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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불편함 사이

by 문용대

일흔을 넘기고도 나는 아직 약 한 알 먹지 않는다. 체험관에서의 건강검진 결과는 의외로 좋았다. 스물한 가지 항목 모두 ‘정상’. 단 한 가지, 체중을 2킬로그램 늘리라는 조언을 들었다. 남들은 살을 빼느라 난린데, 나는 살을 찌우라 한다.


최근 건강검진 결과표를 펼쳐 보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뇌졸중, 심혈관… 모두 ‘이상 없음’이다. 심지어 혈관 나이는 내 나이보다 열한 살이나 젊단다. 아직도 전철역 계단을 오르내리며 승강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정도의 체력.

그러나 건강하다는 이 착각은 언제든 금이 갈 수 있다.


'신바람 박사'로 불렸던 황수관 교수, '물개' 조오련 선수—모두 건강의 대명사 같던 이들조차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들을 떠올릴 때면, 내 몸도 마냥 믿을 수만은 없겠구나 싶다.


나를 힘겹게 하는 건 눈이다. 문득문득, 눈꺼풀이 저절로 내려앉아선 좀처럼 떠지질 않는다. 상대와 눈을 맞추며 집중하면 그냥 지낼 수 있다. 그렇지만 사물을 언제나 응시하면서 지내기는 쉽지 않다. 길을 걷다 멈춰 서서 눈을 억지로 떠야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다. 이제는 일상조차 조심스레 건너야 한다.


그동안 수없이 병원을 전전했다. 치료 가능성 하나만 보고 달려갔다. 백내장도, 녹내장도, 황반변성도 아니다. 시력은 여전히 1.0이고, 안구건조증도 아니라 했다. 인공눈물도, 보톡스도, 쌍꺼풀 수술도 해봤지만 모두 별 소용이 없다. 안과적 질환이 아니라면, 신경계의 문제일까.


유명 신경과 병원에서도 파킨슨병과 간질 치료약을 처방받았지만, 역시 허사였다. 한방에서는 1년 동안 약침을 맞으라 했고, 비용은 천만 원. 완치 보장도 없단다.


부천의 한 안과에서는 내 말을 다 듣고, “지금까지의 치료가 모두 옳았습니다”라 했다. “그럼 어떻게 하죠? 그냥 이대로 살다가 죽을까요?” 하고 묻자, 의사는 웃으며 말했다.

“네. 그럭저럭 이대로요. 신경과나 가까운 병원에서 보톡스를 맞아보세요. 굳이 부천까지 오실 필요도 없어요.”


나는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보톡스를 주기적으로 맞느니, 차라리 겉눈썹 절개수술을 하기로 했다. 눈꺼풀이 눈을 덜 덮도록 양쪽 겉눈썹 윗부분을 도려내는 수술. 수술 후, 멍은 뺨 아래까지 퍼졌고, 거울 속 얼굴은 낯설 정도로 흉했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내의 친구가 한 사람을 소개했다. 내 증상과 비슷했던 이가 충북 청주의 신경외과에서 뇌수술을 받고 호전되었다는 것이다. 서울도 아닌 지방, 게다가 뇌수술이라니… 몇 달을 망설였다. 아내보다 오히려 친구가 더 안달이었다.


결국, 아내와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의사들도 못 고친 증상을 시골 의사인 제가 뭘 어쩌겠습니까?”

그 말투에 웃음이 났다. 나는 이미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대한신경외과학회 회장을 지냈고, 국회의원 경력도 있는 사람.

그는 겸손하게 말했다. “학회장도 순번대로 돌아가며 하는 거고, 국회의원은 당론 따라 손 드는 거지요. 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는 잠시 세속을 내려놓은 사람들처럼 대화를 나눴다.


그는 내 진료기록과 문진표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눈은 질병이 아니라, 그저 불편한 상태입니다. 사모님보다 오래 사실 겁니다.”


병이 아니라 불편함—그 말이 마음을 내려앉게 했다. 뭔가 희망을 건네는 말처럼 들리면서도, 동시에 치료의 끝을 선언하는 말 같았다.


돌아오는 길, 생각에 잠겼다.

‘질병’이란 몸의 일부가 기능을 잃은 상태이고, 그 끝은 죽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눈 때문에 죽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받아들일 때가 아닐까.


나는 결심했다.

이 불편과 더불어 살아보기로.

억지로 고치려 애쓰지 않고, 조금은 느리게,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여전히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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