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게 울려대는 공항의 소음, 비행기의 착륙을 알리는 안내방송, 편도 티켓 한 장을 쥐고서 김포공항에 도착한 일본인 소녀는 조급한 듯이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긴다.
아이돌마스터 KR, 믹스나인을 걸쳐서 지난 2019년에 솔로로 데뷔한 시티팝 가수 테라모토 유키카의 첫 정규앨범이다.
<서울여자 MV 中>
지난 몇 년 사이에 전 세계를 강타한 '뉴트로' 열풍.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트렌드로 자리 잡은 이 현상은 이윽고 '시티팝'이라는 음악 장르를 대중화시키기에 이른다.
일본 버블시대 곡들의 사운드를 흉내 내거나 재창조하여 만들어진 음악. 약간은 촌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따뜻하고 항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신스 팝은 강렬하고 음압 높은 비트에 지쳐버린 리스너들의 수요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는 한국도 피할 수 없어, 여러 인디 뮤지션부터 백예린이나 선미와 같은 메이저 아티스트까지 시티팝의 용법을 채용하게 된다.
<NEON MV 中>
그러나 유키카에게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유키카 본인이 일본인이라는 것이다. 시티팝의 본고장인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이, 이국의 언어로 부르는 시티팝이라니. 심지어 앨범 제목은 '서울여자'. 이렇게 아이러니할 수가 있을까.
그렇지만 유키카는 이에 대해 동명의 타이틀곡에서 직설적으로 해답을 내놓는다. 비록 외국에서 건너왔지만, 이 도시 속에서 당당하고 매력있게 살아가는 나는 예쁜 '서울여자'라고.
지금까지 유키카가 발표한 'NEON'이나 '좋아하고 있어요'에서의 밝은 모습과는 다르게 꽤나 성숙한 콘셉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방향성의 변화라기보다는, 가수 자신의 실력 상승과 함께 소화할 수 있는 콘셉트의 폭이 늘어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서울여자 MV 中>
시티팝 가수를 표방하는 유키카이지만,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는 '복고풍'일 것이다. 옛날의 사운드를 그대로 재현한 트랙에서 요즘 느낌의 하우스까지, 시티팝에 치중하지 않고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곡들이 수록되었다.
기존에 보여주었던 발랄한 모습의 변주인 'I FEEL LOVE'부터 자신의 반려견 시점에서 주인을 향한 사랑을 담은 귀여운 가사를 노래하는 '안아줘', 연인과의 권태기를 직감하고 지금의 불안함이 다시금 없어지기를 소망하는 'Yesterday'까지.
순수하게 설레기도 하고, 끝에 대해 불안해하기도 하던 사랑은 '친구가 필요해'에서 삐걱거리다가 결국 '그늘'에서 막을 내린다. 지금까지 밝은 곡으로만 활동해온 유키카이지만, 유키카 본인의 목소리는 어딘가 침착하고 어두운 구석이 있었는데 그늘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고 생각한다.
시티팝 자체가 과거의 음악을 재현하는 장르이기에 앨범 곳곳에서 이런 모티브가 엿보이기도 한다. 'Yesterday'는 아무로 나미에나 우타다 히카루의 예전 곡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곡이며, '그늘'에서도 초기 윤상 작품의 사운드가 진하게 느껴진다.
<서울여자 MV 中>
앨범을 마무리하는 트랙 'All flights are delayed'에서 김포공항역에 도착하지만, 모든 비행기의 결항 소식을 보고 '어쩌지...'라고 한숨을 내뱉는 유키카.
앨범 내적으로는 이후로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장치이며, 타이틀곡에서도 은연중에 비쳤던 고국을 향한 향수로도 느껴진다. 그러나 한·일 서로의 왕래가 실제로 막혀버린 지금, 이 표현이 유난히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기분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