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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소 Aug 18. 2022

4. 선데이 러브

세련된 관, 말라비틀어진 몸, 도파민

기억이 퇴적된 공간

세계는 응답하는 법이 없다.


재능이란 한때, 천재의 시절은 한때라고 A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어떤 세계의  시절이 무너질 , 나는 시절의 나를 떠올립니다. 세계의 기억은 쉽게 흐려지고 탁해져서 나는 시절의 어떤 부분을 좋아했는지   없습니다. 무너지고 뒤죽박죽 흩어진 기억들은 횡이 아닌 종으로, 행이 아닌 열로 재배열됩니다. 종과 열은 테트리스처럼 차곡차곡 쌓여 이미지가 되고 나는 비로소 세계에게 말을 건다.   


세계의 어용이 된 정신을 시쳇말로 마음이라 부릅니다. 퇴적된 기억에서 도망쳐 도착한 곳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나는 혼자 남겨진 집에서 매 시 매 분 매 초 죽음을 떠올립니다. 떠올리고 떠올리고 떠올려서 내 일이 될 때까지 꼭꼭 씹어 삼킵니다. 무기력이 해일처럼 나를 덮칠 때면 나는 죽음에서 도망가듯 글을 씁니다. 예전에는 동료가 있었는데 이제는 모조리 행복해져 버렸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도 행복해져 버렸고 그는 에세이집을 펴 냈습니다. 적당히 슬프고 적당히 잊고 적당히 행복해서 적당한 글만 쓰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세계의 질서에 충실해서는, 그리고 아무것도 부서지지 않고 부수지 않고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많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아파야 한다. 그러니까 좋은 글을 많이 쓰기 위해서는 좋은 집에 갇힌 피폐한 정신이 필요하다. 관짝이다라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세련되고 좋은 관짝에 말라 뒤틀어진 시체가 되어야 한다. 나혼자산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야마입니다.   


찍 밟혀 죽은 세기의 사랑, 뿌직 하고 터져 버린 구국의 영웅, 갖은 양념으로 범벅된 고기는 짐승의 부모. 눈을 돌리지 마라. 외면하지 마라. 그래도 종종 약을 먹고 도파민이 정상 수치로 돌아올 때면, 혹은 정상보다 높은 수치가 될 때면 나는 잊어버리고 가만히 서서 풍경을 감상합니다. 퇴적된 것들이 끼어들 틈은 없고 나는 문득 깨닫습니다. 그렇구나. 도파민은 세계의 질서로구나. 이 거리의 껍질에 스며든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나를 기억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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