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꿩 대신 닭! 재봉 대신 바느질
재봉틀에 과몰입해버린 이상 주 7일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하나둘씩 사비 털어 구매한 원단과 재봉 용품들이 도착하면서, 안 그래도 얇은 편인 내 인내심은 가닥가닥 끊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목요일 밤이다. 월-화 출장을, 연달아 수목 근무를 마쳐 무척 고된 날이었다. 차를 몰고 집에 가는데 문득 내 인생의 방향키가 내게 없다는 사실이 유난히 쓰게 느껴졌다. 평소 인생 방향키는 한 손으로만 잡아도 감지덕지 아닌가?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멀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겉으로 순한 양의 탈을 쓴 나는 알고 보면 통제권을 손에 넣어야 속이 시원한 타입의 인간이다. 방향키가 부재하다는 사실은 그래서 태산같이 큰 스트레스로 와닿았다.
최근 이런 내 성미를 재봉틀과 같은 창작 활동이 잘 달래주고 있었는데, 당장 내 손에는 재봉틀이 없었다. 지난주 수업 후에도 후다닥 공항으로 향하느라 필 권사님 댁에 두고 왔기 때문이렷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꿩이 없으면 닭이라도! 다른 재료들은 준비가 되었으니, 벼르던 슈슈 밴드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슈슈 밴드는 일명 머리 묶는 곱창 끈으로, 먼지 쌓인 구세대 산물에서 찬란한 재유행템으로 돌아온 상품이다. 손바느질로도 대체 가능해 보이는 데다 여러 원단을 조금씩만 써도 제작이 가능해 보여 쉽게 선택할 수 있었다.
뭔가 만들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좀 나았다. 인생이야 당장 내 맘대로 안된다지만, 내 손으로 만드는 뭔가는 단계를 거치면 짜잔 완성품이 되니까. 그야말로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에는 적격한 응급 해소책이다.
준비물은 재단한 원단, 고무줄, 실과 바늘, 실핀 등이다. 일단 50cmx12cm로 재단한 원단을 뒷면이 보이게 반으로 접어 바느질한다. 좌우 일부분은 나중에 이어 붙이기 위해 내버려 둬야 한다.
윗면, 뒷면 천이 잘 이어지는지 확인하면서 똑바르고 가능한 한 촘촘히 꿰맨다. 나는 꼬마손 손바느질로 하기 때문에 경로를 이탈할까 봐 선을 긋고 꿰맸다.
바느질을 마친 후에는 꿰매지 않은 부분을 통해 안쪽과 바깥쪽 면을 뒤집는다. 이때까지는 직선의 천이지만, 뒤집은 후 동그랗게 말아 이어주면 슈슈 밴드의 모양이 드러난다.
살짝 뿌듯함을 느끼면서, 양쪽 짧은 세로면을 덧대서 처음 꿰맨 것처럼 이어준다. 거의 다 왔다.
고무줄 끝이 딸려 들어가지 않게 잘 고정해두고, 안쪽에 고무줄을 살살 넣는다. 옷핀을 이용해 쭉쭉 넣어가면 쉽다고 한다. 실제로 쉬웠고, 완성에 다다를수록 그럴듯해져서 기분도 좋아졌다.
고무줄을 다 끼워 넣고 나면, 남겨뒀던 창구멍을 공구르기를 통해 마저 꿰매 준다. 공구르기는 양쪽 면을 실이 보이지 않게 꿰매는 방법인데, 이번 작품을 위해 유튜브에서 속성으로 배웠다. 중/고등학교 시절 가정 수업을 들었던 남녀노소라면 어렵지 않게 따라 할 수 있는 정도다.
그리하여 내가 지인들에게 선물해 주려고 벼르던 슈슈 밴드가 뚝딱 완성됐다! 처음 만들어서 생각보다 작게 만들어졌지만, 다 만들 때쯤 나를 심란하게 하던 스트레스가 잠잠해진 걸 알 수 있었다. 창작의 기쁨이 이토록 찬란하고 아름답다니! 나는 그래서 무려 세 종의 원단을 더 재단해 자정에나 잠들었다는 후문이다.
다음날 출근해서 몇몇 사람들에게 내가 만든 거라며 슈슈를 나눔 했는데, 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으로 나의 힐링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인생의 길이나 방향을 잃은 것처럼 느껴질 때,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속이 상할 때, 작은 손으로 꼬물이는 취미를 적극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