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블리 Jan 13. 2022

엄마의 얼굴

힘들어도 웃자




엄마, 화났어?




놀이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앞서 가던 아이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고는 묻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는데, 무표정한 내 얼굴이 화가 난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아이의 이 질문을 받는 순간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내가 늘 엄마에게 묻던 질문. '엄마, 화났어?'



엄마의 얼굴은 늘 화가 나 보였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집안일을 하고 있는 엄마, 나는 늘 그런 엄마의 표정을 살피며 잘못한 것도 없이 눈치가 보였습니다. 그 표정을 견디기 힘든 날에는 한 번씩 묻곤 했습니다. 엄마 화났냐고. 그럼 엄마는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아~~~~니?? 나 화 안 났는데?"



나 역시 내 아이에게 당황하며 같은 대답을 합니다. 나의 표정을 살피는 아이의 얼굴에서 어린 나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때의 내 마음이 읽힙니다. '엄마가 화가 난 걸까, 화날 이유가 없는데 왜 표정이 저렇지?' 혼자 초조해하며 분위기를 살피던 그때의 나. 그런 내가 엄마와 같은 얼굴이 되어 있습니다.



남편도 내게 묻습니다. 

"화났어?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인상 좀 펴. 웃어 좀."

나는 화도 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없었는데, 무표정한 내 얼굴에서 아이도 남편도 불편함을 느낍니다. 내 얼굴은 도대체 왜 이런 걸까요?






내가 엄마에게 묻던 질문을 나의 아이에게 받으니 당황스럽습니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엄마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다니. 그런데 엄마가 되어보니 그때 엄마의 얼굴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감정노동 1위는 주부라고. 엄마가 된 이후 나를 챙기기보다 가족을 챙기느라 바쁩니다. 매일 해야 할 일은 넘치는데 해도 티가 나지 않아요. 집안일을 하고 있는 내 얼굴은 당연히 무표정하고 지쳐있습니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런데 가족들은 그런 내 얼굴을 살피며 눈치를 봅니다. 아니 힘들어 죽겠는데 어떻게 내 얼굴이 밝을 수 있겠어요. 



나는 이제야 우리 엄마가 왜 그런 얼굴이었는지 알겠습니다. 엄마 화났냐는 질문에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던 것도 이해가 됩니다. 지금 내가 딱 그 기분이거든요.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때 엄마가 왜 그런 얼굴이었는지는 이제 알았는데, 나의 딸이 그때의 나처럼 눈치를 보는 모습에 마음이 짠해집니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내 딸이 기억하는 엄마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요? 엄마는 매일이 피곤하고 지쳐서 내 얼굴이 이래도 네가 이해해달라고 해야 할까요?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듭니다. 아이에게 나는 어떤 얼굴로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해본다면 정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더 이상 '엄마 화났어?'라는 질문을 듣지 않으려면, 아이 마음에 이유 없이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이제는 힘들어도 웃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먼 훗날 엄마가 된 아이의 얼굴은 지금의 나를 닮으면 안 될 테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