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웃자
엄마, 화났어?
놀이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앞서 가던 아이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고는 묻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는데, 무표정한 내 얼굴이 화가 난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아이의 이 질문을 받는 순간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내가 늘 엄마에게 묻던 질문. '엄마, 화났어?'
엄마의 얼굴은 늘 화가 나 보였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집안일을 하고 있는 엄마, 나는 늘 그런 엄마의 표정을 살피며 잘못한 것도 없이 눈치가 보였습니다. 그 표정을 견디기 힘든 날에는 한 번씩 묻곤 했습니다. 엄마 화났냐고. 그럼 엄마는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아~~~~니?? 나 화 안 났는데?"
나 역시 내 아이에게 당황하며 같은 대답을 합니다. 나의 표정을 살피는 아이의 얼굴에서 어린 나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때의 내 마음이 읽힙니다. '엄마가 화가 난 걸까, 화날 이유가 없는데 왜 표정이 저렇지?' 혼자 초조해하며 분위기를 살피던 그때의 나. 그런 내가 엄마와 같은 얼굴이 되어 있습니다.
남편도 내게 묻습니다.
"화났어?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인상 좀 펴. 웃어 좀."
나는 화도 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없었는데, 무표정한 내 얼굴에서 아이도 남편도 불편함을 느낍니다. 내 얼굴은 도대체 왜 이런 걸까요?
내가 엄마에게 묻던 질문을 나의 아이에게 받으니 당황스럽습니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엄마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다니. 그런데 엄마가 되어보니 그때 엄마의 얼굴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감정노동 1위는 주부라고. 엄마가 된 이후 나를 챙기기보다 가족을 챙기느라 바쁩니다. 매일 해야 할 일은 넘치는데 해도 티가 나지 않아요. 집안일을 하고 있는 내 얼굴은 당연히 무표정하고 지쳐있습니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런데 가족들은 그런 내 얼굴을 살피며 눈치를 봅니다. 아니 힘들어 죽겠는데 어떻게 내 얼굴이 밝을 수 있겠어요.
나는 이제야 우리 엄마가 왜 그런 얼굴이었는지 알겠습니다. 엄마 화났냐는 질문에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던 것도 이해가 됩니다. 지금 내가 딱 그 기분이거든요.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때 엄마가 왜 그런 얼굴이었는지는 이제 알았는데, 나의 딸이 그때의 나처럼 눈치를 보는 모습에 마음이 짠해집니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내 딸이 기억하는 엄마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요? 엄마는 매일이 피곤하고 지쳐서 내 얼굴이 이래도 네가 이해해달라고 해야 할까요?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듭니다. 아이에게 나는 어떤 얼굴로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해본다면 정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더 이상 '엄마 화났어?'라는 질문을 듣지 않으려면, 아이 마음에 이유 없이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이제는 힘들어도 웃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먼 훗날 엄마가 된 아이의 얼굴은 지금의 나를 닮으면 안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