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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블리 Feb 11. 2023

이제야 이해하게 되는 마음

엄마의 짜증엔 다 이유가 있다




내가 누군가의 아내, 엄마이기 이전에 그저 엄마 아빠의 딸로만 살았던 그 시절에 관한 기억.

그때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던 우리 엄마에 관한 기억이 몇 가지 있다.



아주 평범한 하루였다. 그날도 엄마는 저녁 밥상을 준비하는 중이었고 나와 동생은 방에서 각자 노닥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별안간 엄마는 벼락같은 짜증을 쏟아 부었다.


"딸년이라는 것들이 어떻게 손 하나 까딱을 안 해! 엄마가 이러고 있으면 나와서 숟가락이라도 놔야 하는 거 아니야?!!!"


방에서 빈둥거리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엄마의 짜증에 나와 동생은 서로를 바라보며 황당해했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몰라!'


어느 날엔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상을 차리다가 어느 날은 신경질을 벅벅 내며 온 가족을 불편하게 했던 엄마. 나는 오랫동안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오늘은 기분이 어떤가 눈치를 살펴볼 뿐이었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자마자 저녁을 준비한다. 일단 쌀을 닦고 냉장고 문을 연다. 한참을 바라보며 오늘은 또 뭘 해 먹어야 하나 머리를 쥐어뜯는다. 집에 오자마자 엉덩이 붙일 새도 없이 혼자 동동거리며 저녁을 준비하다 보면 갑자기 부아가 치민다. 도대체 왜 나만 이렇게 분주해야 하는 거지?


짜증의 이유는 '나만' 바쁘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집안일의 주체는 나다. 남편은 도와주는 역할에만 충실할 뿐이지 절대로 주체가 되지 못한다. 약속이 있어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남편은 그냥 나가버려도 무방하지만 엄마인 나는 가족들이 먹을 끼니를 다 챙겨놓고 나가야만 한다. 마음 편히 나가지도 못하는 이런 상황에 늘 짜증이 쌓이기 마련이다.


나는 그제야 우리 엄마가 별안간 쏟아낸 짜증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이런 기분이었구나. 아무도 자신의 분주함에 관심이 없다는 것. 나 혼자 바쁜 것. 오늘 뭘 해먹여야하나 따위의 고민은 오직 나만 해야 한다는 것. 집안일의 온갖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만 있다는 것.



씻어서 한 번씩 구워 먹기 편하게 네댓 마리씩 비닐에 싸서 냉동고에 넣어놓을 요량으로 개수대 앞에서 조기를 씻다가 조기를 집어던져버리고 싶었어. 문득 엄마 생각을 했어. 엄만 그 재래식 부엌에서 평생 대식구의 밥을 짓는 동안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했어 엄마가 부엌을 좋아했을 것 같지가 않아. 너는 여동생의 말을 듣고 있다가 무연해졌다. 너는 엄마와 부엌을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부엌이었고, 부엌은 엄마였다. 엄마가 과연 부엌을 좋아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p.67-68>



'개수대 앞에서 조기를 씻다가 조기를 집어던져버리고 싶었어'라는 마음은 엄마가 되어본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이 모든 엄마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부엌에 서서 수없이 무언가를 집어던지고 싶었던 마음을 꾹꾹 누른 채로 집안일을 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고독하고 지독한 노동의 늪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다만 알아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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