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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소 Mar 17. 2024

밥 쓰기

빵에계란, 계란-케첩-빵

    부모님은 맞벌이를 했다. 학교에 다녀오면 식탁 위에는 식은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이 차려져 있었다. 밥이 마르는 걸 막기 위해서, 그릇 위에는 불투명한 비닐이 덮여 있었다. 비닐로 덮인 밥과 반찬 대신 오천 원짜리가 놓여 있던 때도 더러 있었다.

돌이키면 그런 날은 부모가 늦잠을 잔 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야 간신히, 남겨진 오천 원짜리에서 그들이 느꼈을 피곤함과 미안함, 그리고 다급함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그걸 몰라서 밥 대신에 밀가루 간식을 사 먹고 남은 돈으로는 만화를 빌렸다. 방과 방이 사방으로 맞닿은 우방아파트 1단지에서,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해적단의 이야기는 밥보다 달았다. 그들의 모험과 달리, 친구들과 내 모험은 좋게 말해 말썽이었고 나쁘게 쓰면 재물손괴와 소음공해였다.


어느 날부터 할머니가 왔다. 그건 엄마의 부탁이었다. 좋게 말해 돌봄이었고, 나쁘게 쓰자면 최소한의 관리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할머니는 사십 중반이 된 딸의 육아를 도와주러 매일 버스를 타고 왔다.


할머니의 밥은 달았다. 지금은 어획이 불법이라 먹을 수 없지만, 알을 밴 암컷 대게를 쪄낸 후 조선간장에 절인 빵게장은 천하일미였다. 껍질 너머로 적당히 간장이 밴 다리살은 달고 부드러웠고, 내장은 세상의 어떤 게보다도 깊고 진했다. 수백 년을 건너오다 최근에야 맥이 잘린 그 음식은 내 정서에 인이 박힌 맛의 기본이다. 어쨌거나 빵게장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하여간 밥이 달기는 달았는데, 어린애를 밥만으로 잡아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모험은 자꾸만 어린 나를 불렀고 자연스럽게 결식이 빈번해졌다. 결식을 방지하기 위해 할머니는 종종 간단한 양식을 만들곤 했다. 그게 오늘의 음식 빵에계란이다. 구운 빵 두 쪽 사이에 계란프라이를 놓고, 케첩을 발라 가위로 사등분한 간단한 요리였다. 토스트나 샌드위치라는 이름 대신 할머니와 나는 이걸 그냥 '빵에 계란'이라고 불렀다. 내가 밥 안 먹겠다고 떼를 쓰면 할머니는 빵에 계란 해 주까, 하고 말하곤 했고 그게 싫다고 말한 적은 없다.


    나는 빵에계란을 정말 좋아해서 밥 대신 매일 먹을 수도 있었다. 내게, 빵에 계란은 양식의 가장 기본적인 원형이자 본질이다. 단순한 조합이지만 그 맛은 단순하지 않다. 마가린 향이 밴 바삭한 빵과 반숙 노른자의 눅진한 맛이 훌륭한 대비를 이루고, 케첩이 단맛과 신맛, 짠맛을 보태주어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미장센(?)도 주목할 만하다. 반투명한 노른자는 인공적인 케첩만큼이나 선명해 채도가 얼추 맞는데, 잘 구워진 빵의 갈색이 선명한 두 가지의 색을 넉넉히 감싸 안는다. 이 음식이 유달리 내 편애를 받는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빵에계란에는 정서적 맛을 넘어선 균형미가 있다.


할머니는 칠 년 전 돌아가셨다. 그녀가 만들어준 빵게장도, 빵에계란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알이 밴 암컷 대게를 구할 길은 없지만 빵에계란만큼은 종종 만들어 먹는다. 그러나 몇 번을 반복해도 할머니의 빵의 굽기와 반숙의 질감을 따라잡을 길이 없다. 내 반숙은 흐물거리거나 지나치게 단단하고, 빵은 고르게 굽히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 두 가지 모두를 성공해도 빵과 계란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다. 그렇게 유년의 기억을 곱씹으며 간신히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목이 막히는데, 나는 이제 울지 않는다.





빵에계란과 양배추 샐러드, 음료로는 오렌지맛 카프리썬.



'빵에계란' 레시피

재료(1인분 기준)

-식빵 두 쪽

-신선한 계란 한 알

-케첩

-마가린(1 티스푼)


1. 달군 팬에 마가린을 녹인 후 빵을 굽는다. 버터가 있더라도 반드시 마가린을 쓴다.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으므로, 빵이 식지 않도록 가급적 두 개를 한꺼번에 굽는다. 양면을 갈색으로 지지고, 내용물을 넣을 때는 마가린을 바른 쪽이 바깥으로 가도록 한다.  


2. 계란프라이를 만든다. 계란은 반드시 한 알만 쓴다. 모자랄 듯 모자라지 않는 것이 요리의 포인트다. 계란은 반드시 노른자를 터트리지 말고 원형 그대로 요령껏 굽는다. 노른자를 터트려 구우면, 완성 후 4등분을 했을 때 노른자가 없는 조각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때 계란의 굽기는 흐를 듯 말 듯한 반숙이어야만 한다. 지나치게 덜 익으면 빵이 노른자를 채 흡수하기도 전에 줄줄 흘러내려 불편하고, 그렇다고 완숙이 되어 버리면 맛이 없다.


2-1 원형을 유지하기 위해 계란을 천천히 익히면, 노른자 아랫부분이 완숙이 되어 버린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중불에서 시작해, 모양이 잡히면 조심스럽게 뒤집은 후 불을 끄고 약 3분간 기다리는 방법을 추천한다.


3. 빵 사이에 잘 익은 계란을 넣은 후 케첩을 뿌린다. 하인즈보다는 오뚜기가 더 잘 맞는데, 단맛이 강한 케첩을 쓰는 편이 낫다. 케첩의 양은 기호에 맞게 조절한다. 듬뿍 뿌려도, 적은 듯 뿌려도 나름대로 맛이 있다.


4. 완성된 빵을 가위로 네 등분을 낸다. 각 조각의 모서리마다 투명한 계란 노른자가 보이면 완성. 투명한 노른자와 케첩이 섞여 빵에 배어든 것을 한입 가득 먹는다.


5. 기호에 따라 야채를 준비한다. 맛이 강하지 않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사진 속 샐러드는 양배추에 약간의 소금과 레몬즙,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더한 후 후추를 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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