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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23. 2020

< 허락 >

2020. 8. 22.  /  D-131  /  임신 21주


회사 직원 중 1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을 확인했다. 같은 건물 같은 층 맞은편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같은 출퇴근 버스에 타는 이웃이기도 했다. 동선을 보니, 사무실 건물은 물론이거니와, 회사 내 식당과 카페도 이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매일 버스에서만 2시간을 함께 있었으니, 나도 곧 밀접접촉자로 지정돼 연락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틀 전, 유치원에서 다른 어린이 확진자가 나와 세 살배기 조카와 부모도 검사를 받으러 간다는 소식에 마음 아파하던 아내였다. 세 살 배기가 무슨 고생이냐며. 다행히 가족 세 명 모두 음성이 나왔다. 그러면서 아내가 이제 남의 일이 아니라며 걱정했었는데.


바로 곁으로까지 다가왔다. 후다닥 왔다.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아 매일 이별하며 살아왔는데, 생각보다 빠른 녀석이었군.


보건소에 전화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청에 전화했다. 역시 안 받았다. 받는 게 오히려 이상한 시국이다.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어쨌든 나와 아내에겐 위기상황이다. 뚱이도 걱정이다. 하지만 위기일수록 침착해진다, 비인간적일 정도로.


가까운 보건소 위치를 찾았다. 15분 거리였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 소독 후 소독약을 뿌려대며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갈거니 준비해요. 어제 말한 그 친구, 양성 나왔대.”

“지금?”

“최대한 빨리 받을 거야. 혹시 (우리도 감염됐을지) 모르니까. 그리고 이미 늦었을 수 있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실내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자.”


증상을 찾았다. 기침과 고열 같은 감기 증상? 나와 아내 둘 다 없었다. 목쉼, 두통, 인후통, 구토, 호흡곤란 없었다. 설사, 근육통. 있었다. 곧바로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보건소 검사를 받으려면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밀접접촉자라는 질병관리본부의 확인 문자가 필요했다. 양성 직원의 결과가 어제 밤늦게 결과가 나온 탓에 아직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전이었다. 확산세에 따라 감염 의심자가 많아진 데다, 주말도 껴있어 밀접접촉자로 분류되려면 시간은 평소보다 걸릴 것 같았다. 나갈 준비하던 아내가 휴대전화를 보더니 옷장 가장 깊숙한 서랍을 열었다.


“긴팔 긴바지에, 모자와 장갑, 선글라스도 착용하고, 검사받으래. 귀가해서는 바로 소독약 뿌린 뒤 세탁기 돌리고, 샤워하고.”

“응, 그게 좋겠네.”

“조카도 검사받으러 갈 때 그렇게 했대.”


드라이브 스루는 아니어서, 보건소 주변에 주차한 뒤, 한바탕 패션쇼를 하듯 검사장으로 들어갔다. 둘 다 호피무늬 야한 선글라스에 뙤약볕 긴팔 긴바지 칭칭 감고 입장했다. 직원이 제지했다.


“더 이상 오지 마시고요. 왜 오셨는지 알려주세요.”

“저희 회사 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주저리... 주저리...”

“문자 없으면 검사 안 됩니다. 그냥 가세요.”

“저도 그렇고 임산부인 아내도 증상이 있습니다. 설사와 근육통이요. 아직 밀접접촉자라는 문자는 못 받았지만, 매일 두 시간가량 확진자와 밀폐된 공간에 있었고, 사무실도 같은 층에 있는 데다, 설사와 근육통 등 특정 증상도 있어 선제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설사와 근육통은 언제부터 있었어요? 오늘도 있었나요?”

“네, 사흘 전부터 있었고, 오늘 아침에도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두 분 모두 저쪽으로 서 주세요.”


언제나 핵심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까? 늘 그렇지는 않다. 반전을 위해 아껴둬야 할 때도 있는 법. 위기상황에서 특히 그렇다. 검사를 기다리며, 긴장한 아내를 위해 ‘괜찮아’를 연발했다. 아내도 ‘세 살 배기도 받았는데 뭐.’라며 덤덤하게 기다리려 했지만, 두려움은 근육통으로 찾아왔다.


“나 진짜 온몸이 아파. 근육통이 있는 거 같아. 긴장해서 이러는 거겠지?”

“응응, 별 거 아니야. 금방 끝나고. 면봉이 코에 들어가면 좀 놀랄 수 있는데, 그러려니... 해. 놀라서 뒷걸음질 치거나 고개를 뒤로 빼면 다시 해야 할 수 있으니 힘 빼고 차분히.”


힘 빼라는 얘기를 해버렸다. 누구나 다 힘을 뺄 수 있으면 누군들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지 않은가. 그토록 어려운 일을 이리도 쉽게 말하다니. 아무튼 검사는 역시 금방이었다. 아내는 새로운 경험에 코를 중심으로 표정을 씰룩거렸다. 곧장 집으로 와 앞서 조카네 가족이 알려준 지침대로 착실히 수행했다. 점심을 먹곤, 각자 할 일을 하다가 낮잠을 잤다.


오히려 차분하고 고요했다. 확진자와 같은 사무실을 쓰는 다른 직원이 고열 증상이 나타난다는 연락이 오고, 밀접접촉자가 늘고 있다는 소식에도 차분히 결과를 기다렸다. 아내와 떨어져 있었지만, 서로에게 하는 말들과 마음은 전보다 더 가까이 있었다. 전우란 이런 것인가. 우리가 다시 부둥켜 앉으려면, 허락이, ‘음성’이라는 판정 결과가 필요했다.



아내가 영웅담을 시작한 건, TV에서 가장 재미있지만 시끄러운 프로그램을 하는 시간이었다. 휴대전화 알림 소리가 아내의 입을 열었다. 검사받을 때의 상황과 느낌이 주된 내용이었다. 상황별 온갖 표정까지 지으며 안도의 한숨도 내뱉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뚱이에 대한 칭찬을 시작했다. 이렇게 까지 건강하게 자란 뚱이가 대견하다나.


나는? 내 칭찬도 좀 해줘야지. 오늘 검사까지 받고 오고 그런 거 내가 상당 부분 역할하지 않았나. 벌써부터 남편과 자식 중에 자식을 선택하다니. 안도는 잠깐, 심술은 길었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자유를 허락해 준 보건소의 판정 결과를 여기저기 알리곤, 고개를 들어 들뜬 표정으로 시선을 건넸다.


“나 오늘 테라피(SNS)해도 돼요? 뚱이 사진도 올리고? 어제 정밀 초음파에서 보여준 예쁜 뚱이 사진!”


갑자기 웬 존댓말? 확실히 마음이 좀 놓였나 보다. 하루 종일 뚱이 초음파 사진첩을 만들더니, SNS 상에도 추억을 새기고 싶은 모양이다. 가급적이면 SNS 피했으면 하는 마음을 존중해 올리기 전 언제나 업로드 여부를 묻는 아내다. 사실상 통보로, 결국 그러라고 할 수밖에 없지만, 이따금 나도 턱을 치켜올리고 뻗대기도 한다. 심술은 이럴 때 부리는 거다.


“안 돼. 뚱이 사진은 뚱이에게 허락을 받아야 올릴 수 있어.”

“뚱이야~ 엄마가 뚱이 사진 올릴게. 허락할 거지? 네 어머니.”

“뭐야,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적어도 지금 의사표시를 확인할 수 없으면 밑에 적어. ‘추후 뚱이가 삭제를 요구할 경우 해당 글과 사진을 삭제하겠습니다.’라고. 알겠어?”

“알겠어. 그렇게 쓸게.”


마음속으로 ‘심술 성공!’을 외치려는 순간, 뒤통수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잠깐, 그런데 그러면 자기는 왜 올렸어? 뚱이에게 허락 안 받고.”


앞서 올린 글들에서 무개념으로 올린 사진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역시 SNS는 제 발등을 찍는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다?


...... (조용)


침묵은 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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