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두건과 레이스, 미션 수행
시간이 흘러 흘러 어느덧 세 번째 수업. 어렸을 땐 어른들이 말하는 세월의 야속함을 잘 몰랐는데, 이제는 안다. 시간이라는 게 얼마나 빨리 가는지, 특히 붙잡고 싶어질 때 더욱이.
오늘은 엄마에게 선물할 두건을 미션으로 가지고 간 날이었다. 그러나 필 권사님에게도 미션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에게 바이아스용 천 만들기, 말아박기와 레이스 재봉을 알려주시는 일이었다.
타협점은 이랬다. 먼저 진도를 나가고 시간이 남으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만들기! 말아박기와 레이스를 서둘러 배워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겠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노력했다.
우선 바이아스 천을 재단하고 연결해 둔 후 배우는 말아박기. 말 그대로 원단 끝 부분을 말아서 박아주는 기술인데, 이를 위해선 내 미싱의 노루발을 교체해 줘야 했다.
노루발을 교체한 후에는 천을 살짝 쥐어 말아박기용 노루발의 홈에 끼운 후 재봉을 시작한다. 살살 천이 계속 말려 있도록 쥐고만 있으면 나머지 일은 노루발이 챱챱 천을 먹으며 해치운다. 똑똑한 노루발, 그리고 더 똑똑한 재봉틀 발명가들!
얇게 원단 끝이 접혀 들어가니 깔끔한 바이아스용 천이 완성되었다! 직선 박기로 여러 응용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단시간에 다양한 실전 기술을 배우니 완성도가 더 높아지는 게 보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무엇이 다가오는지 몰랐고, 마냥 신기술을 익히는 게 좋은 기분이었는데! 나의 미싱이 섭섭해지기 시작했다.
가정용 재봉틀은 휴대성이 좋고 배우기 편하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이런저런 서운함이 올라오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노루발 호환이었다. 특히 내 미싱은 저렴이 가성비 제품이었기 때문인지, 말아박기를 위한 노루발은 곧잘 들었지만 레이스 노루발은 혼자 힘을 내기엔 다소 연약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우리 필 권사님이 누구시던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해결사! 노루발이 힘을 받지 못할 때는 재봉 중에 천을 살짝 앞으로 밀어주라는 솔루션이 있었다.
완성된 바이아스용 천이자 프릴을 보니 한층 더 재봉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도 왕초보고 0.3 정도 레벨에 불과하지만, 수업 중반을 지나는 이 시점에는 혼자서도 충분히 제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근자감이 올라왔다.
진도를 다 나가고 미션을 수행할 시간을 벌었고, 두건도 리본을 맬 수 있도록 완성해 냈다. 엄마가 고른 품목을 엄마가 고른 천으로 만든 선물! 일평생 내 안에 창작자로서의 감은 없다고 믿고 살았는데, 재봉을 배우면서 새로운 나도 배워가고 있다.
조금 수업 시간을 초과하고 말았고 때문에 남은 시간이라고 하긴 멋쩍지만, 총 세 시간 동안 그렇게 말아박기와 레이스/프릴을 배우고, 두건과 슈슈 밴드도 만든 뿌듯한 하루였다.
주말간 재봉틀과 육지행을 병행하기는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창작 취미생활은 그런 어려움을 상쇄해준다. 기운을 내자, 나의 꼬마 재봉틀! 앞으로도 미션 수행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