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체중이 곧 나 자신을 정의하는 기준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옷을 고를 때, 음식을 먹을 때, 심지어 거울 앞에 설 때도 체중이 내 행복과 자신감을 좌우했다.
‘몇 킬로그램이 되어야 예쁘다’, ‘몇 킬로그램 이하가 되어야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회적 기준은 마치 내 인생의 진리처럼 느껴졌다.
'너무 살쪘어.' '이 옷은 나한테 안 어울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입 밖으로 나오는 이 말들은 내게 너무 익숙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몸은 무대 위 주연 배우처럼 나를 규정짓고 평가받는 존재가 되었다.
나 자신을 보는 기준은 체중계 위 숫자였고, 그 숫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나 자신을 원망했고,
약을 먹고 굶고 토해가며 정신마저 피폐해져 아까운 시간 들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그것이 얼마나 허상에 불과했는지를.
"나는 정말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예상외로 간단했다. 아니었다.
나는 내가 아닌 체중이라는 숫자만을 사랑하려 했고,
그 숫자가 원하는 만큼 되지 않으면 자신을 스스로 미워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는 모두 뒤로 한 채,
단순히 외적 기준에 맞추려고 애썼다.
체중계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며 자유로워졌다.
매일 아침 체중계에 올라가며 느꼈던 긴장감과 좌절감에서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대신 나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찾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소소한 것부터 시작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산책하러 나가고,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즐겼다.
운동도 ‘열량을 태워야 한다’라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산책이나 조깅은 내게 새로운 활력을 주었고, 무엇보다 내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꼈다.
천천히 걸으며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자연을 바라보며 스트레스도 점점 줄어 갔다.
변화는 생각보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찾아왔다.
거울 속의 내가 더 이상 싫지 않았다.
예전에는 거울을 볼 때마다 ‘어떻게 하면 살을 뺄 수 있을까’라는 고민만 떠올랐지만,
이제는 ‘오늘은 어떤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가끔 체중에 대한 고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여전히 날씬함을 미덕으로 여기고, 미디어는 완벽한 몸매를 가진 사람들을 이상화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고 있다. 그 기준에 맞추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체중이 아닌 나 자신을 바라볼 때, 나는 비로소 나다워진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체중계를 집 한구석 어딘가에 둔 채로 몇 년째 꺼내 보지 않았다.
대신 일기를 쓰고, 글을 쓰며 오늘 하루 나의 감정과 내면에 집중한다.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몸을 가지고 태어난다.
누군가는 키가 크고, 누군가는 작다. 누군가는 마르고, 누군가는 풍만하다. 그것은 그저 다양성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가치는 체중이라는 숫자로 측정될 수 없고, 나의 행복 역시 마찬가지다.
혹시 내가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
나는 여전히 사회에서 보이는 통통 뚱뚱한? 사람이다.
이제 내 몸무게는 이 무게에 익숙해진 듯하다.
하지만 옷을 입거나 산책하면서 불편함은 전혀 없다. 억지로 먹지도, 억지로 굶지도 않는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체중에 얽매여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면,
어차피 다이어트 성공은 허상이다. 어떻게든 다시 돌아온다.
나의 행복에 집중하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훨씬 더 소중하다.
나는 정말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 길 끝에서 당신은 분명 지금보다 더 빛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