르는 제대로 된 철학자라기보다는 교주에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되며 시크 역시 한 철학자의 지지자라기보다는 추종자에 가까워 보인다. 카페에 앉아있는 장 솔 파르트르를 죽이는 알리즈의 모습에서도 파르트르나 사르트르에 대한 애정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원작인 <세월의 거품>의 작가 보리스 비앙은 장 폴 사르트르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프랑스 파리 생 제르맹 거리에 위치한 카페 드 플로르는 당대 문학가들의 모임 장소였고 그 중심에는 장 폴 사르트르가 있었다. 재즈와 담배 냄새, 커피 향이 가득한 카페 안은 철학자들과 작가, 음악가들의 목소리로 열기가 올라갔고 큰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이면 모두 앉아 장 폴 사르트르가 이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보리스 비앙이 그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의 사르트르의 인지도를 보아 비앙 역시 그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설명했듯이 비앙은 사르트르와 서로 아는 사이였으나 무드 인디고 속 '장 솔 파르트르'의 모습은 어쩐지 고지식한 교주의 모습처럼 보인다. 이는 사르트르의 철학과 무드 인디고 속 주요 인물들의 철학 간의 마찰점. 다시 말해 원작 작가 보리스 비앙이 사르트르의 철학과는 다른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타자는 하나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이 비밀은 내가 무엇인지에 관한 비밀이다. 타자는 나를 존재케 하며, 바로 이러한 사실로 인해 나를 소유한다. 이 소유는 그가 나를 소유한다는 의식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중략) 나에게 있어서 타자는 나의 존재를 훔쳐가는 자이다. -장 폴 사르트르 <존재와 무 2> 中
사르트르는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로 그의 철학에서는 인간을 크게 '나'와 '타자'로 구별한다. '나'는 말 그대로 나 자신이며 '타자'는 나를 제외한 나를 바라보는 모든 타인이 된다. '나'는 실존하면서 동시에 나의 본질과 존재가치를 만들어가는 고유한 존재이다. 타인 역시 모두 각자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 '타자'의 시선은 '나'를 객체화시키는 폭력이 된다. 주제적인 존재가 객체화되는 순간 존재의 가치는 하락하게 된다. 사르트르의 시선에서 타자, 다시 말해 타인은 나의 '실존'과 '본질'을 해치는 '지옥'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타자'의 시선이 필요하다. '나'가 '나'로서 존재하고 실존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시선 속에서도 '나'의 고유한 존재가치를 잃지 않는 투쟁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타자'의 '객체화시키려는 타인의 시선'이 필수적이게 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역시 이러한 철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르트르에게 보부아르 역시 '타자'이기 때문에 나를 객체화시키려는 폭력이자 지옥이며 동시에 나의 주체성을 일깨워주는 존재가 된다. 철학적으로 자신을 이해해주는 동료이자 나의 존재가치를 쫓아 가주는 '타자'인 보부아르와의 결혼은 사르트르에겐 마다 할 이유가 없는 '약속'인 것이다.
보리스 비앙의 <세월의 거품> 속 등장하는 모든 주요 인물들의 생각은 장 폴 사르트르의 철학을 빗겨나간 듯 보인다. 영화 속에는 기약 없는 내일에도 '영원'을 약속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다음 날 함께 눈을 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남자의 모습. 또,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모든 것의 생명을 꺼냈던 여자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 모든 인물들을 움직였던 원동력은 실존도 본질도 존재가치도 아닌 '사랑'이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실존을 느끼는 한 인간은 그 힘으로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타인을 사랑하는 한 인간은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게 된다.
참고자료
- 존재와 무 2, 장 폴 사르트르, 손우성 옮김, 삼성출판사. 1992
- 세월의 거품, 보리스 비앙, 이재형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 무드 인디고, 미셸 공드리, 프랑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