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죽음을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두렵고 낯선 것이 아니라, 언젠가 반드시 맞이해야 할 현실이기에 그렇다. 일흔을 넘긴 지금, 나는 죽음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배움의 길로 삼으려 한다. 그 시작은 2015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준비하면서였다. 늦은 나이에 해부학 용어와 노인 질환을 공부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죽음을 미리 배운다면 남은 삶을 더 충실히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요양 시설에서의 실습은 내 생각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창밖을 바라보던 노인, 마지막 순간 가족과 인사를 나누던 사람, 고통 속에서 떠나간 이들 모두에게서 삶의 존엄과 비애를 동시에 보았다. 죽음이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영원으로 건너가는 과정임을 느끼면서 마음속에 깊은 평화를 얻었다. 자격증을 손에 쥔 뒤에는 일보다는 봉사의 길을 택했다.
죽음을 배우는 일은 곧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다. 중학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 순기는 폐암을 이겨냈지만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다. 나는 그에게 “이승의 삶이 전부가 아니며, 영원한 이별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아내에게 끝내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 후회를 고백했다. 몇 해 지나지 않아 순기마저 세상을 떠났다. 부부의 묘비에는 “너희들이 있어 행복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고, 나는 속으로 답했다. “당신들이 있어 나도 행복했습니다.”
그 무렵 여러 병원을 찾으며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들을 보았다. 유방암과 난소암으로 투병하던 지인, 한때 건강 전도사로 불리던 숲 해설가, 아내를 잃고 대장암 수술을 받은 남성 회원. 병실마다 다른 사연이 있었지만, 공통된 것은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였다. 그러나 나는 “다 지나가리라”는 말을 되뇌며 그 고통을 단련의 과정으로 바라보려 했다.
가족의 죽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에서 알츠하이머를 앓다 세상을 떠난 처남 배서진의 삶은 고단했다. 낯선 땅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는 자식들과 함께한 세월은 쉽지 않았지만, 여섯 자녀는 그의 삶이 남긴 큰 결실이었다. 나는 그가 이제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리라 믿었다.
죽음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은 치매에서 얻었다. 고향 친구의 어머니는 스무 해 가까이 치매로 가족을 힘들게 했다. 대부분 치매를 비극으로만 보지만, 나는 거기서도 의미를 찾았다. 또렷한 정신으로 고통을 느끼며 마지막을 맞는 것보다, 기억을 하나씩 내려놓고 떠나는 편이 오히려 신이 내린 선물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치매는 모든 집착을 버리고, 다음 길을 준비하게 하는 ‘마지막 비움’의 과정일지 모른다.
시인 릴케는 “죽음은 과일이 익어가듯 삶 속에서 서서히 익는다”라고 했다. 그 말처럼, 결국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배우고, 일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잘 죽는 길이다.
삶의 끝에서 얻은 깨달음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분명한 길을 보여 주었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삶을 더 충실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내가 남긴 이 글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배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