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그레이 Sep 05. 2023

층간소음 때문에 그러는데요

결국, 보통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아파트 살이 6년 차, 

말로만 듣던 '층간 소음'의 실체를 경험하고야 말았다. 


쿵쿵쿵, 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쿵쿵... 

발망치 소리는 이른 오전부터 늦은 밤까지 간헐적이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TV소리 나 음악을 크게 틀어서 상쇄시켜 보기도 하고, 이어 플러그를 사서 차단도 해보고, 

'나는 아무것도 안 들린다'로 셀프 최면도 걸어보고,  그것도 안되자 '위층에 우리 조카가 산다'로 정신 승리도 해보려 했지만 모두 실패였다.


위층으로 당장 올라가서 읍소하고 싶은 마음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층간소음이 발단이 된 무시무시했던 일련의 사건사고 뉴스들이 주마등처럼 스쳤기 때문이다. 


대책이 필요했다. 




인터넷에 떠 도는 다양한 사례 정보를 참고해서 나름의 해결 단계를 정했다. 


1단계. 관리실을 통해 관련 안내 방송을 요청한다. 

2단계. 관리실을 통해 해당 세대 직접 방문 및 주의를 요청한다. 

3단계. 관리실을 통해 해당 세대 직접 방문 및 주의를 재차 요청한다. 

4단계. 편지로 읍소한다.

5단계. 직접 찾아가 읍소한다

6단계. 맞서 싸운다.... ㅠㅠ 

 

그리고 결국 4단계까지 오고 말았다. 

관리실에서도 '직접 대면'은 가급적 피하라는 조언이었다. 

겁에 질린 남편도 제발 이 이상은 어떤 액션도 취하지 말라며 나의 집요함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문제를 인지한 순간,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이었다. 

다만 이 말이 어떤 상황에서도 용맹함을 발휘한다는 뜻은 아니다. 

배달 주문 전화도 떨려서 잘 못하는 세상 쫄보다. ㅠㅠ   




우선 정갈한 편지지를 구매했다. 

입장 바꿔서 연습장이나 메모지에 대충 휘갈겨 쓴 메모를 본다면 읽기도 전에 불쾌할 것 같았다. 

연습장에 초안을 작성하고, 혹시라도 무례한 뉘앙스나 오해할 만한 표현은 없는지 반복해 읽으며 고치고 또 고쳤다.  내 믿음은 오로지 하나였다.  


'진심은 통한다' 


남편의 검수까지 완료한 뒤 도둑고양이처럼 위층으로 올라가 편지를 붙여두었다. 

어찌나 손발이 후덜 거리던지, 내려오는 짧은 계단에서 중심을 잃고 구를 뻔했다. 

남편은 이미 사색이었다. 


그날 밤은 남편과 나 모두 윗집과 칼부림하는 악몽으로 잠을 설쳤다. 





"띵동~~~~ 띵동~~" 


다음 날 오전 11시경이었다. 

막 일어나 눈곱을 떼고 있던 순간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벨소리가 들리자마자 집에 있지도 않은 무기의 위치를 찾고, 남편을 깨울까 말까, 관리실을 부를까 말까 허둥지둥 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인터폰 화면에 비친  낯선 얼굴과 우선 마주했다. 


'그런데... 이거 웬걸?' 


나만큼이나 상대도 겁 먹은 얼굴이었으며, 심지어 두 손은 공손히 모으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일단 안심이 되어 문을 열었다. 




세상 선량한 인상을 가진 나보다 조금 어린 세대의 남자 분이었다. 

그 분은 가장 먼저 스스로 해를 가할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듯이 소속 회사 명함부터 내밀었다.   


"얼마나 고민하고 쓰셨을지 전달이 돼서 내려왔습니다"


예의 바른 태도에 갑자기 죄책감이 밀려든 나는 꽈배기처럼 몸을 꼬며 답했다. 


"아이고...괜히 번거롭게 해서 너무 죄송합니다" 


그렇게 약 10분 간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결론은 발망치 소음의 출처는 위층이 아니었다. 

위층은 맞벌이 부부로 오전 일찍부터 오후 8시까지는 집을 비운다고 했다. 

아이도 그 시간에는 부모님 댁에 있었다. 


그런데 내가 듣는 소음은 전 시간대에 걸쳐 있었다. 

오해한 부분에 대해 나는 고개 숙여 몇 번이고 사죄할 수밖에 없었다. 


위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준비한 음료 한박스를 수줍게 건넸다.

받을 이유가 없어 극구 사양했지만 준비한 성의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위층의 진심도 내게 전달이 되었다.   




여전히 출처를 알 수 없는 소음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위층과 대면한 이후부터 소음에 크게 둔감해졌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치는 수 많은 낯 선 타인들 속에서 

앞으로 오가며 인사를 나눌 수도 있는 얼굴을 아는 나의 이웃이 생겨서일까.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니 어쩔 수 없지' 

'다른 층에도 사람이 사나 보네..' 

'어쩌다 소리가 클 수도 있지..'


결국 불필요한 적대심은 내 주변의 선량한 보통의 이웃들을 적으로만 인식하게 만들고,  

그와 동시에 내 삶에 미치는 아주 사소한 피해도 용납할 수 없는 옹졸함만 키웠다.  

 

이번 경험으로 공통주택 살이에 대한 나의 마인드가 조금 더 관대해졌음을 느낀다. 


나도, 내 이웃도 

그저 주어진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일 뿐인 것이다. 





아래는 위층에 보낸 편지 전문이다. 


0000호 이웃 귀하


안녕하세요.

바로 아래층에 사는 이웃입니다. ^^

이렇게 편지로 인사드리게 돼서 송구하다는 말씀 먼저 전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지난 수개월간 귀댁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음으로 일상에 적지 않은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시간을 불문하고 쿵쿵거리며 걷거나, 뛰는 소리로 인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저희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되고 있습니다. ㅠㅠ

알아보니 소음의 출처가 워낙 다양하다고 하여,  혹시 귀댁이 원인이 아닐 수도 있기에 혹시나 큰 실례를 범하는 건 아닐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하지만 만의 하나라도, 관련하여 사소한 부주의가 있으셨다면 앞으로 저희를 위해 조금만 배려해주시면 진심으로 감사드릴 것 같습니다. (꾸벅) 

부디 이 편지로 기분이 언짢지 않으시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아래층 이웃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네이버 리뷰가 명예훼손이라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